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탔다. 졸음이 꾸벅꾸벅 밀려온다. 9시 강의는 없어져야 한다. 이건 뭐 전공필수를 9시에 넣어놓는 교수의 책장엔 분명 '아침형 인간'따위의 책이 꽂혀있을 것이고, 그 교수는 새벽 5시에 붉은색 원피스에 쭉쭉빵빵 몸매를 뽐내는 기상캐스터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겠지. 멍청한 아저씨 같으니라고, 그 시간에 잠을 자고 있었더라면 밤에 기운 없어 욕먹는 나날도 줄어들지 않겠어? 하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교수님을 깠다. 이렇게 까보지 언제 교수님을 까 보겠어.. 앞에서는 헤헤 넙죽넙죽 하고 있기 바쁜데. 아, 하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밤에 기운없다는 핑계라도 대는건가? 하며.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서울 안에 있지만 '오!'하는 대학은 아니다. 공부를 그냥 저냥 대충 평범하게 했다면 올 만한 학교라고 생각한다. (요새는 모르겠다.. 대학들이 더 오기 어려워졌다는 말들이 많아서.) 어릴때는 공부에 욕심도 없었고 좋은 대학보다 '사람'이 중요하지 하며 해적왕이 되고싶었다. 그치만 대학생활을 하다보니 확실히 서울 내셔날 유니버시티 과잠은 욕심이 났다. 동대문 가면 팔려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건 내가 타고 가는 버스가 서울대 입구를 지나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구에서 서울대가 멀다지만, 서울대 입구 사거리에 가면 서울대생들이 되게 많이 줄지어있다. 때때로 '우와 저렇게 공부잘하는 애들이 많다니..'하고 놀라기도 한다.
앞문이 치익 열리고 서울대 여학생이 탔다. 오, 서울대여대생! 하며 봤는데 어어? 오오? 어어어? 하고 여학생이 자리에 앉을때까지 가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냐고? 이쁘니까. 단발이 유행하는 요즘, 긴 쌩머리에 청순한 그녀~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심지어 힐도 신지 않았는데 다리도 이쁘고 몸매도 좋았다.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뭐 여자가 키가 중요한가.. 게다가 서울대라니. 공부도 잘하는데 저렇게 이쁜 아이라니 오 신이시여 하고 속으로 한탄을 뱉었다. 엇, 심지어 13학번 새내기다. Oh YeeeeeeeeeeeeeeeeeeeeeeeeS
그치만 사실 이건 머리속의 감상일 뿐 내 표정은 무표정 포커페이스 그 누구보다 시크하지. 뭐 어떡하겠습니까 제가 서울대생도 아니고 저 친구와 연관점이 있을 턱이 없는데.. 하고 생각하니 '번호를 물어보는게 어떨까'하고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뭐..뭣이? 핸..핸드폰 아니 스...스마트폰 번호라니. 될..될까? 하고 급 설레임의 물결을 탔다. 정류장 하나를 넘어가는 동안 망상은 빛의 속도로 우주가 확장되듯 넓어져 갔고 나는 잠깐 본 그녀의 얼굴이 홍조빛 올라온 수줍음으로 번질 때까지 생각의 바다를 둥둥 떠다녔다. "삐익" 하고 하차 벨이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지 않았다면 학교를 지나쳐서도 망상에 빠져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렇게 번호를 물어볼까 말까 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그녀는 요새 날씨가 풀려 더웠는지 긴 생머리를 살짝 귀 뒤로 모아 넘기는 것이다. 남성분들은 알 것이다. 매끈한 허벅지, 파인 가슴, 드러난 쇄골 이런것보다 '두근'하고 마음을 울리게 하는 행동중 하나가 여성의 목 뒷덜미라는 것을.. 희고 고운 목덜미라니. 덜컹 하고 배가 쑥 꺼지는 느낌이었다. '물어보자! 쪽팔리면 앞으로 지하철 통학이다!' 하고 용감히 다가갔다 척 척 척
"저기요."
"...?"
"저기.."
"저..저요?"
그녀는 주변을 빙글빙글 둘러보더니 자기를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핸드폰 번호, 아 아니 스마트폰 번호좀 주세요."
