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러나 별반 기쁘진 않다.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날이 되어버린 일상의 하루일 뿐이다.
어젯밤 일상처럼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자식들만을 지켜보고 일생을 꾸려왔고,
이제는 자식의 안녕만을 기원하는 다른 모두의 부모님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렇지만 '나'에게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부모님이다, 모두에게처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항상 걱정해주시고, 늦은 나이까지 용돈도 쥐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미역국을 끓여먹일 수 없음에 가슴 아파하신다.
객지 생활 10년차에 무슨 그런 얘기를 하냐고 하니,
미역국을 먹어야 인덕이 생긴다는 얘기를 하신다.
학식에 미역국이 자주 나온다는 말을 하니, 꼭 챙겨먹으라고 하신다,
그게 부모의 마음일게다.
그러더니,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물으신다.
돈 벌어서 감사하다고 해드려랴 하는 마당에 나이 서른 먹고 무슨 선물을 받냐고 하니,
옷이나 신발, 시계 등등을 말씀하신다. 근데 이미 장갑은 사놓으셨단다.
장갑은 이미 있고, 내 손은 네 개가 아니라, 아버지나 드리시라고 하니,
툴툴대신다.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자꾸 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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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진짜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이 있다.
내게도 나의 생일이 365일 중에 특별한 하루였던 때가 있었다.
부모님은 자식들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셨고,
가슴 아프게도 몇 년 전부터 나만을 보고 살아가고 계신다.
믿지도 않는 신이란 존재가, 내게 나타나 진짜 받고 싶은 선물을 들어주겠노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내 동생을 보고 싶어요, 그게 꿈이더라도..'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기에,
특별한 마술이 없는 이 날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더불어 홀로 살아남아 세상의 재미를 더 느끼고, 부모님의 사랑을 홀로 받고 있기에,
이 날이 그다지 기쁘지도 않다.
전국이 안녕하냐로 열풍이지만, 애초에 난 몇 년 전부터 안녕하지 않았다.
그 이후 단 한 순간도 안녕한 적이 없었다.
그 몇 년 전의 일은 우리 사회가 지금뿐만 아니라 그 때도 안녕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 이후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오로지 부모님이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 동생이 혹여나 다시 태어났을 때 이따위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외에 별다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외관상 내가 안녕해 보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답이고, 가장 좋은 선택지이다.
외관상 내가 안녕해보이는 것은 부모님을 위로할 수 있을테고,
내 삶의 목적한 방향으로 나를 조금이라도 잘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내 삶의 끝에서 이따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그 때 비로소 약간이나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조금의 안녕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달님에게 빌었다.
오늘 새벽에 보게 해달라고.
그런데 보지 못 했다.
너무 깊게 잠들었나보다.
오늘 한 번 더 빌어야 겠다.
오늘은 꼭 보게 해달라고.
그게 내가 바라는 진짜 생일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