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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01 07:22
국제 정치의 나름 추악한 면인 아르메니안 대학살.
2차 대전 이후 서방에서 이사건에 대해 입을 닫은 이유- 아르메니아는 소련령이고 터키는 대 소련 방파제라서 최근 이 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는 이유- 더 이상 냉전도 아니고 터키는 더 이상 유럽에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더 비참한 건 아르메니아 인들이야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건 알지만 다른 소수 민족이나 소수 종파가 비율면에서 더 큰 희생을 당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죠. 그런데 혐오 붙여 하는 것도 같네요.
15/05/01 07:38
원래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시절에는 일단 팔 안쪽으로 굽히고 보는 것이 국제 정치의 패시브 스킬 아이겠습니까. 브뤼셀에 초원복집 차리면 갑부 되것네요.
15/05/01 07:41
읽으면서 외국분이 쓰신건가 했네요, 크크크...
이건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가 더 뭐랄까...그렇더라요...
15/05/01 07:54
일본과의 과거사 인삭문제를 정상간의 회담이나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미국대통령이 일본에 사죄 요구를 하든 우리나라 정상이 요구를 하든 그것은 오히려 일본 국민에게 반감을 사기 쉽죠. 설령 일본 정상이 그에 굴복해서 사과를 한들 일본국민내의 인식 변화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들 싶습니다
15/05/01 08:32
과거사 논쟁이라는게 국제 정치서 변수조차 못되죠. 현재 중일관계가 안 좋은게 '과거' 문제가 한 몫 할 순 있어도 주된 이유가 아닌것 처럼요. 그 중국 마저도 최근엔 시진핑-아베가 만나 회담을 했고, 겉보단 내부의 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국제 정치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가 '명분'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가장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15/05/01 08:36
냉정하게 말해서 중국 고위지도자들에게 731부대 희생자들이나 난징 대학살 피해자들의 유린당한 인권이 중요하기는 할까요?
아마 그들이 저 주제를 들먹이는 건 일본 상대로 정치적인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나 위해주는 척 이용해먹는 거겠죠..
15/05/02 04:52
한일관계도 아닌척하지만 사실 그래서가 맞지요. 월드컵 같이치르게 되었을 때, 언론들의 급격한 태세전환을 기억들 하실겁니다.
기존의 반일교육이 워낙 강해서 한계가 있었지만. 반일은 한국인으로서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지라.
15/05/01 09:22
아르메니아 하면 도르트문트의 헨릭 므키타리안, 롹밴드 System of a Down 밖에 모르던 저에게 새로운 충격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특히 맨 마지막 사진에 부들부들 하네요 ㅠㅠ
15/05/01 09:45
사실 외교관계에 있어서 과거사 문제 들먹이는건 언플밖에 안됩니다. 막말로 아베가 위안부할머니 시설에 찾아와서 멍석깔고 석고대죄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외교관계에서 과거사 문제 들먹이는건 그냥 레임덕 해소를 위한 국내여론몰이&실리를 얻어내기 위한 공갈성 압박 정도밖에 안되는거죠.
15/05/01 12:57
그 사과한번 제대로 못받아서 그런거 아닌가요
석고대죄하면 일본의 과거사 청산노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려줄수 있을것같고 일본에대한 국민악감정 완화에도 기여할수 있겠죠
15/05/01 13:08
아베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사과할수 없는 입장이란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대한 국민악감정 완화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베를 석고대죄하는 자리에 끌고나오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되겠죠. 근데 그런건 또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이잖아요?
15/05/01 13:46
석고대죄하며 사과한다고 뭐가 달라지냐기에 드린 말씀이죠
대가를 왜 지불해요 돈주고 사과받는 경우도 있나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과할수 없는 입장씩이나 고려하면, 그냥 사과 안받고 넘어가요? 뻔뻔하고 후안무치여서 사과를 하던 안하던 외교적으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불만이 있고 성의있는 해결을 원한다는 압박을 넣어야지요. 얌전히 있으면 시간지나면 그땐우리가 미안했어 저쪽에서 먼저 손내밀어주기라도 한다는건지 모르겠군요
15/05/01 15:06
대가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지불하는게 아니라
그로 인해 잃게 되는 무엇이죠. 실제로 일본내의 국민들을 크게 두부류로 분리하면 일본의 사과는 충분했다는 입장과 그렇지 못하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일본의 국민감정을 자극하는것은 사실이고 그로인해 일본의 사과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국민까지 자극하게 됩니다.
