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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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보았듯 호드(horde)는 몽골리언 주요 지도자의 사병캠프였습니다.
한참 몽케 칸을 따라 남송 원정을 다니던 쿠빌라이 역시 자신의 호드가 있었는데요, 그곳이 바로 개평(開平)이란 곳입니다. 오늘날의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곳이지요.
쿠빌라이는 몽케 칸 유고시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하기 위해 강한 호드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1256년 유병충이란 자에게 명을 내려 개평 건설을 시작했지요. 1258년 완성된 개평은 전성기 때 인구 100만을 찍을 정도로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1259년,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왔습니다. 오늘날 사천성 지역에서 공성전을 벌이던 몽케 칸이 돌연 전사해버리고 후계자 자리가 공석이 됩니다.
쿠빌라이는 아리크 부케와 후계자 다툼에 들어갔고, 1260년, 신속하게 개평에 들어가 각급 족장들을 소집하여 쿠릴타이를 개최합니다.
몽골족은 다른 중국 북방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부족장들간의 의회같은 게 있어서 그곳에서 다수결로 차기 칸을 선출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신라의 화백회의, 교황청의 콘클라베 같은 거지요. 이 회의를 쿠릴타이라고 부르는데, 쿠빌라이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거점인 개평에서 이걸 연 것입니다. 당시 몽골족의 수도는 누가 뭐래도 카라코룸이었고, 후계자로서 가장 정통성이 있었던 부케 일파는 이에 반발하여 카라코룸에서 따로 쿠릴타이를 개최합니다. 양 쪽 쿠릴타이에선 당연히 각 진영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지요. 쿠빌라이가 칸임! 노노, 부케가 칸임!
몽골제국은 내전에 휩싸이고 결국 개평파가 카라코룸파를 물리치고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에 즉위합니다.
하지만 이 승리는 반쪽짜리였습니다. 쿠빌라이는 전체 몽골제국의 주인이 되고싶었지만 서쪽의 일칸국, 오고타이 칸국, 차카타이 칸국 등등 다른 칸국들은 저마다 지지파가 있었고, 실제로 쿠빌라이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동북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는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지요. 그런데 동북아의 지배자가 되려니 개평은 뭔가 정통의 수도 같은 느낌이 안들었지요.
요나라와 금나라의 수도로 오랜기간 기능해온 연경, 오늘날의 북경이 새 수도로 낙점되고 대대적인 증수에 들어갑니다. 이 새로운 수도의 이름은 대도(大都)가 되고 1274년 정월, 처음으로 이 대도의 조정에서 조회가 열립니다. 원나라의 수도가 대도로 낙점되자 개평의 위치가 뻘줌해집니다. 이곳은 상도(上都 대도보다 쬐금 위에 있으니까)로 불리게 되고 북쪽이라 시원한 관계로 쿠빌라이의 여름별장이 되지요. 대도가 행정의 중심지라면 상도는 몽골족의 종교적 중심지, 휴양지가 됩니다. 여러가지 부족전통의 제례가 여기서 행해진 반면 보다 유교적인 제사 (종묘제례라든지, 사직단에서 지내는 제사라든지 등등)은 대도에서 행해졌습니다. 또 쿠빌라이는 상도에서 사냥을 즐긴다든지 텐트생활을 한다든지 등등 몽골 통치자로서 지낸 반면 대도에서는 전통적인 중국제국의 황제 같은 생활을 했지요.
마르코 폴로 부자가 1275년, 처음으로 쿠빌라이를 알현했던 곳이 바로 이 상도입니다. WOW를 해봤던 분들이라면 처음으로 오그리마에 들어가던 그 감동을 기억하시겠지요. 세계제국의 중심지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의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젊은 마르코는 이 상도를 세계제일의 지상낙원으로 묘사하게 됩니다.
그의 동방견문록은 서구인들의 상상력에 큰 자극을 주었고, 상도는 그 웅장함과 화려함과 찬란함의 정점으로 여겨졌지요. 새뮤얼 퍼쳐스 (Samuel Purches, 1577-1626) 라는 영국인이 일종의 여행기를 출판하는데요, 당시 알려진 동서고금 모든 세계를 망라하는 책이었습니다. 웃긴 건 이양반이 영국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건 그냥 선원들에게 들은 이야기나 책에서 본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컴필레이션이었지요. 그런데 뜻밖의 인기를 얻게 되고, 아주 날개 돋힌 듯 팔리게 됩니다.
이 책엔 동방견문록에서 발췌한 상도에 대한 묘사가 좀 들어있었습니다. 1797년 9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라는 영국 시인이 윌리엄 워즈워드랑 노닥거리며 지내던 와중, 어느날 설사병에 걸립니다. 응가가 좍좍 나오다보니 정신이 없어서 약으로 아편을 먹고, 아편기운에 취한 상태로 이 책, 퍼쳐스의 여행기를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이 상도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펼쳐졌습니다.
설사빨, 아편빨, 낮잠빨 등이 복합적으로 합쳐져서 꿈속에서 환상의 상도여행을 다녀온 콜리지는 잠에서 깨자마자 흥분한 상태로 이 기이한 경험을 시로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시가 완성되기 전에 어떤 친구놈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완성을 못했어요 ㅠㅠ
흥이 깨져서 시가 더이상 안나오자 좌절한 콜리지는 그냥 이 시를 미완성 상태로 방치하게 됩니다. 20여 년이 흐른 어느날, 친구인 시인 바이런이 이 미완성작을 보더니 "얌마, 이거 잘쓴건데 왜 출판 안함?" 해서 출판하게 되고, 1816년, 콜리지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게 될 쿠블라 칸(Kubla Khan)이 출간됩니다.
이 시는 꽤 유명세를 얻었고, 이 시에서 묘사된 상도는 이상세계의 대명사가 됩니다. 이 상도의 서구어 정서법이 여러가지가 있는데요 썅두, 씨안두, 쟌두 등등.. 그런데 이 시에서 쓰인 스펠이 바로 제너두(Xanadu)였습니다.
[바람의 전설, 그게 뭐냐구? 이 게임엔 슬픈 전설이 있어. 한 영국인이 영국음식 먹다가 설사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게임 제목이 달라졌을거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