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님의 6.25 전쟁글이 올라오기를 고대하는 사람입니다. 눈시님께서 요즘 바쁘셔서 글을 올리기 힘드시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는 않습니다.(본래 좋은 글은 시간이 걸리는 법 아닙니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가 6.25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적어보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6.25를 겪은 세대가 아닙니다. 저의 할아버지가 겪은 전쟁이지요. 그런 저에게 6.25란 그저 옛날에 일어났던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한 마디로 아~ 그땐 그랬구나 정도) 배운 거라고 해도 할 말이 업죠 -_-;;. 우선 중학교 국사시간때는 광복 이후는 거의 휘리릭 넘어갑니다(대충 광복 -> 6.25 -> 4.19 -> 군부독재 -> 5.18 -> 6월항쟁 이런 식으로 진행했고 그마저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끝.).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국사는 청동기 시대 ~ 운요호 사건 까지밖에 안하고, 2학년 때는 이과인데다 문과 과목으로는 법과사회를 배웠지 국사나 근현대사는 남의 나라일(...). 대한민국 근현대사 부분은 중~고등학교때는 거의 안배웠습니다.
딱히 6.25에 관심도 없고 고작해야 남한이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상륙으로 올라오고 그 후, 중공군이 내려와 다시 밀렸다가 어찌저찌해서 휴전됐다. 이게 제가 알았던 6.25였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할아버지가 방첩대로 복무했다는 것만 알았구요.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건 고3 때 였죠. 그해 추석때 하라는 수능공부는 안하고 친척집에 갔습니다 ^^. 친척집에 가서 공부하기도 뭣하고 그냥 거실에 가만히 있다 할아버지 다리 주무르기 위해 할아버지 방에 갔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방의 TV에서 예전 드라마가 나왔는데, 마침 6.25전쟁 부분이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저는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6.25때 어땠어?" (대략 이런 느낌)
할아버지가 잠시 가만히 계시더니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중에 할아버지의 먼 친척분이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당시 국군은 인천상륙작전 이후로 밀고 올라가는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먼 친척 분의 마을도 막 수복되었던 참이었습니다. 고향 마을 가려던 친척 분에게 할아버지는 신분증 같은 것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마을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수복하고 나서 보복이 벌어지는 바람에 친척분도 신분증없었으면 죽을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 중에 돌아오지 못한 친구도 있다고도 말하셨구요.
그 말을 들고 처음에는 충격을 먹었죠. 60년 가까이 지났는데 또렷하게 기억하셨으니까요. 다음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잊지 못하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텐데 전혀 생각도 안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6.25에대해 몰라도 한참 몰랐다는 것에 할말이 없어졌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할아버지는 전쟁 발발 당시 대학교 1학년생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는 대학에 못 돌아갔다는 사실도요. 가족 부양하느라 대학을 포기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6.25에 대해 알아보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네요.
아 마지막으로 왜 할아버지 세대가 북한에 대해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할아버지세대 하면 매우 안좋은 인식을 갖고 있었던 터라 할아버지 세대를 많이 무시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왜 할아버지세대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지 이해가 갔습니다. 만약 북한이 안 쳐들어 왔으면 친척이 죽을뻔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됬고, 마을 친구가 일찍 죽지 않았을 거니까요.
지금도 가끔 그 때 대화 마지막에 할아버지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공산주의는 나쁜게 아녀. 불란서나 저 보면 있어도 되는 거여. 근데, 우리나라는 위에 빨갱이들이 있어갔고 하면 안되는 거라."
ps. 이글 쓰다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저에게 와서 대뜸 물었는데 그것이..
"이완용은 어떤 사람이야?"
친구들에게 안물었봤냐고 말했더니 친구들도 모른다고 해서 멘붕을 겪은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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