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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26 14:46:04
Name 알킬칼켈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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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유나의 거리




제가 열성적으로 챙겨본 마지막 드라마는 SBS 시크릿 가든 이었습니다.  사실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만 군대+황금마차도 못 오는 격오지 라는 조합이 저를 더할나위 없이 본방사수의 세계로 이끌더군요.  책상 밑에 지우개 주우러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 할만큼 폐쇄공포증이 있는데 이 드라마와 저의 말년이 겹쳐 교관의 비웃음과 함께 밀폐된 화생방실로 끌려갔던 기억이. (다행히 실내 교관이 우리 부소대장님이라 심각한 상황까진 가지 않았습니다만)

막장 시나리오에 질리기도 하고 롤챔스 중계와 시간대가 겹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TV드라마와 거리가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드라마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그대로 퐁당.  

박쥐 이후로 제 기억에는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김옥빈씨와, 넝쿨당의 임팩트 이후로 성적이 애매했던 이희준씨 주연의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 입니다.

옥이 이모,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로 유명했던 작가 김운경씨가 극본을 맡았습니다.  그의 작품답게 방 한칸을 제공하는 서민적인 숙소를 배경으로 백수, 건달, 일용직 근로자와 같은 소위 '하층민'들이 개성을 뽐내는 구조입니다만. 파랑새는 있다 이후 큰 히트작이 없던 작가가 심기일전하여 준비한 것인지,  단점은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 배경이 되는 숙소는 달동네와 허름한 하숙집, 낡은 연립주택이 아니라 밝은 색조의 다세대 주택을 바탕으로 상큼한 여인들이 투숙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평범한 동네의 준현대식 원룸입니다.  자택과 콜라텍을 소유한 건달 집주인과 유망한 연극영화과에 다니는 여대생 딸, 꽃뱀이지만 자기 카페를 소유한 미녀와 돈에 시달리는 법이 없는 유능한 소매치기 여주인공. 주인공이 백수였음에도 구멍난 난닝구나 싸구려 슬리퍼보다는 말쑥한 정장 차림이 더 자주 나오는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작가의 대표 전작들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우중충한 '서민들의 애환'을 시각적으로 제한해 놓고 있습니다.  

저지방우유처럼 우울함을 덜어놓은 배경 속에서 때묻고 올바르진 않지만 인간적인 캐릭터들이 경쾌하게 살아나 웃음을 줍니다.  분명히 진지하게 행동하는데도 웃음이 터지는 '절봉이'스러운 김운경 특유의 유머가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부피가 있지요. 질나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질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 인물들. 마냥 주인공을 도와주는 훈훈한 조연 같다가도 주인공의 뒷담화를 늘어놓는 주인공의 친구.  자살한 아가씨를  민폐라고 나무라며 차갑게 신경질을 부리다가도 딸이 친모를 잊지 못했을까봐 눈물짓는 주인집 아줌마.  임현식, 이문식, 안내상, 조희봉등 이름난 감초 배우들이 장점도 있고 결점도 있는 진짜 인간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운데

작가는 요즘 오락적인 드라마의 핵심인 '훈훈하고 완벽한 주인공' 을 올려놓습니다.  자기식대로 바꾸어서.  이 점은 [유나의 거리]가 훈훈하고 인간적인 작품 정도인 것을 벗어나 재미나고 오락적인 요소를 갖추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파랑새는 있다 의 이상인씨와 넝쿨당의 훈남 이희준씨는 많은 차이가 있죠.(ㅠㅠ)  주인공 김창만은 고졸에 주방보조나 페인트칠 보조 같은 일용직에 근로하는 가난한 청년이지만,  훤칠한 키에 자칭 이병헌을 닮은 외모, 태권도 3단에 전자제품도 고칠 줄 알고, 수입 연극의 원어 제목을 외우고 있을만큼 박학다식함을 자랑하는 순수하고 건전하고 붙임성까지 좋은 완벽한 훈남입니다.  김운경의 작품 답게, 빈털털이라는 점만 빼면.  백마 탄 왕자님이 아니라 백마 살 돈만 없는 왕자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여초사이트 피지알만 좋아하게 생겼느냐?  여주인공 강유나로 분한 김옥빈의 매력 역시 장난이 아닙니다.  쟤가 웃는 걸 본적이 없다는 소리가 들을만큼 뚱한 표정에 카키색 야상을 걸치고 보이쉬한 모습으로 범죄세계의 '누님'으로 활보하는 강유나는, 훈훈한 김창만에게 배시시 웃음을 보여주고 뻔뻔하게 들이대는 김창만에게 당황하고 다른 여자 심부름을 하는 김창만에게 신경질을 부리는 귀여운 여자이기도 합니다.  꽤 오랫동안 봐 온 배우이지만 김옥빈이 이렇게 이쁘고 어울리게 나오는 배역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소매치기계의 대부 강복천(임현식 씨)의 딸 강유나(김옥빈)가 다른 소매치기단에게 쫓기다가 김창만(이희준)이 머물고 있던 폐 상점에 숨어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업 부도로 도망간 사장과의 약속을 믿고 몇 달이나 가게에 죽치고 있던 남자 김창만.  그를 보고 '쪼다' 라고 말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 웃음을 내보이는 외로운 여자 강유나.  이 로맨스가 지겹지 않도록 50부작이라는 긴 호흡 속에 살아 조명되는 '웃기는' 조연들까지.  

