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등장한 만화원작의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세번 정도 돌려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드라마를 많이봤는데, 이 드라마는 제 손에 꼽힐 몇 안되는 수작입니다.
제가 보통 드라마를 좋게 평가하는 기준은 '소재' '개연성' '현실표현' '배우들의 연기' 정도이고, 반면에 연출은 좀 유치하거나 대사가 오그라들어도 드라마 내에서 잘 섞인다면 넘어가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딱, '재밌고 감동적이고 소재도 좋고 현실표현도 아주 좋고 개연성도 좋고 배우들도 좋으며' '대사가 좀 오그라들고 드라마라 그런가 극적이네'싶은, 정통 일드형 웰메이드 드라마라 하겠습니다.
-------------------------------------------------------------------------------------------------------
<이 '일드' 주인공, 한국에 수입하면 안 될까요>
노동자의 편에서 고군분투하는 단다린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부려먹다가 처벌을 받는 사업주가 기업의 어려움을 항변하자 단다린은 말한다.
"경영위기는 경영자의 책임입니다. 노동자에게 함부로 전가하지 마세요!"
내가 잡혀가면 노동자들은 쫓겨나게 되는데 책임질 거냐는 사업주의 협박에는 이렇게 일갈한다.
"기업은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돈도 다시 벌면 됩니다.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병 걸리고 죽으면 다시 일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한 제빵사가 사장이 자신의 사직서를 안 받아준다며 찾아왔다. 제빵사는 자신은 질 좋은 과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장의 대량생산 요구와 과도한 영리 추구에 자신의 철학이 침해받고 있다고 생각해 사직을 요구했다. 그런데 사장은 자신을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직을 허락할 수 없다고 버텼다. 오히려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노동자에겐 고용계약을 종료할 자유로운 권리가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라."
"개인의 편의 때문에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도록 놔둘 순 없다."
"개인의 권리를 개인의 편의로 생각하는 편협한 관점이 일본에서 악덕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아니겠는가?"
오마이뉴스
http://omn.kr/akyc
이 '일드' 주인공, 한국에 수입하면 안 될까요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의 일본 드라마 <단다린 노동기준감독관> 감상기 중에서 발췌
----------------------------------------------------------------------------------------------------------------------
물론 드라마기에 극화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가령 노동기준법(우리나라로치면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회사를 일주일이나 지켜보면서 증거 수집후 체포를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드라마라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정말 뛰어난 매력은 단순히 '권선징악'이 아니라는데에 있습니다. 오히려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근로기준법'을 감독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에게 끼치게 되는 피해를 계속 걸고 넘어집니다. 회사를 고자질 한 사람으로 만들면 나는 어떻게 앞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외치는 부당노동행위의 피해자들 앞에서 감독관들은 무력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국내의 노동현장과 이 드라마가 이어지는 점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일본의 관료제적 문화(공무원 조직)과 노동법은 우리나라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특히 노동법은 이승만정권시절 외국대사들이 한국에는 왜 몇몇 법률이 없느냐는 이야기에 국회에서 '쪽팔려서' 일본 노동법을 그대로 번역해와 들여왔다는 말도 국회 기록에 써 있습니다. 당시의 일본 노동법은 상당히 선진적인 상태였기 때문에(그 노동법이 독일에서 출발했으니 말 다했죠) 우리나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들여온지 15년이 지나도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 앞에서 전태일이 몸을 불지른것이죠.
어쨌든 그렇다보니 이 드라마는 몇 개의 단어만 바꾸면 우리나라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노동기준감독관은 근로감독관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합니다. 노동문제에 대한 사법경찰 역할도 일치하고요. 그래서 더 와닿고, 몰입하기 쉬운 드라마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법을 '어겨도 되는 법'으로 보거나, 또는 '현실이 그런데' 라는 식으로 어기는 것을 마치 '법'의 문제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노동법이야 말로 근대사에 있어서 엄청난 피를 먹고 살을 찢어가며 겨우겨우 한 문장 한 문장 세워낸 법이라서 그렇습니다. 고작 이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관계법과, 산업재해보호법등을 위해 전 세계에서 자본주의 사회 이후 죽어간 사람들이 셀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동법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속상하고, 열받습니다.
