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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4/04 14:13:44
Name ohfree
Subject [일반] 유추와 상상 -건축학개론-
영화는 2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에 함축, 생략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생략된 내용을 유추, 상상할 수 있다.

1.
영화 초반 한가인이 엄태웅을 만나러 온다.
이에 엄태웅은 누구? 라고 말한다.



엄태웅은 정말 한가인을 몰라 봤을까?
아니다. 그는 알아 보았다.



진짜 알아보지 못했다면 위의 표정이 나와야 한다.


20살, 자신의 첫사랑의 얼굴을 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상대가 이렇게 생겼다.



그렇다면 첫사랑의 그 몽타주는 거의 무덤까지 갖고 간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대번에 알아보았기 때문에 그는 짐짓 모른체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누구? 라고 말하며 시치미를 뗐을까?

두 가지로 상상해볼 수 있다.

첫눈 오는 날 그 빈집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지만 감히 수지에게 ‘이제 그만 좀 꺼져줄래’ 라고 말했던 그이기에 ‘나는 너 없이도 난 잘 살고 있다’ 라는 호기로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을 수 있다.

다른 이유로는 현재 여자친구인 고준희가 사무실 바깥에서 매의 눈을 하고 째려보고 있다. 한가인 왔다라고 헤헤거리며 침 흘렸다가는 손목맞기가 아니라 아구창을 맞을 수 있다.




2.
한가인, 엄태웅, 고준희가 식당에 앉아 있다.




고준희가 엄태웅의 첫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보챈다.
‘말해봐. 쌍년이었다며.’

고준희는 한가인의 정체를 모르고, 정말 궁금해서 첫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했을까?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LOL이나 엊그제 극장에서 보았던 캡틴 아메리카 이야기가 아니라 꼭 15여년전 첫사랑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까? 그것도 ‘쌍년’ 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그렇다. 그녀는 한가인이 엄태웅의 첫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한가인이 엄태웅의 15년전 기억속의 쌍년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쌍년이었던 것이다. (왜 10년이나 지난후에 찾아와서 내 남자에게 껄떡대)

이에 한가인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얼굴 하나로 수많은 여인네들의 뺨을 후려쳤던 그녀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고준희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한 한가인은 변변한 초식 하나 펼쳐 보이지 못하고 당하고 만다.
이날의 패배를 절치부심한 한가인은 훗날 집이 영 마음에 안 든다며 결혼식을 며칠앞에 둔 예비신랑 엄태웅을 달달 볶아 제주도에 묶어둠으로서 고준희 속을 뒤집어 놓는 복수를 한다.


엄태웅.
그는 왜 한가인하고 밥먹는 자리에 고준희를 데리고 왔을까?
이런 쌔한 분위기가 연출될지 몰랐을까?
아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는 고준희에게는 한가인을, 한가인에게는 고준희를 보게 함으로써 ‘나 이정도다’ 라는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하려고 한 것이다. 자신을 두고 미녀 2명이 이런 불꽃을 튀기는 것을 느긋하게 관전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찌 흉내낼수도 없는 고품격 취미이다.


거만한 표정의 엄태웅



3.
영화의 마지막. 엄태웅이 한가인에게 cdp와 전람회 앨범을 빠르고 편한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전달해 준다.



엄태웅은 자신의 방 구석에 있던 이 물건들을 그냥 박스에 싸서 보내 줬을까?
아니다. 보내기 전에 다시 한번 들어보고 건넸을 것이다.
그러려면 건전지도 새로 사서 끼워 넣고 행여나 씨디에 스크래치 나서 음이 튀지 않나 확인도 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 듣고 나서 이어폰에 자신의 귀딱지가 붙었는지 살펴보곤 후후 불어가며 떼어냈을 것이다.




그리곤 흘러 나오는 음악소리
‘이젠 버틸순 없다고 으으음~~’
이때 한가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원에서 요상한 자세로 사진 찍으려 했던 이제훈을 본 날?
옥상에서 이어폰 나눠 끼며 같이 음악 듣던 그 날?
귀뚜라미 찌르찌르 울던 날 밤 자는척하며 뽀뽀했던 그 날?



입술은 엷게 웃는 듯, 눈은 그렁그렁 눈물 흘릴 듯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가인을 보면 아마도 현재보단 예전 어렸을때의 기억을 떠올린 듯 싶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섰다.

한가인이 예전 기억을 떠올리듯, 나도 내 학창 시절의 한가인을 떠올려 보았다.

로템위를 뛰어다니는 저글링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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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그김
14/04/04 14:21
수정 아이콘
표면에 드러난 텍스트보다도 느낌 충만한 짤방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유추,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크크;;
14/04/04 14:23
수정 아이콘
한가인의 어장관리(?)에 조금 짜증났었는데
두번째로 이 영화를 봤을 때, 저 '쌍년'이라는 말이 왜 이리 속시원하게 들리던지...
Teophilos
14/04/04 14:25
수정 아이콘
1번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실제로 경험한 일입니다.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추억하는 선에서 마음정리가 안되거든요.

