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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5/15 16:16:22
Name 스웨트
Subject [일반] 배려의 휴지
며칠전 결혼식 때문에 서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서울을 오게 된 촌놈 스웨트라 북적 북적 사람 많은 곳에 가게 되니 어벙벙하게 되더군요. 지나가는 수많은 버스를 지나보면서 이건 내가 탈수 없는 것이야 외치면서 가까운 지하철역을 어플을 찾아보며 터벅터벅 걷는 꼴을 보아 하니, 꼭 여자많은 과에 왔으나 다가갈 수 없는 슬픈 복학생 오빠가 된 느낌이더군요. 아냐 아냐 서울 지하철 짱짱

이왕에 서울에 오게 되다보니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친구를 만나면 밥도 먹게 되고 밥을 먹으면 술도 먹게 되고 하는 전형적인 레파토리로 흘러가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술을 먹었던 그시간은 정말 참으로 즐거운 시간입니다만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술먹은 다음날은 언제나 정신도 정신이지만 속이 굉 장히 안좋게 되죠. 친구네 집에서 안녕~ 하고 나와서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배속에서 울리는 이머젼씨는 순간적으로 제 스스로의 식은땀샘을 자극 시켰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화장실이라곤 브론즈에 박힌 와드처럼 보이지가 않고, 기껏 발견한 화장실은 잠겨있다보니 제 머리속엔 지하철역 화장실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다지 멀지 않은 공중상의 거리에 녹사평 역이 존재하였기에 제가 가야 할 곳은 그곳뿐이야 하는 마음으로, 주변 길에 대해서 암것도 모르는 시골 촌놈은 핸드폰 지도 어플을 그저 오지에 떨어진 선교자의 성경책마냥 소중히 쥐고 바라보며 지하철역으로 가는 그 길만을 계속해서 경보했습니다.

지하철 역 화장실에 도착하고 문을 두드린 후 사람의 인기척이 없음을 발견한 저는 평소에 무교라 외쳤던 제 자신을 후드려패며 역시 신은 존재하시는 구나 오오 my god 을 외치며 자리를 잡고 체중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요란한 전쟁통이었던 제 몸상태는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는 샹크스라도 강림했다는 듯 제 몸과 마음은 아주 경건해 졌고 가볍고 차분해 졌습니다.

한숨을 한번 내신 후 고개를 올린 저는 무언가 신기한 것을 발견 하였습니다.
화장실에 비치되는 두루마지 휴지장치가 왼쪽과 오른쪽 양쪽에 설치되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양쪽으로 휴지가 배치 되어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보통은 한쪽만 설치가 되어 있는것이 당연한 것인데 말이죠? 저는 순간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심도있는 생각을 짧은 시간이나마 하게 되었고, 그에 대해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려의 휴지다.

저는 왼손 잡이 입니다. 왼손잡이는 패닉이죠. 아니 이런 드립은 넘어가고 왼손잡이는 뭐 머리가 좋다 뭐다 여러 이야기들은 있지만, 사실 오른손 잡이에 비해 불편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자 국물 푸는 곳이 거꾸로 되어있다 라던지, 단추가 반대로 라던지, 문여는 방향이라던지 사실 그동안 습관화 되어 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넘어가는 것이지 소수의 불편함은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문화적으로도 왼손잡이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인도와 같은 나라는 밥을 먹을때 손은 오른손, 화장실에서 쓰는 손은 왼손으로  나뉘어져 있다(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할 정도로 왼쪽은 안좋거나, 좀 지저분한 쪽으로 인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 평소에 화장실의 휴지는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것이 그쪽이 오른손 잡이가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이렇게 양쪽으로 존재 한다는 것은 왼손잡이에게도 편하게 휴지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한 서울시의 봄 한낮에 내려오는 따사로운 햇빛과 같은 따뜻한 마음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종착하였습니다.

정말 서울은 아주 작은 곳에서도 사람들을 배려하는 선진화 된 곳이구나 라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감동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싶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서울의 배려심을 조금이나마 알려야 한다는 선구적인 마음에 마카오톡을 전서구 삼아 친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친구들도 감동하였는지 제 말에 대한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그거 휴지 갈기 귀찮아서 많이 해놓은거 아니냐?"




..아..

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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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15 16:30
수정 아이콘
휴지가 떨어지는 공백기간을 없애기 위한 백업 휴지겠죠...
귀찮은 것보단 섬세한 방법인것 같습니다.
풍류랑
14/05/15 16:32
수정 아이콘
피지알 글에는 빠질 수 없는 필수요소, 그것! 잘 보았습니다. =)
백화려
14/05/15 18:19
수정 아이콘
결국 잘 마무리하셨다는 얘기군요.
아쉽네요. 휴지가 없었어야 했는데...
14/05/15 19:09
수정 아이콘
역시 피지알...크크

문득 양쪽에 걸린 휴지가 길게 늘어뜨려져 묶여있는 상상을 했네요.
기아트윈스
14/05/15 19:30
수정 아이콘
아...해피엔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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