15/05/01 16:37
그러니까 그 일본국민들 자극하지 않게 우리가 사과요구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성노예된 우리국민들 제대로 사과받을수있는 방법좀 말씀해주세요
물론 위안부사건 관련해서 일본의 사과는 충분했다 하시면 할말없고요
15/05/01 17:47
글쎄요 아베가 위안부 는 우리가 잘못했다
한번 말하면 과거사 문제가 끝나나요? 설령 누가 사과했다해도 다음 정상이 부인하거나 야스쿠니에 참배만 해도 도로아미타불 아닌가요? 한일 과거 문제를 파해치면 끝도 없이 나옵니다 관동대학살 강제징용 징병 야스쿠니 참배문제 일본 왕이나 정상이 사과해도 일본인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무의미합니다. 사과요구로 무엇이 해결 될꺼라 생각하나요?? 것도 한일 협약 맺은 대통령의 딸이 저런말 하는것은 더욱 설득력이없습니다 사과요구를 하는것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바에야 차라리 안하는게 낫죠
15/05/01 12:58
다른 유저는 누구이며, 왜 이게 비아냥이고,
이 글이 정정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고, 다른사이트는 대체 뭘말하는건지 짧은 댓글에 이렇게 다양한 ????가 들어갈수도 있군요
15/05/01 15:46
피지알이 피곤해졌다고 느껴지는 것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댓글이 너무 늘었어요. 차라리 논쟁붙고 옥수수팔면 보는 재미라도 있지
15/05/01 18:03
저도 글의 과도한 반어법 때문에
다른 유저들을 비아냥 대려 쓴 글인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셨을 거라 믿지만..
15/05/01 18:13
순간의 결심 때문에 머릿속에 있던 걸 토해내듯이 써댄 글이라서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성후 수정도 여러번 거쳤지만,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건 저와 이 글의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겠지요. 그런 곳에서 불쾌감 느낀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15/05/01 12:22
오바마는 언제가부터 자국에서는 깨지고 미국보다 훨씬 만만한 나라에서 대통령 노릇 하는것 같아요.
내가 보수구나 느낀게 박근혜한테 외교적 결례를 할 때 상당히 기분 나쁘더군요. 이명박이 부시한테 면박 당할때는 똑같은 것들이 잘노네 심정이였는데요
15/05/01 17:06
글쓴이가 아르메니아에 대해서 남들보다 많이 아는게 사실이고 이를 뽐낼 정도로 잘났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보는 사람들을 일절 고려 안하는 비아냥과 오만함이 넘쳐나는 글인 건 확실하네요.
15/05/02 00:57
150만명이 죽으면 학살이고, 50만명이 죽으면 학살이 아닌 건가요?;;
아르메니아 학살을 주장하는게 서구적인 시각이고 기독교적 시각일 뿐이라는 것도 과연 중립적인 생각일까요? 마치 일본이 위안부 여성은 창녀였고, 고대 백제시대 한국인들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들 많이 점령하고 죽였기에 일제의 점령과 수탈 및 조선인 학살도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거네요.
15/05/27 01:53
1. 세계의 그 어떤 조사서에서도 터키인 50만명이 아르메니아인에게 죽었다는 보고서는 없습니다. 세상에 딱 두 나라에서 만들어진 주장만 빼고요. 터키와, 그 형제국 아제르바이잔.
2. 세계의 그 어떤 이슬람 국가에서도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딱 두 나라만 빼고요. 터키와, 그 형제국 아제르바이잔. 무슬림 국가인 레바논, 시리아, 이란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터키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3. 세계의 어떤 나라도 유엔에서의 아르메니아 대학살 보고서에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터키와, 그 형제국 아제르바이잔만 빼고요. 4. 그 둘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아마 극동의 어느 나라에, 독립요구는 배신이며, 독립운동은 학살이며, 독립외교는 열강의 간섭이고, 세상 모든 갈등은 쌍방폭행이니 과거사 추궁은 편향적인 트집잡기라고 믿는 분들이 한가득 있는 것도 한몫 하겠죠.
15/05/27 03:09
늦었지만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영문 위키 나와있는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요약드리겠습니다.
