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로봇과 괴수가 싸운다고? 그럼 보러가야지 했던 퍼시픽 림과 마찬가지로 이런 영화는 가슴이 시켜서 보는 영화죠. 그래서 뭐 특별하게 길게 말할 만한 것이 없는 영홥니다. 뭐? 거대괴수 고지라가 나와? 도시가 부서지고 브레스까지 뿜는다고? 괴수들끼리 싸움도 해? 그럼 보러가야지 해서 보러가는 거죠(그래서 니가 애냐? 하는 타박을...)

그런 감성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적인 완성도 만을 놓고 보면... 좀 미묘합니다. 중반부 인간측(...) 주인공의 가족들을 다루는 부분에선 극의 흐름이 쭉쭉 쳐지고 세리자와 박사는 일본인의 '고지라' 발음을 들려주는거 말고는 사실 나와서 하는게 뭔가 싶죠. 뭐 자연은 균형추를 만들고 어쩌고 하는 대사쯤 오면 이사람이 박사라기 보단 뭐 고지라교 교주에 가깝게 느껴지고 말입니다.  

거기에  2시간 조금 넘는 영화에서 실제 괴수들이 치고 받고 부수는 장면은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초장부터 예거 '집시 데인저'가 박살나는 시퀀스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시가전에 카이주와 예거가 집단전을 벌이는 장면까지 아예 관객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뽕빨을 내버리면서 적어도 액션씬 만큼은 호, 불호 양쪽에게 인정받는 퍼시픽 림과 달리 고질라는 좀 심심한 편입니다. 좀 더 보여줘도 좋았을텐데 시간과 예산의 부족때문인지 뭔지 고질라(2014)는 클로버 필드 처럼 괴수가 난동 피우는 모습을 잠깐 보여주고 그다음엔 박살난 배경을 원거리에서 잡는 방식내지 스크린속 조그만 TV화면으로 괴수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괴수의 위력을 직접적을 보여주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주력합니다.

그정도로 아꼈다면 무토 암,수와 고질라의 대결은 좀 더 길게 보여줬어도 될텐데 이것도 좀 짧은 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 곳곳을 오가고 거대괴수들이 출몰하긴 하는데 생각외로 뭔가 스케일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이러니 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묘한 단점들을 눈감게 하는 요소들 역시 존재합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건 고지라 시리즈 특유의 코스믹 호러스러운 맛이 제법 잘 살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저 종족번식에 애쓰는 무토와 이 무토를 사냥하는 고질라 사이에서 인간은 방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인간은 뭐야 이 벌레 녀석들은? 이정도 포지션이죠. 뭐 인간측 남자 주인공이 무토의 알을 불태워서 나름의 복수를 하긴 하지만 그간의 영화에서 봐온 지구방위대 미군과는 백만광년쯤 떨어진 무력한 미군이라는 연출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합니다.

거기에 분량이 길진 않지만 초거대 괴수들 간의 싸움을 연출해 내는 솜씨도 대단했습니다. 고질라가 등장해서 무토를 보고 표효를 내지르는 순간은 정말 끝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묵직한 저음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괴성의 조합은 스크린속 거대한 고질라와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임과 동시에 고질라의 존재감을 정말 잘 그려내는 연출이었죠. 거기에 고질라가 육중한 꼬리로 무토를 내려치고 나중에는 아예 무토의 입을 찢어 직접 뱃속으로 브레스를 토해내고 머리를 뜯어내는 모습은... 콩알만한 미사일에 맞아 신음하던 98년도판 고질라의 악몽을 잊게 만드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촬영구도가 딱 예전 특촬물의 구도라는 점도 끝내주는 부분이었습니다)

뭐랄까요... 코지마 히데오(메탈기어솔리드 개발자)에게 궁극의 오타쿠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던 퍼시픽 림과 비교하면 그 궤가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괴수의 왕'을 제대로 스크린에 구현해 냈다는 것에서 이 영화 역시 궁극의 오타쿠 영화라 생각합니다.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정도면 98년판 고질라를 만들어 괴수의 왕을 똥간에 빠뜨렸던 헐리웃에게 면죄부를 줘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