저의 월요병을 고쳐준 JTBC 월화 드라마 [유나의 거리] 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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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잠바
14/06/26 14:54
수정 아이콘
요즘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네요.

김운경 작가가 어렸을 때 잼있게 본 서울뚝배기도 쓰신 분이더라구요.

도끼형님 볼때마다 서울뚝배기 주현 생각이 나고 그렇습니다.

강추합니다
알킬칼켈콜
14/06/26 14:56
수정 아이콘
도끼형님 78세로 설정되어 있는데 배우 정종준씨 아직 50대에 임현식씨보다 11살 연하..

작중에서 임현식씨가 60대로 나오는데;;

저도 옛날 김운경 작가 드라마에 출연했던 정종준씨 떠올리면서 [와 원로배우께서 오랜만에 다시 나오셨구나] 했는데

50대..
tannenbaum
14/06/26 14:56
수정 아이콘
저도 이드라마 좋아합니다.
여건 상 본방 사수는 못하지만 다시보기로 못 본 회차는 몰아서라도 꼭 봅니다.
응4 이후에 딱히 끌리는 드라마가 없었는데 요즘엔 이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톤과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14/06/26 14:58
수정 아이콘
이게 50부작이었다니...몰랐습니다. 16부작 정도일줄 알았는데...
드라마 볼 때, 여배우를 많이 따지는지라 할인카드 사건도 있고, 별로 였는데, 드라마 볼수록 호감 가더군요.
이렇게 김옥빈이 귀여운 배우였던가...
초반에 일부러 목소리를 낮고 거칠게 내는 것 같아 조금은 부자연스렀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창만이는 그야말로 가난한 완벽한 왕자님...^^
동네형
14/06/26 15:12
수정 아이콘
광고볼때마다 여친이 생각나서 한번보려는 드라마 입니다. 괜찮은거 같더라구요
14/06/26 15:16
수정 아이콘
50부작인지 전혀 몰랐네요. 저는 16부작인줄 알고, 드라마 호흡이 너무 긴 거 아냐? 라고 생각했죠.
아직 볼게 많다고 생각하니 좋네요~
김성수
14/06/26 15:32
수정 아이콘
50부작....?!
담백해서 좋습니다. 다른 드라마들 처럼 시청자가 끙끙대지 않아도 소화가 됩니다. 그렇다고 소재가 단조롭지도 않구요.
이미 캐스팅된 연기자들 면면을 봤을 때 부터 드라마 성격이 보이더군요. 게다가 '유나의 거리'라는 제목도 간만에 만족할 수 있는 네이밍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의 거리'는 자칫 촌시런 시대극의 느낌을 줄 수도 있다고 보는데 유나가 붙으니 느낌이 확 살더군요.
콜라텍이나 연극같은 키워드들도 자칫 칙칙할법한데 나름 유나의 소매치기나 창만의 다재다능한 캐릭터를 확보하면서 대중적인 코드들도 잘 가져갑니다.
또한 초반부터 대부에서 봤을법한 몇몇 장면들을(패러디라고 볼 수 있을만큼) 코믹하게 잘 끌어갑니다. 확실히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으니 유머도 잘 녹아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14/06/26 15:41
수정 아이콘
헉 50부작이라니. 16부작인 줄알고 얘네들은 언제 사귀는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두 주인공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오래볼 수 있으니 좋아요.
캐릭터 하나 하나가 생동감이 있고, 조연 분들이 연기도 잘하셔서 볼 맛이 납니다.
roastedbaby
14/06/26 16:12
수정 아이콘
정말 사랑스러운 드라마에요. 위화감 없으면서 소소하고 재미납니다. 딱하나 살짝 올드한느낌.. 소매치기범들이 다소 미화된 느낌만 빼면요 모두 만족입니다. 연기도 최고에요 미운 캐릭터 하나 없이 다들 사랑스러워요. 아 그 서유정 호빠남친은 별로..
커피보다홍차
14/06/26 16:13
수정 아이콘
50부작이였군요. 김옥빈씨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라서 볼까하고 있었는데 밀리지 않게 봐야겠네요.
영원한초보
14/06/26 16:36
수정 아이콘
썬글라스에 군복입은 김옥빈은 op같네요
엣지오브투모로우에서 에밀리블런트 역할 했어도 어울렸을 것 같아요
마빠이
14/06/26 16:44
수정 아이콘
유나의거리 보면서 왠지 모르게 서울의달 느낌이 계속났는데 실제 서울의달 작가였군요 ;;
서울의달 한석규처럼 자연스러운 속물 캐릭터들이 유나의거리에도 나오면서 드라마가 막장스럽지도 않고 아무튼 재미있는 드라마인건 제가 보장합니다. 흐흐
loveyoureal
14/06/26 18:23
수정 아이콘
재밌습니다 추천하는 드라마.
남조니
14/06/26 19:17
수정 아이콘
헤헤 요새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14/06/26 21:36
수정 아이콘
김옥빈 미모가 장난 아니더군요 데뷔한지 오래되었는데도, 방송노출이 얼마없다보니 신선함도 느껴지구요
인생은혼자다
14/06/27 03:10
수정 아이콘
시간 도둑이죠.
14/06/27 12:12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습니다
크리토리스크
14/06/27 17:23
수정 아이콘
김옥빈은 데뷔떄부터 무심한듯한 연기는 달라진게 없네요. 노답!
이외에 출연진은 정말 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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