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은 참 시끄럽습니다. 제가 사는 이 도시는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다이빙벨'이라는 게 화제인가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와 해경을 욕하면서 왜 다이빙 벨을 안 들여보내느냐고 성을 냅니다. 다른 쪽에서는 해경과 잠수부들의 노력을 왜 깎아내리느냐며 분노합니다. 어느 쪽도 진정성이 있는 분노겠지요. 결국, 다이빙벨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돌아옵니다. 다이빙벨이 실제 어느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실제 투입은 성공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않고 철수했지요. 이번에 사람들은 다이빙벨을 주장했던 이종인 씨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립니다. 몇몇 사람들은 해경의 방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합니다.
트위터와 SNS에서는 '노란 나비'가 유행입니다. 사건 당사자인 학생들에 대한, 바다에서 먼 사람들의 염원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위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응원이 되겠지요. 간혹, 왜 남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저에겐 조금 지나친 간섭 같아 보입니다만, 사건에 대한 강렬한 염원에서 나온 소리겠지요.
한쪽에서는 사건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한쪽에서는 염원을 드러냅니다. 모든 사람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굉장히 적은 사람들만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사건에는 그 사건을 만든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핵심 용어로, 거시적인 사회와 그에 속한 개인의 행위로부터 형성되는 관계를 인지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위키피디아). 선장을 욕하는 건 쉽습니다. 다이빙 벨을 주장하는 이종인 씨를 욕하는 것도,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해경을 욕하기도 쉽습니다. 그 탓함이 잘못됐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다른 비극을 방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동어 반복이지만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침몰 사고는 처음이 아닙니다. 1993년 서해훼리호가 서해에서 침몰했습니다. 이 사고에서도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에서 지적된 안전사고 예방 대책과 규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단순히 규정을 위반해서 일어난 사고라고요? 그렇다면 규정을 안 지키게 된 유인과, 그것을 사전에 잡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선장과 승무원이 먼저 도망가버려서 더 커진 비극이라고요? 그러면 일부 승무원과 선장이 신념과 책임감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들을 알아내려는 노력이 문제를 고치기 위한 시작입니다.
분노도 좋습니다. 염원도 좋습니다. 그것들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나 문제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적어도 93년에 그랬던 것보다는 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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