나머지는 다 공감합니다. 특히 2번 크크크크크
14/04/04 14:27
수정 아이콘
썅년은 수지인데 왜 한가인이 욕먹는겁니까!
14/04/04 14:29
수정 아이콘
근데 이거 유게감 아닌가요 크크..
14/04/04 14:29
수정 아이콘
이 영화 보고 화가 나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찌질한 건 어쩔 수 없죠. 저도 찌질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영화 남주인공은 찌질해도 너무 찌질하더군요. 이카리 신지가 오히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인간으로 보일 지경으로요. 후우. 생각하니 다시 울화통이......
14/04/04 14:32
수정 아이콘
이 영화는 수지와 한가인 보러 가는 거 아니었나요?
마치 레이와 아스카를 보기 위해 에반게리온을 보듯이...
14/04/04 14:36
수정 아이콘
......
미사토요.
......
Friday13
14/04/04 14:45
수정 아이콘
리츠코랑 리츠코 부사수도 포함을...
14/04/04 14:35
수정 아이콘
허어.. 저글링이 에그에서 쌍쌍이 나오긴 하죠.

2-3번은 공감하고, 1번은.. 엄태웅씨 연기는 진짜 몰라서 그러는 사람처럼 보이긴 했어요.
보긴 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가 아니라, 아예 처음 본 사람 보듯.

아. 그리고 영화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맛깔나는 리뷰 잘 봤습니다.
종이사진
14/04/04 14:40
수정 아이콘
성형수술하면 알아보기 어렵죠.

그리고 현여친에게 잘 보이려면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뉘앙스를 주면 안됩니다.
꽃보다할배
14/04/04 14:42
수정 아이콘
전 수지가 선배랑 원룸 들어가서 무슨일이 있었나 그게 궁금해서 글을 눌렀는데 전혀 의외의 반전이네요.
사실 엄태웅 입장에서는 수지가 한가인으로 변했으니 못알아보는게 맞죠. 코에 점도 생겼고...의느님의 승리일지도 모르구요.
대패삼겹두루치기
14/04/04 14:44
수정 아이콘
'손목맞기가 아니라 아구창을 맞을 수 있다'는 표현이 너무 재밌네요 크크.
한가인과 고준희 둘과 동시에 밥 먹다니 영화라도 너무 부럽습니다.
Darwin4078
14/04/04 14:47
수정 아이콘
그니까 칠봉이하고 수지하고 뭔일이 있었다는 겁니까, 없었다는 겁니까!
궁금한건 그거라구요!
영원한초보
14/04/04 15:07
수정 아이콘
본문 거의다 동의하는데요
고준희가 알고 있었을까?는 잘 모르겠네요
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한가인이 그거 복수하려고 진짜 제주도로 부른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정 지어 얘기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원래 저런일은 그런의도로 일어나는게 일반적인데 제가 바본건지 ㅜㅜ
14/04/04 15:51
수정 아이콘
으아 글 참 맛갈나게 쓰십니다..^^
수지와 칠봉이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을지 꼭 추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앙꼬없는 찐빵입니다. 흐흐..
LG twins
14/04/04 16:05
수정 아이콘
칠봉이랑 수지랑 아마도 그날밤엔 아무일도 없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군대다녀오신분들은 알겠지만) 칠봉이가 나중에 여기저기 아는 친구들한테 나 쟤랑 잤다 뭐 이런식으로 떠벌리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이제훈이 분노의 꺼져줄래를 시전했을 수도 있구요.
습격왕라인갱킹
14/04/05 12:57
수정 아이콘
어디선가 본 찌라시 같은 거였지만
원래 수지가 캐스팅 되기 전 시나리오에서는 칠봉이가 술에 취한 수지의 슴가를 만지고
집으로 들어간 후 이제훈이 대문에 귀를 대 본 후 분노에 찬 얼굴로 돌아간다...
는 내용이었다고...흑흑
MyBubble
14/04/04 18:34
수정 아이콘
1번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영화를 두 번째 보니까 딱 느낌이 오더군요. CD 플레이어까지 고이 간직한 남자가 첫 사랑 얼굴을 잊을리가...
본문의 2가지 이유 이외에도, 과거의 자신의 찌질한 행적(?)이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모르척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지니팅커벨여행
14/04/05 07:11
수정 아이콘
근데 성형수술로 점 만들 수 있나요?
먹물 같은 걸 집어 넣어야 할텐데....
14/04/05 11:22
수정 아이콘
뭔가 글에 필력이 느껴지네요 재미있게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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