전조: 오스만 제국에서의 아르메니아인들은 형식상으로는 밀레트라 불리는 공동체를 만들어 자율을 누릴 수 있었으나 실제로 이는 콘스탄티노플 주변의 부유한 아르메니아인들에게만 해당되었다. 아르메니아 인구의 70%는 빈민 계층이었으며, 대부분은 아나톨리아 동부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쿠르트나 투르크족에 의한 강간, 납치, 개종 위협을 일상적으로 당했으며, 무거운 세금을 지며 거주지의 제한을 받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가부르(gavour)라고 불렸는데, 2등 시민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도중 서구 세력은 오스만 제국을 전쟁에서 격파하며, 파리 조약에서는 휴전 조건으로 오스만 제국 내 기독교인의 권리 보장을 내세웠다. 파리 조약 당시 오스만 제국 내에 기독교 집단은 아르메니아와 아시리아인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서구 세력들, 특히 러시아를 자신들의 구원자로 여기게 되었다. 이에 베들린 조약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직접 서구와 교섭하여 자치권을 얻으려 하였다. 그러자 오스만의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자치권을 주장하는 지역을 감소시키기 위해 1895년 하미디에(hamidiyie) 학살을 거행한다. 쿠르트인들에게 아르메니아인들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가한 것이다. 2천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콘스탄티노플에 모여 술탄에게 자비를 청원하였으나 이는 곧 콘스탄티노플 학살로 이어지며, 전국으로 확대된다. 하미디에 학살에서 아르메니아인 30만명이 학살되었다. 한편 터키인들은 1896년 아르메니아 개혁 회의가 오스만 은행을 점령한 테러 행위가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테러에서, 점거자들의 요구 조건은 '서구 열강이 술탄에게 살육 행위를 멈출 것을 요구할 것'이었다. 술탄은 6천 명의 콘스탄티노플 거주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하는 걸로 화답한다. 이런 살육과 오스만 정부의 무능함에 반발해 '젊은 투르크당'이 1908년 쿠테타를 결의한다. 이들은 아르메니아 학살을 멈추고, 차별의 원인이 되는 이슬람법을 폐지하고, 개혁된 정체치제 안에서 오스만 제국 내의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체제를 선언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젊은 투르크당을 구원자로 받아들였으나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술탄을 지지하였다. 젊은 투르크당이 패망하면서 이들을 지지하거나 기반지역(아나톨리아 남부 해안)에 살던 아르메니아인 3만명이 학살당한다. 한편 1912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치루던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등을 비롯한 국가들의 독립투쟁이 결실을 맺어 이 나라들은 독립에 성공한다. 이들은 국내의 모든 무슬림들을 추방했고, 기독교도에 의해 추방된 무슬림들은 아나톨리아로 쫒겨오면서 '정당한 복수'를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수행한다. 1914년, 오스만은 세계 1차대전에 참전하여 러시아와 싸운다.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와 협력할 것을 예견한 엔베르 파샤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징집하는(전통적으로, 오스만 제국에서는 무슬림만이 무장을 할 수 있다. 즉, 징집될 수 있다.) 명령을 내린다. 노동부대로 징발된 신병들은 투르크인들에 의해 학살당한다. 그리고 1915년 반 학살을 일으켜 아르메니아인의 중심지를 말살하는 한편 아르메니아인 명사들을 전부 체포한다. 그리고 전국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시리아로 이주하도록 하는 '테시르 법(tehcir law)'를 제정한다. 오스만의 동맹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명사들은 아르메니아인 이주자들을 무슬림 이웃들이 '자랑스럽게' 죽이고 범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군인들도 이들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을 목적지로 에스코트하기 위해 '특수조직(터키어:Teşkilat-i Mahsusa)'을 결성했는데, 이들은 감옥에서 풀려난 죄수들이었다. 살아남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목적지는 아무 것도 먹을 게 없는 시리아 사막이었다. 다행히 American Committee for Armenian and Syrian Relief (ACASR)가 미국에서 결성되어 2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거나 국외로 탈출하게 도왔다. 1920년, 세계 1차대전이 끝나고, 승전국들은 터키에서 아르메니아 학살 가담자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 몇몇은 도망쳤으나 아르메니아인 암살단에 의해 암살된다. 그리고 1921년, 아타튀르크에 의해 이끄는 터키 독립 전쟁의 일부인 터키-아르메니아 전쟁에서 다시 한 번 아르메니아인들은 학살된다. 터키인들은 6만에서 1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들을 학살했고, 아르메니아인들의 보복 학살에 의해 5천명에서 6천명 가량의 무슬림들이 학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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