노동법을 세운 것은 사실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또는 뭐 마르스크 주의자라든가 기타 빨갱이라 불리는 세력이 아닙니다. 노동법의 개정이나 노동자의 세상이 자본론 좀 알고 공산당선언좀 외운다고 해서 바뀔 세상이었으면 진작 바뀌었겠죠. 오히려 노동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냥 평범한 착한 사람들입니다. 4살 짜리 아이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13시간씩 매일 일하는 것을 보면서, 계약 자유의 원칙이라고 나불대는 배불뚝이 자본가 앞에서, 이래도 되는거냐고 이상하게 여기고 화가 나서 분노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몸을 내던져 얻은 공장법부터가 노동법의 시작입니다. 전태일이 과연 '사회주의'를 이해하고, '마르크스'에 깊이 공감하고, 노동자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의를 위해 몸을 내던졌을까요? 전태일은 그저, 평화시장 열다섯 시다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도 폐병이 걸려 피를 토하는, 그런데 병원조차 눈치보여 못 가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끔 반반한 아이가 사장의 우악스런 손에 젖가슴을 내 줄때 겨우 조금 미싱질을 쉴 수 있었던 그런 모습들을 참을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납득이 가지 않아 몇 번이고 근로기준법을 찾아보아도 누구도 지키지 않는 외로운 공장과,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틈새에서.. 그는 결국 불을 질렀습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그리고 2015년,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멸시당하고, 끊임없이 개악의 대상이 되며,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며 공격당합니다.
그 근로기준법을 현실에서 적절히 구현하고 사회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일에 비해 너무나 적은 인원수와
흔히 벌어지는 정경유착의 관계에 노동자들은 무력하기만 합니다. 진정을 넣었더니 자기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비밀유지'원칙은 개나 주고 그쪽 회사 어디부서 누구누구씨가 진정을 넣었는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 감독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요. 우리 사장님이 너무 착해서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할게 기대되서 막 두근거리고 기쁘고 그럴까요?
이 드라마를 보며 저는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경제 펀더멘탈이 튼튼하고, 평균소득도 높은 일본조차 근로기준법 준수를 안해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데 우리는 언제쯤 '최소'라는 법을 좀 가져볼까.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법을 알아야 합니다. 노동법의 가장 핵심적인 몇 가지 규칙은 '입증하면 우리편' '노사자치주의' 에 있습니다.
부당노동행위는 대체로 반복적이고, 사람들은 현실에 짓눌려 더러운꼴 참아가며 이악물고 삽니다. 그러다 가끔 튀어나온 송곳이
노동청에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진정을 넣으면, 감독관은 그걸 순식간에 박살내곤합니다. 물론 모든 감독관이 그럴리는 없겠지만
노동부는 대체로 '매우 보수적'인 일의 행태를 보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기도 한게, 노동부에는 정작 노동법률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지극히 적고, 공무원의 특성상 법률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권한 자체가 부여되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노동법은 다행히 '법률'이 될 만큼 어느정도의 형평과 논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법을 안다면, 부당행위나 임금관련 문제, 인사관련 문제가 벌어졌을 때 '어떻게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노사문제는 '입증'만 가능하다면 노동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노동법은 회사측 상대로 '입증'을 강제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머리를 잘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부조리한 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당장 내가 독재자가 되어서 법을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 주어진 무기를 어떻게는 잘 활용해 봐야지요.
노동부를 잘 이용하는 법은 증거를 잘 모으는 법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취업규칙, 서면상의 합의, 근로계약, 노사협의문' 은 때때로 노동법들보다 더 강한 해석원칙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노사자치주의'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노동문제'를 그냥 노동부와 변호사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면 배신감만 느낄뿐입니다. 노동자가 노사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욱 영리하게, 회사 내부에서 가면을 쓰고 차분히 증거를 요령껏 모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해 회사와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추천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웃 나라의 드라마에서는 노사문제와 감독관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참 재밌게 보여주거든요. 드라마라서 극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들도 있지만, 그 원초적인 메세지는 같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와 사용자는 동등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재밌습니다.'
저는 한두달 뒤 이곳에 노동법 관련해서 몇 개의 게시글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법조인이 많은 피지알이다보니 고작 얕게 공부하는 제가 쓸 깜냥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노동법을 아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노동법을 잘 알면 노동부를 잘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만 감독관도 제 일을 다 할 수 있을겁니다. 증거앞에서는 도망칠 수 없으니까요.
하루라도 빨리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권리'인 근로기준법 아래에 보호받는 사회가 오길 꿈꿉니다.
노동조합이 더 많이, 그렇게 평범하게 우리 사회에 정착하여 노사간 합의와 노사 자치주의가
제대로 활용되는 사회가 오길 꿈꿉니다.
더 이상 월급과 권력으로, 일거리로 타인의 삶을 짓밟고 그걸 어쩔 수 없다며 현실이 그런거라며
악행을 포장하는 '악독하게도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위해
같이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