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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9 19:52:34
Name 하나
Subject [일반] 1980년 5월 18일 전후 어느 한 청년의 이야기
  5월 16일, 한 대전에 사는 한 21살 대학생은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동아리의 광주 답사에 앞서 사전 답사를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두세명의 선후배들과 광주에 도착하여 숙소도 알아보고 이것 저것 둘러보고 사전 답사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왔던
선후배들은 먼저 올라가고, 동아리 회장이었던 그는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광주 버스 터미널에서 대전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그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 멀리서 들려오는 구호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대전에서도 이미 수많은 시위를 겪고 최루탄 냄새를 맡아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는 그것이 역사의 방아쇠가 되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인지 전혀 모른 채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5월 18일이 되어서도 광주의 상황을 전혀 몰랐습니다. 언론의 강력한 통제가 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그는 곧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afkn 동아리의 회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 많은 국내의 언론들이 모두 침묵할 때, 미군의 라디오 방송은 비교적 진실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주의 상황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각 대학들 내에 계엄군이 들어섰고 특히 afkn 동아리의 위험성을 알고있던 안기부는 매일 동아리방에 들어와 검열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수 페이지에 적힌 원고와 해석본을 가지고 있었으나, 안기부의 검열을 거친 그들의 원고는 백지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원고를 들고 은행동의 인쇄소에서 원고를 인쇄한 후 텅 빈 a3용지들을 보며 그들은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afkn의 동아리 회장은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과 자신의 용기 없음에 자괴감을 가지며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는 군용 베개에 매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실망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진실을 좇아 다니느라 떨어진 자신의 성적에 실망한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전역 후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복학하고, 전도가 유망한 학과에 전과하여 하루에 8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며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중 그 청년은 어느 여자를 만나 결혼하였고, 전도가 유망한 직장에 취직하였으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 어느덧 나이 쉰 다섯이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둘이서 술 한잔 하며 저녁을 먹었는데, 우연히 80년 5월 18일의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과거를 어느정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희 아버지 또래에는 비슷한 일을 겪은 분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경험은 저희 세대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도 합니다. 편안한 집에서 자라 따듯한 밥만 먹으며 돈 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는 저는 하루에 밥 두끼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도서관에서 매일 밤을 새며 공부하며 숱한 최루탄 냄새를 맡았던 아버지 세대의 경험을 온전히 공감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5월 18일 광주의 아픔은 광주 희생자분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를 살았던 젊은 청년들 모두가 겪었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 늦었지만 1980년 5월 18일, 그 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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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초보
14/05/19 19:59
수정 아이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두고 아직도 말이 많더라고요.
정부쪽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새누리당 광주시장 후보는 일어나서 열심히 제창 크크
토죠 노조미
14/05/19 19:59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는 그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 가셨습니다.(라고 해도 80년대 초네요.)
아버지는 집안에서 희망이셨습니다.(형제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가셨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대학에서 본게 5.18의 얘기였죠. 많이 고민하다가(가족에 대한 고민) 돌 많이 던지게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대학때의 경험이 아버지가 친척분들과 다른 정치관을 보이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4/05/19 20:37
수정 아이콘
사촌 형수 중에 한 분이 광주 분이신데, 당시 간호학교인가에 있었다더군요.
한잔 하시면 그 운동장에 공수부대가 내려오던 이야기를 하십니다. 트라우마가 없을수 없겠죠.
사촌 큰 형 한분은 과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신 분인데, 어느 명절인가 '전두환이 뭘 그렇게 잘못했나, 고향에서는 그래도 영웅이다'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길래 저도 한 성깔해서 '그게 배운사람이 할 소리냐'고 대판 싸운적이 있습니다.
나이차가 좀 나서 제가 그러면 안되지만 들어줄 만한 소리를 해야지요.
FastVulture
14/05/19 20:47
수정 아이콘
그런 소리 하는 사람한테는 싸워도 됩니다.
NeverEverGiveUP
14/05/19 21:34
수정 아이콘
한국에서 왜 토론이 힘든가를 보여주는 그림이 아닌가 합니다. 이건 무슨 논리란게 있어야 동의를 하든, 반론을 하지..
크리슈나
14/05/19 22:19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논리를 펼치는 분을 뵌 적 있어서,
"영웅이면 사람 죽어도 되냐?"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면 사람 죽여도 되냐?"
라고 공손히 여쭤봤더니

사과는 개뿔 빨갱이 소리 들었네요 허허허
안 되더라구요.
잠잘까
14/05/19 20:47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린언니
14/05/19 21:00
수정 아이콘
제 외삼촌이 당시 광주 외곽포위 임무에 투입되었던 모기갑사단 출신이고 거기 계셨습니다.
그래서 광주 얘기는 잘 안꺼내려고 해요.

하지만 투표할때는 다르게, 소신있게 하시더라구요.
당근매니아
14/05/19 21:17
수정 아이콘
이모 부부가 보성에서 약국하십니다. 시 밖으로 이송되어 나온 시체 좀 보셨다 하더군요.
Abrasax_ :D
14/05/19 21:41
수정 아이콘
저희 어머니는 나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셨는데요.
당시 광주의 청년들이 전라남도 전역으로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같이 시위하자고 독려를 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같이 일하던 공무원 청년 몇이 시위하러 나갔는데 돌아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주에서 나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그 와중에 출근을...) 도로가 어지러우니 산을 타고 오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14/05/19 21:57
수정 아이콘
그 옛날엔 몰라서 그랬다는 핑계라도 있지만 지금은 대놓고 알아도 상관없어 하는 인간들이 많죠..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피지알이라고 그런 인간들이 없지도 않고요..
Tristana
14/05/20 02:11
수정 아이콘
궁금한게 있는데 이 때 언론이 완전 통제됐었나요?
저희 아버지가 5.18 당시에 군생활 중이었는데
티비보고 민주화운동이라고 첨부터 알았다고 하던데...
14/05/20 08:42
수정 아이콘
언론에서는 북한간첩이니 폭동이니 몰고갔죠. 시민에게발포한이야기도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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