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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22 12:38
도무제와 아들 탁발소에 대한 기록이 혼란스럽군요
제가 89년도 구입한 중국역사서에는 도무제의 아들 탁발소는 천하의 개망나니로 방탕한 생활을 일삼하 도무제가 심한야단에 심지어 거꾸로 매달아 매질까지했고 그 고쳐지지 않는 성정에 도무제는 애초 탁발소를 태자로 세울생각이 없었으며 그 생모 하씨는 다른문제(치정에 얽힌)로 도무제의 분노를 사 도무제가 죽이라 명해 이에 탁발소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 궁궐에 불을 지르고 적이 침입했다고 소란을 일으켜 놀란 도무제가 황급히 뛰어나오는 찰나를 노려 비수로 시해했다는 것이고 생모의 자귀모사에 강력반발해 궁을 나와있던 탁발사가 궁인의 연락으로 바로 생모의 출신인 독고부의 군세지원하에 궁을 접수 아우 소를 죽이고 즉위했다고 하는데 워낙 고대의 일이라 중국사서도 정론이 없다고 봐야 될런지 모르겠군요
13/01/22 13:12
정론이 없다기 보다는 후대의 사서들은 그 이전의 사서를 참고하거나 혹은 다른 사서들을 주석으로 쓰곤 합니다. 삼국지 정사가 그런식인데... 후대의 자치통감이나 이십이사차기와 정사의 기록도 상당히 엇갈리는 경우는 많습니다. 특히나 중간중간에 전쟁이라던가 이민족의 침입이 있을경우 사서가 분실 또는 훼손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기때문에... 역사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한 역사를 두고 교차검증을 해야하는게 필수적이고도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동시대 기록된 사서임에도 그 사람의 시각이 어떻느냐에 따라서 어느 한 인물의 평이 완전히 극과 극으로 평가되곤 합니다. 그래서...역사 어려워요...
13/01/22 18:10
역사서의 편찬자 사관에 의한 흔들림은 동서고금의 공통된 사항이니
제가 읽은 도무제와 탁발사기록은 일단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근거한 겁니다.
13/01/22 18:08
참고로 자귀모사는 엄밀히 북위의 탁발씨가 시작한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기록은 전한무제가 태자의 반란으로 결국 위황후가 낳은 적장자 태자를 사사한후 나이어른 황자를 새로 태자로 세우며 이미 늙은 자신의 사후 아직 젊은 태자의 생모와 그 인척이 발호할까 우려해 태자의 생모에게 사사를 명해 죽인게 공식적인 최초의 자귀모사죠 즉 한나라 무제가 저 태자의 생모를 사사시키는 비인간적 제도를 가장 먼저시행한 장본인입니다.
13/01/22 18:11
괴랄이라늠 말이 딱 맞는 제도네요-_-; 그런데 명원제는 자귀모사로 인해 어머니를 잃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더 강력히 시행했다고 하니 이해가 가질 않네요...
13/01/22 20:58
명원제는 아마도 도무제의 뜻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태종이 상왕으로서 자신의 장인인 심온 일가를 모두 몰살시킨 일에 세종은 생전에 선왕이 결정한 일이라고 해서 자신의 처가를 복권해주지 않았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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