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사람이 여자사람에게 공을 던집니다.
뭔가 커다란 결심을 한채 용기를 쥐어짜내서 내던지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날씨 좋지?' 그 정도 느낌의 가볍게 던지는 듯한 말투 입니다.
문제는 '어디가 좋았는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도 좋아하는것처럼 말을 툭 던지는게 살짝 걸리긴 합니다만...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남자사람은 여자사람이 '글쎄? 어디가 좋은데?' '나도 알아 나 이쁜거'
이런식의 대답을 기대하고 거기에 맞춰서 바로 반격을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남자사람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사람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대답이 들려옵니다.
'그런걸 어떻게 물어봐. 안돼 미안해서 못물어봐. 그런거 물어보지마.'
여자사람은 조금이라도 남자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사실 그런것보단 자신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 남자사람이 자신을 혹여나 싫어하거나 멀리하게 될까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남자사람은 질문을 바꿔서 던져봅니다.
'그러면 얼마전에 소개팅 했다는 남자 이야기나 들려줘봐. 만나면 뭐해?'
'아, 그 남자 완전 지자랑 하는것밖에 기억 안나.
자기집이 좀 사네. 자기가 학원 부원장이네. 이모가 학원 원장이네. 뭐 그런거? 몰라 재수없어.
그래도 차가있는 남자를 처음 소개 받았는데 그건 좋았던거 같아.
아 그리고 만날때마다 마술 같은것도 보여줬는데 그것도 괜찮았어
사람에 대해서 별 느낌은 없었는데 서너번 데이트 한거 같은데 그 남자가 너무 바빠서 서너번 만나고 헤어졌어
몇번 만난건 그래도 차 때문인가?
난 별로 였는데 잘 안된다음에 소개시켜준 언니들이 니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한참 구박했어.
사실 차 없어도 그냥 사람이 좋으면 같이 버스타고 다니고 그게 더 좋은거 같은데...아무튼 아 모르겠어'
'이런 된장같으니.... 그럼 뭐야 차인거야 아니면 찬거야?'
'차인것도 아니고 찬것도 아니라니깐 몇번 문자보내고 만나서 밥먹고 영화보고 그랬는데
처음부터 그쪽에서 바쁜척하면서 연락이 잘안되서 나중에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한거지'
'하하 그럼 전에 지하철에서 헌팅 당했다는 남자는?'
'몰라 그땐 더 어이없었어. 그때 번호를 달라고 하길래 번호 주고 몇번 만나긴 했지만 별로 느낌은 아니였거든.
그래서 나중에 거절할려고 했는데 그 남자가 나보고 마지막에 뭐라고 한줄 알아?
나랑 사귀면 손해는 안볼텐데? 이러는거 있지. 완전...'
남자사람은 정말 크게 웃습니다.
여자사람은 신이 났는지 (전)남자친구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더 미치겠는건 헤어진 남자친구도 나한테 종종 전화해서 이렇게 말하는거야 '넌 나 없으면 안돼'
내 친구들은 그 소리 듣고 미친놈이라고 하지만 근데 또 그렇게 그 아이가 욕먹는건 또 기분이 안좋다?
친구들은 개가 하는짓이 '나갖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까운' 딱 그런 상황이라는데 정말 그런거 같기도하고...
거기에 오빠가 준 연애시대책을 보고 더 마음이 싱숭생숭 해졌어.'
'나라면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라고 할텐데 친구들이 참 착하네.
뭐 헤어진지 2년이나 다되가는데 지금도 전화해서 그런다니 뭐 충분히 미친놈인거 같긴하다
개는 이제 다른 여자친구도 있다매 그런놈이 최근까지도 전화해서 그런소리 한단말야?'
'아니 전화도 하고 가끔만나기도 했고.......뭐 자주는 아니였지만'
'역시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 맞는거 같다. 아니 왜 만나?'
'아냐! 이제는 안그래. 얼마전 추석에도 문자왔는데 무시하기도 했고...근데 그때도 참 서울에서 부산가는 기차에서
연애시대 다 읽자마자 그런 문자가 오는데 얼마나 기분이 이상하던지...다 오빠 때문이야.'
남자사람은 다시 빨간수첩을 꺼내서 몇장 넘기더니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마음만 붙는다면 재결합 할 수 있다'
라는 질문을 보여줍니다.