그러자 그녀는 어지간히 당황한듯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뒤로 질린듯이 당기고는
"저...저요? 왜...요?"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최대한 인자한 웃음을 지으려 애썼다. 물론 얼굴이 인자하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노력은 해 봐야지. 그러면 인자하다고 봐줘야 하지 않겠냐 이거지. 하며 다시금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
"그냥 참 예쁘셔서요. 괜찮으시면.."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어 저 아..네 어..근데.."
하며 슬그머니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나는 갑자기 날 가리키자 뭔가 싶어서 자상한 미소를 잊지 않고 왜요? 라고 되물었더니
"그..이에..그..."
하고 웃을락 말락 입술을 씰룩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아침에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하며 삼각김밥을 먹은 사실을 떠올렸다.
"아..어..합."
하고 입을 닫았다. 귀에서 증기기관의 증기가 뿜어져 올라갈 것 같았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어쩜 시력도 좋으셔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을 꼭 닫은채 멘붕이 온 나를 보고 그녀는 이내 "저..죄송해요 학교 가야해서.."하고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버렸다. 다음 정류장은 서울대 입구도 아니고 낙성대 입구였다. 너 왜 일찍 내리니. 왜 그런거니.
학교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난 서울대입구에서 재빨리 내렸다. 번호도 까이고 김가루도 끼고......아 이런 된장...하며 지하철을 탔다. 다시는 버스로 통학하지 않아야지..하고. 알고보니 낙성대에서 서울대로 마을버스가 다니더라. 그러나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 버스 안의 승객들은 얼마나 웃겼을까? 이불을 뻥뻥차다 종아리에 쥐가 와서 비명을 질렀다. 아프다...몸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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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핸드폰 번호 따려다 밴 당한 사연입니다.
길이 적절해 재미 적절해 결말 적절해.. 하.. PGR퀄리티네요.
이것만 쓰기는 허전해서
오늘 책을 잔뜩 샀습니다. 거의 15만원을 쓴 듯..
특별히 책에 뽐뿌가 온건 아니었는데, 언젠가부터 책을 잘 안읽게 된 것을 반성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관심있던 책들을 싸그리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했습니다. 글 쓰는데에 관심이 많다보니 좋은 작품을 많이 찾았었는데,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을 보면 몰입을 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이 문장은 이런 용도로, 아 이런 표현은 이런식으로' 읽다보니 독서 흥미가 확 줄었지요. 물론 그 덕분에 예전에 비해 글 쓰기가 한결 수월해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러다보니 인터넷 글 이외에는 잘 안보게 되고, 점점 독서에서 멀어지더군요. 그러다가 오늘,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다시 책을 잔뜩 샀습니다. 문장공부도 공부지만 다시 책이랑 친해져야 할 것 같아서요. 폰 번호 밴당해서 그런건 아니고.. 스트레스 풀려는 지름도 아닙니다...
제가 엄청 좋아하는 장르/대중 소설 작가인 윤현승의 신작'뫼신사냥꾼'전질세트와 '살해하는 운명카드'. 그리고 폴 오스터의 신작 선셋 파크와
일본 골든타임 드라마로도 제작된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히가시노 게이고의 차기작중 가장 큰 주목을 받고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리고 내 심장을 쏴라 라는 정유정씨의 장편소설. 거기에 인문교양서적으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까지.. 잔뜩 샀네요 잔뜩. 좋은 문장도 많이 건지고 감동도 많이 느꼈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는 표지의 문구때문에 사게 됐네요. '글 놀이판!'이라니. 안 살수가 없더군요. 글쓰기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는 소설도 도서관보다는 사서 보는걸 좋아합니다. 책에 줄 긋고 메모하기도 좋고, 보고싶을때 아무때나 책장에서 꺼내 볼 수 있어서(그래놓고 2번 본 책은 없다는게 함정이지만) 오랜만에 책을 잔뜩 사서 좋네요. 주말에는 일하고 남는 시간에 커피와 독서를 즐겨야 겠습니다.
여러분 번호 물어볼때는 꼭 양치질 체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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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분이 당황한데다 시간이 없어서 일단 내리고 내리고 나서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전에 글을 썼지만 막상 겪을때는 입에서 왜요? 부터 나왔으니까요 크크 이제 오유에 올라가고 다른곳에 다 퍼지면 그 여성분이 후회해서 이 글을 쓰신분을 찾을 것이고 찾아서 그때 번호 못드려서 죄송하다고 바빠서 그랬다고 하면서 연락처를 알려주실 것이고 그렇게 새 인연이 시작될 리가 없잖아요. 암요. 없어야 해요.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