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합격글이 자게에 많아서 쓸까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래도 저의 20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pgr에는 글을 써두는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해서 이렇게 글쓰기 버튼을 누릅니다.
중고등학교땐 저도 다른 pgr분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99PKO와 투니버스, 온게임넷으로 이어지는 스타리그를 보며 한때나마 프로의 꿈도 키웠었고, 같은 클랜에 있던 홍진호, 이윤열 선수가 프로게이머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프로게이머의 꿈을 꾸기엔 저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기에 공부를 마치고 더 노력해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마치고 게임을 해야겠다는 제 생각과는 달리 주객이 전도되어 게임이 공부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었고.. 수능에서도 여러번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멈춰서는 것은 싫어했기에 오기로 계속 공부를 했고(몸이 안좋아서 군대는 면제받은 상황입니다.) 결국 24살 07학번으로 지방에 있는 수의대에 합격하였습니다.
학교에 들어와서는 너무 늦은 나이라 게임은 그냥 취미로 했고.. 신입생 축제때 스타리그에 참가를 해서 준우승의 성적을 거두었었습니다. 그 후에는 와우를 했었구요. 뭐,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 학점도 별로였고 에프도 받아봤고.. 그런 대학생활을 보냈었습니다.
그러다가 본과 3학년이 된 2011년에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게임은 여가시간에 즐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목표했던 스2 저그 칼날 여왕 아이콘과 마스터는 달았습니다.. 크) 새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는데 지난 시간들이 꽤 후회가 되었었습니다. 기초가 부실한채로 새로 무언가를 쌓는다는 건 정말 어렵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본과 3,4학년을 보내고 수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그런 느낌은 점점 심했습니다. 주변에서 보기엔 합격률 90%에 달하는 매우 쉬운 자격시험에 불과했겠지만, 국가고시 준비 과정은 너무나도 방대한 공부량에 제가 무얼 공부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과정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가고시 시험을 보았고... 예상보다도 더 어려운 난이도에 매우 상심이 컸었습니다. 꾸준히 공부를 했던 동기들도 어려워했었는데 기초가 부족했던 터라 힘들었죠. 게다가 전 임상에 관심이 있었기에 기초과목쪽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나고.. 발표 하루 전에 전국 합격률이 87%로 전전년도, 전년도의 94%정도에 비해 매우 낮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게다가 저희학교는 전국 합격률에 비해 조금 낮은 합격률을 갖는 학교라 동기중에 탈락자가 10명 이상 생길 것으로 예상되어서 더욱 더 걱정을 했었죠. 이때 2박 3일 여행을 갔는데 정말 아무말도 못하고 표정이 굳어있었습니다.. 합격률 얘기 듣고 다음날 합격 발표 전까지는 너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을 하였고, 그 결과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통과하여 결국 수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다른 선배들이 볼때는 저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국가고시였지만.. 직접 준비하고 시험을 봐보니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할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합격을 확인하고 정말 기뻤습니다. 커트라인도 너무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하늘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격을 하고 나니 지나간 일들이 머리속을 주르륵 지나가더군요. 나이 30만에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절 지원해주시느라 고생하셨던 부모님께 가장 감사했구요. 또 죄송스러웠죠. 너무도 길을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대학원에 진학하여 2년동안 대학동물병원의 진료를 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월급수의사를 하며 경험을 쌓고 개인병원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국가고시에 힘들게 합격했기에, 더더욱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반려동물의 진료를 보려고 합니다.
서두에도 썼듯이 평범한 합격에 대한 글이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2004년부터 pgr을 이용해온 사람으로서, pgr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었기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시시콜콜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모두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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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심으로 동물들을 사랑한다고 느낀게 이십대 중후반쯤에서였는데
일찍 깨달았다면 수의사로서의 도전을 심각하게 고려해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많은 동물들과 반려인들을 위하여 힘써주시고
혹시 여력이 되신다면 점차 다양해지는 소수 반려동물들에게도 혜택을 가져주실 수 있는 의사가 되시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