여자사람은 가만히 수첩을 들여다보며 포스트잇을 떼어내며 남자사람이 준비한 객관식 답을 고릅니다.
대답은 하지 않고 남자사람의 예상답변을 살펴보며 가만히 웃음만 짓습니다.
'니가 어디가 좋은지 말해줄게. 위에 말한 남자들까지 포함해서...'
'아, 몰라 말하지 말라니깐...'
'그냥 딴거 없어. 니가 만만해서야'
'만만해서?'
'응 만만해서 그냥 만만한거야 만만해서 좋은거 같아
화장기 없는 수수한 외모 잘 쳐주면 청순..까진 될려나?
그리고 긴 생머리 화장이나 옷차림도 딱 봐도 여성스럽지 않나? 뭐 내가 그렇게 여자를 잘 보는 편은 못되지만...
일단 외모도 적당히 만만하고
성격도 적당히 만만해보이고
짤러보면 웬지 싫어도 제대로 싫은척 못하고 일단 한번 고민은 해볼거 같은 느낌이니 남자들이 맘편하게 찔러보는 느낌 아닐까.
애라면 시험삼아 찔러볼만하다. 찔러서 걸리면 좋은거고 뭐 아니여도 큰 상처나 미련은 없을거 같고
그냥 한마디로 니가 만만하니깐 좋아하는거 아닐까? 내가 너에게 고백한것도 결국 만만해서 그런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흐리멍텅해보여?'
'흐리멍텅이라 하하 정말 그렇네. 아 상처받지 마라.
만만하지 않고서야 헤어진 남자친구가 너한테 전화해서 그런 미친 소리를 하겠으며
그 학원선생이라는 작자도 몇번 데이트를 한거 같지만 결국 연락이 없었던것도 큰 미련은 없으니깐...아 그래. 물론 너도 별로라고 했지.
그리고 정말 지하철 헌팅남은 '나랑 사귀면 손해는 없을텐데?' 이건 정말 하하...
무엇보다 내가 너한테 고백했다는 자체가 니가 만만하다는 가장 큰 증거가 되지 않을까?
물론 고백하는게 뭐 그리 큰 대수겠냐만은...하하'
'내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만만한가'
'만만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꼭 나쁜건 아니야. 사실 뭐 다른식으로 표현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예를 들자면 만만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거 같아서...
외모나 성격 스타일 뭐 이것저것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치 매력을 메길 수 있다면 니가 딱 표준점수에 근접하지 않을까?'
더이상 여자사람의 표정이 복잡해지기 전에 화제를 돌립니다.
'내친구중에 제일친한 (d)진이라는애 알지? 연애를 하거든 한 2년쯤 됐나.
그리고 그쪽 커플이 나를 되게 좋아하거든. 물론 웬지는 모르겠다만...
그쪽 커플 여친님께서 나를 집으로 초대하셨거든. 셋이서 세상에 술도 아니고 차마시면서 아주 밤새 수다를 떨었다.
술이 아닌 차로 밤새면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무튼 여자친구에게 도대체 진이가 왜 좋은지 물어봤거든?'
'어디가 좋다고 하는데?'
'하하 말이 없는게 좋대. 정말 다른게 없고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참견하지도않고
자신이 하자는대로 잘 따라오고 이것저것 자신이 떠들면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어주는 그런 모습이 좋대.
정말 말이 없는게 가장 큰 매력이래.
뭐 나야 워낙 진이랑 오래 알고 지냈으니깐 여자친구가 말하는 매력이 뭔지 알거같은데
정말 다른 여자가 그런식으로 그 친구를 좋아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말없는거 말고 좋아하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아 그리고 개네는 동거라고 해야하나. 뭐 그렇게 생활하고 있더라.
그리고 여자친구가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친구인데 어떻게 또 그렇게 살고 있는거 보니 그것도 굉장히 신기하더라.'
'와 부럽다...멋진거 같아.'
'하하 저게 부러워?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
진이네 집이 여자친구 집에서 5분 떨어진 곳에 있는 고시원이고 실 생활은 여자친구집에서 하는거거든.
동진이가 컴퓨터에 야동을 모아두고 있단 말이지.'
'야동? 아 뭐야 오빠도 그런거봐?'
'그럼 너는 안보냐? 음 넌 안볼거 같다. 아 모르겠다.
