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제가 사는 집 창문 밖에 사시는 분(?)들 입니다. 제가 사는 다세대주택 바로 옆으로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와 테니스장이 있는데 테니스장에 딸려있는 컨테이너의 지붕과 담장 사이에 있는 모습들입니다. 여긴 사람들 손길이 잘 안 닿는 곳이라 사실상 이 분들의 천국이죠.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동네마다 길냥이라고 부르는 길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린벨트인 뒷산이 있는 우리 동네는 더 많이 서식하는 편이죠. 동네 주민들 중에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뜯고 새벽마다 우는 소리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용한 공존을 선택합니다. 저 역시 새벽에 글을 쓰다가 이 친구들의 훼방을 받곤 하지만 크게 방해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잠깐 해가 떴을 때 단체로 놀러 나오신 광경을 살짝 찍어봤습니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이 암컷과 수컷, 그리고 새끼 다섯마리까지 모두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건 극히 드문 광경입니다. 보통은 암컷이 새끼 한 두 마리만 데리고 있다가 조금 크면 멀리 쫓아버리곤 합니다. 냉정하다기 보다는 길냥이들의 생존법칙인 것 같은데 이 가족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내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까 앞집의 빈 지하실에서 거처를 제공해주고, 동네 주민들 중에 물과 음식을 주는 분들이 계셔서 헤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위 사진은 창문의 쇠창살 너머로 휴대폰을 내밀고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뛰어놀던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쳐다봐주실때 찍은 겁니다. 오른쪽 위에 엉덩이만 살짝 찬조출연하신 분이 아마 아빠인 것 같습니다. 새끼가 다섯마리인데 저렇게 노란 빛깔을 띤 고양이가 두 마리, 엄마를 닮은 달마시안 스타일이 한 마리, 그리고 호랑이 가죽 같은걸(?) 뒤집어 쓴 새끼가 두 마리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모두 모여있는 걸 찍으려고 했는데 엄마 고양이가 직전에 아래로 뛰어내리셨습니다. 결국 아빠 고양이와 다섯 새끼들만 나왔네요. 제법 높은 데다가 중간에 가시철조망도 있어서 보는 내내 조심하라고 얘기해줬습니다만 다들 능숙하시더군요. 새끼들은 뭐가 신나는지 컨테이너 박스 위를 신나게 뛰어다녔고, 엄마 고양이는 구석에 앉아서 그런 새끼들을 쳐다봤습니다. 아빠 고양이는 자식들과 함께 놀아주면서 그물이나 가시철망에 다치지 않게 신경쓰는것 같았습니다. 철망 사이로 이 가족들이 노는 모습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습니다. 원래 우리집은 애완동물은 안 키웠습니다만 우연히 새끼 길 고양이 한 마리와 동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약 9년 정도 한 가족처럼 지내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 고양이 덕분에 우리 가족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잘 넘기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저 역시 이 고양이 가족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마음속의 상처와 긴장감을 치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열하면 할 수록 잃는게 많은 게 삶인 것 같습니다. 경쟁만을 외치다가 왜 경쟁해야 하는지, 결승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죠. 저는 이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제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믿습니다. 최근에 채근담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좋은게 좋은 거라는 말이 반복되는 따분한 옛날 책일수도 있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든 다음에 다시 읽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구절이 많았습니다. 특히 집착을 버리라는 얘기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강조하는 구절들은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니까 아빠 고양이가 새끼들을 끌고 집으로 돌아가네요. 엄마 고양이는 제일 뒤에서 처지는 새끼들이 없는지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삶이 행복하고 여유롭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그걸 지켜보는 저 역시 행복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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