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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20 02:59:15
Name 진동면도기
Subject [일반] [재일교포사] 일본 최초의 재일교포 중의원으로 당선했던 아라이 쇼케이 上
[재일교포사] 일본 최초의 재일교포 중의원으로 당선했던 아라이 쇼케이.


호텔방에는 빈 위스키 병 여러 개가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취한 목소리로 그는 옛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도 일본에 있었나. 이런 작은 나라에 집착하지 말고 더 큰 나라에서 활약하는 게 낫지 않겠나.”
통화가 끝난 뒤 그는 욕실에서 허리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8년 2월 19일 오전 3시 일본 중의원 의원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는 50세의 짧은 삶을 이렇게 마감했다.

'[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日중의원 아라이 자살' 이란 이름의 동아일보 기사에 나온 아라이 쇼케이에 (한국이름 박경재) 관한 첫부분 언급입니다. 우연히 이 기사를 접하고 전 아라이 쇼케이라는 인물에 형용할 수 없을만큼 강한 마력을 느꼈습니다. 재일교포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표현한 듯한 아라이 의원의 절망적인 죽음이 왜 일어났나 한번 같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라이 쇼케이는 1948년 오사카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가 한국인. 정확히는 북한 국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했고 덕분에 꽤 부유했다고 합니다. 여느 재일교포들보다는 분명히 나은 상황이었지만 아라이 쇼케이는 나중에 의원이 되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자신도 어렸을 땐 재일교포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재일교포 차별은 뿌리가 깊습니다.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내부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재일교포 등의 잘못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재일교포들의 고향인 한국은 옛날에는 경제력 외교력 등 여러모로 일본과는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라고 할 만큼 심했고 거기다가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고 있기에 재일교포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질 않았습니다.

아라이 쇼케이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진 박경재라는 한국 이름을 썼습니다. 허나 거듭된 차별을 버티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두 일본으로 귀화를 합니다. 국적을 일본으로 바꾼 것이었죠. 재일교포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무국적(조선국적), 한국국적, 일본국적. 해방전 조선국적을 가지고 있는 자는 국적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북한은 일본에서 나라로 인정하고 있질 않기 때문에 재일교포들은 현실적으로 한국국적이나 일본국적을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적을 바꾸기 전에는 대학교 입학이나 취업이 불가능 했고 바꿔도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나는 조선 국적이었기 때문에 일본 소년들이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은 틀림없이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는데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별세계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 아라이 쇼케이 중의원 당선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라이 쇼케이는 일본국적을 취득하고 도쿄대 이학부에 진학합니다. 동경대라고도 불리는 도쿄대는 일본 사람이라면 모두 들어가길 소망하는 엘리스 코스의 단계이고 아라이 쇼케이는 강한 성공 열망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의 배경에는 아마 어릴 때 받아왔던 차별에서 얻은 깨달음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라이 쇼케이는 입학하자 마자 학생 운동인 동대 투쟁에 매일 같이 동참했다고 합니다. 아라이는 경제학부로 편입하고 도쿄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합니다.

도쿄대를 졸업한 후 아라이는 바로 신일본제철에(우리나라로 치면 포스코) 기술자로 입사합니다. 이 때만 해도 아라이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육체 노동자로 평범하게 살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선지 아라이는 마음을 바꿔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낮에는 회사에 나가고 밤에는 공부를 한 끝에 아라이는 우리나라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국가고시를 패스하고 대장성에 들어 갑니다. 대장성은 일본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모이는 곳으로 일본을 움직이는 중추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며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발판이 되는 곳입니다. 구성원들은 상당수가 도쿄대 법학과 출신으로 민간기업 출신이 들어간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아라이 쇼케이는 관료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두각을 나타내고 후생 대신(우리나라로 치면 보건복지부 장관) 와타나베 미치오의 비서가 됩니다. ‘아라이 군을 처음 대하는 순간부터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라고 와타나베 미치오가 평소에 말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와타나베 미치오는 같이 있는 동안 아라이를 총애했고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중의원 출마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합니다. 와타나베 미치오가 딸을 아라이와 결혼시키려고 했고 자신의 선거구까지 준 것으로 보아 거의 친아들만큼이나 아라이를 아낀 걸로 보입니다. 실제로 와타나베는 정치인이 된 후에도 아라이를 물심양면으로 계속 후원 해줍니다.

그리하여 아라이 쇼스케는 1983년 일본 도쿄 제2구 자민당(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도쿄 제2구는 일본의 정치 1번가로 불리며 유명한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었습니다. 유력 정치인 와타나베의 후원. 젊은 나이에 잘생긴 외모. 자민당의 텃밭인 그곳에서 그는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검은 실 사건이 터지며 그는 정치인 되는 길에서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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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댓글은 잘 달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는 모두 본문에 적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자주 들어와 살펴보니 댓글로 토론이나 의견 교환 해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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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체프
12/08/20 03:49
수정 아이콘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몹시 흥미로워했던 일인데 이렇게 접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재일교포 문제는 한일간의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와 맞물려 있어서 더더욱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핫초코
12/08/21 04:46
수정 아이콘
2ch보니 '한국이 관동대지진 일으킨 증거'이딴식의 글 있어서 진저리 났는데 오죽할까 싶어요.
한국은 한국인학교도 얼마 짓지 않아 어쩔수없이 조선학교나 일본학교로 가게 만드는 거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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