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12/09 04:35
한센병은 이젠 치료 가능한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환자수가 지난 100 년 정도에 걸쳐서 1/10 정도로 감소했지요. 다만 100% 완치율을 보이는 질환은 아니고, 나병원균도 기존 약물에 내성을 획득한지라 요즘은 칵테일 요법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13/12/09 08:07
한센병 환자를 소재로 한 '누미누나'라는 동화책을 추천합니다.
천주교출판사에서 나와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같은데 어른이 봐도 정말 가슴이 뭉클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책이었습니다.
13/12/09 11:36
벌점받을만한 글 쓰실거면 그만큼 가치가 있어야 의미있을텐데 그냥 개인의 부정적인 의견 개진 그 이상 이하도 아닌거 같네요
그냥 미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아버지가 진짜 못된사람이면 버리고 신경도 안썼겠죠 살면서 애써 잊고 지내고 싶은 아픈 상처 누구나 하나씩은 잊는법입니다. 그걸 잘 견뎌내느냐 버려두느냐는 개인의 판단이겠죠 그런 실수의 과정을 40년이나 보낸 후에 깨닫고 다시금 노력해보려는 사람과 그것을 믿어준 훌륭한 아들에게 님깨서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렇게 맹렬한 비난을 날리실 권리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만
13/12/09 11:56
tannenbaum님 개인사를 저번에 본 적이 있어서 모라고는 못하나, 이 글에서에 대한 비판과 자기 감정과의 거리는 분명히 두고 써야할 답글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댓글이 신중하지는 못하네요. 연예인의 과거사가 소중한 만큼 이 아버지의 과거사도 사연이 분명 있을지언데 너무 앞서 나간 댓글 같습니다.
13/12/09 13:08
솔직한 댓글 감사합니다.
저 아버지가 외동 아들을 버렸다면 저도 아버지를 비난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키워야하는 아홉명의 다른 자식들이 있었고, 아이를 아홉명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저 이야기의 핵심을, 아버지가 멀쩡한 애들만 쉽게 쉽게 키웠다기보다는 여러가지 의무에 묶인 아버지의 고뇌와 아픈 아이가 나머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이야기로 보았습니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소나무님께서 보신 바대로 알지도 모릅니다. 행복 전도사가 자살했다는 일도 있었다시피, 원래 미담이란 것이 주인공들의 의도와 상관없지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13/12/09 14:48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적어도 저도 tannenbaum님을 PGR로만 알고 동성연애 글도 잘 보고있는 1인입니다만) 저번에 tannenbaum님이 낸시랭의 글에 달은 리플과 지금 다신 리플을 비교해보시면 아마 민망해하실지도 모릅니다. 전자는 남의 사정을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아냐고 날서게 비판하셨는데 이번 글에는 남의 사정을 다 모르고 격하게 비판하시는 걸 보면 스스로 느끼시는 점이 많으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격해질수록 냉철한 이성이 더 필요한 법이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13/12/09 15:47
저도 단순히 피가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야기 속 아들의 선택이야 그건 개인의 영역이니 제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고..
어쨌든 아버지의 행위는 딱히 당사자끼리 해결했으면 되지 않냐, 식으로 도매급으로 용서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13/12/09 11:58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있나요.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아들, 딸이 오히려 지나고보면 효자인 경우 상당히 됩니다. 개인적으로 아꼈던 자식들이 오히려 자기 성공하고 외면하는 경우도 꽤 있구요.
그런데 말이죠. 자식을 아꼈다고해서 그 자식이 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심정도 옳은 심정은 아닙니다. 자식은 키울때 느끼는 보람, 내가 윗세대한테 받았던 감사를 전해주는 것 그 이상은 아닙니다.
13/12/09 12:19
저도 아버지를 감싸는 아들의 미담이 될 수 있을지언정, 아버지에 대한 동정이 좋은 의미로 포장이 될 것 같아서 좀 그렇긴 합니다.
13/12/09 13:41
확실히 용서받는 입장에서 신앙의 위대함을 노래하니 뭔가 좀 깨름칙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tannenbaum님께서 심한 댓글을 다신 것도 솔직히 이해가 되네요. 그리고 종교의 길을 걷는 자들의 눈동자에 깃든 그 무언가. 그것이 설사 그들이 말하는 진실된 믿음과 숭고한 사랑이라 할 지라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될만큼 무섭고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많이 지켜봐왔기 때문에 OrBef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올려주신 이 이야기를 저는 가슴 깊이 미담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애초에 종교에 회의적인 제 편견과 아집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13/12/09 14:07
저도 비슷한 걱정이 좀 들어서 종교 관련한 부분을 아예 빼버릴까 하다가 그건 또 원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 놔뒀습니다..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뭔가 깃든 눈동자는 우리같은 일반인에게는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고 무슨 짓이든 합리화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눈으로 다가오지요. 다만 본문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저는 종교 이전의 원초적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13/12/09 14:34
미담은 버려진 아들의 이야기가 미담인 것이죠.
이야기의 아들은 아버지를 용서했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진짜냐 아니냐를 떠나 이 이야기 속의 아들은 자신이 버려질 때도 자신을 버려야 했던 아버지를 이해했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의 선택이 자신이 편하려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아픔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당사자인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였는데 제3자인 우리가 그 아버지를 욕하고 손가락질할 필요가, 자격이 있을까요. 옛날이란 걸 감안해도 자식을 10명이나 낳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라 이 얘기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이 남습니다만..-_- 하필 또 딱 떨어지는 10명이나 되어서 과장이 있지 않을까. 실제로는 아들이 같이 살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나오면 자기합리화이지만 아무튼 이야기 속에서는 아들이 원하고 있다고 하지요.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한 비판과 이야기속 인물에 대한 비판은 다른 얘기인데 저는 이야기속 아버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공감은 못해도 돌은 못 던지겠네요..
13/12/10 10:18
tannenbaum님의 글을 보고 이 글을 읽었는데
으으...이게 미담인가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자식을 유괴해서 죽인 남자가 하느님한테 용서를 빌었고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자식의 어머니는 용서한 적이 없는데 말이죠 위 글에서는 버려진 아들이 용서를 한게 맞지만 내용을 보면 좀 소름돋네요 결국은 아버지와 아들의 유대관계 끊을 수 없는 정이 이 상황을 만든건데 예수 그리스도님이 이 상황을 만들어주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