내가 그런거 안보는 순결한 남자에요 라고 말하면 넌 믿을래?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야동에는 몇가지 등급이 있거든.
아주 약한거, 좀 약한거 그냥 그런거 좀 쎈거 아주쎈거 아주아주쎈거'
뭐 이렇게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아무튼 진이가 아주쎈거를 고시원 컴퓨터에 모셔둔거야.
근데 여자친구가 진이한테 문자를 보낸거야. '나 컴퓨터에서 그거봤어...'
'뭘 본건데?'
'폴더 제목이 '엉덩이'였거든. 아 이건 설명하기 어렵다.'
여자사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사실 굳이 이 상황에서 끼워넣을만한 유머 아니 분명 무리수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남자사람의 얼굴에는 전혀 표정의 미동이 없습니다.
좀 전에는 게이남자에서 다음이 엉덩이까지 대화가 도무지 어디로 튈지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난 친구들끼리도 그런 이야기 한번도 해본적 없는데...'
'그럼 나랑 하는건 괜찮아? 하긴 넌 한게 아니라 듣기만 했구나.
뭐 내 이야기도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 그리고 오빠가 순진하다는건 나보다 니가 더 잘 알텐데?
넌 나보다 연애경험도 훨씬 길고 많은데 도대체 연애할때 뭐하고 살았냐?'
'그냥 남들 연애 하는거랑 똑같지 뭐 다를거 있나!'
남자사람의 가방에는 여자사람에게 선물로 줄 책(퍼레이드:일본소설)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내용이지만 '페라치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자'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남자사람은 과연 여자사람이 소설에서 그 말이 뭔지 이해할 수 있을까 속으로 상상해봅니다.
표정을 보니 아마도 모를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사람은 딴청을 피우며 수첩을 뒤적거립니다.
'이건 뭐야? '1박 2일 여행을 갈 수 있다?'
'아 그거 나랑 1박 2일 여행 갈 수 있냐는거야 갈 수 있냐?'
여자사람은 남자사람의 예상답변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어봅니다.
'물론 갈 수 있다. 나름 재미있고 참신한 여행이 될거 같다
우리사이에 여행 못갈갈게 뭐있냐?'
'아 뭐 꼭 못갈건 없는데...생각 좀 해봐야겠다. 근데 굳이 가야하나?'
'못간다. 여행은 가족,친구,연인이랑 가는거다. 오빠랑은 당연히 갈 수없다.
그리고 오빠도 남자사람이지 아닌가 오빠를 뭘로 믿고 여행은 못감'
'이봐요 나 오늘 서울 왔거든요.
오늘 하룻밤 자거든요. 무슨말 할려고 하는건지 알겠는데
그냥 오빠는 오빠거든요. 하여튼 질문 꼬라지 하고는...'
여자는 당연히 4번을 골랐습니다.
남자사람은 수첩질문 예상답변 4번 모두에다가 여자사람이 도망갈 만한 구석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당연히 내가 너한테 여행가자고 왜 하겠냐. 하하 뭐 근데 그런건 해볼만 한거 같다.
둘이 여행을 가는거야. 그리고 포도주를 한병사는거지. 그리고 서로의 술잔에 따르면서 준비해간 선서문을 읽는거지.
나 xx는 너 xx는 평생 남녀의 선을 넘지 않고 좋은 의남매로 변치않을것을 맹세합니다.
의남매 결연식이라고 해야하나?'
'뭐야 그게, 이상해!'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벌써 새벽 두시가 다 되갑니다.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청계천에서 용산으로 가는 택시를 탑니다.
서울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고 소문난 용산의 드래곤 힐스파 찜질방 입니다.
새벽 2시 30분 입니다.
이제 8시간 30분 정도 남았네요
밤 늦은 시간이라 대화밖에 한게 없네요.
두편정도면 마무리가 될거 같습니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지 못해 죄송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날의 데이트는 해피엔딩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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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쪽글만으로 남들 사이의 달달한 관계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거니와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게 참 예의에도 어긋나는 짓이긴 합니다만,
글에 나오는 모습에서 느껴지기로는 글쓴이님 보다 상대방 분께서
남녀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일반적인 인간 관계를 대하는 여러 모습에서
여러 수 위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아주 약한거, 좀 약한거 그냥 그런거 좀 쎈거 아주쎈거 아주아주쎈거의 등급에 별 생각 없었는데
sinfire님의 리플을 보고 애..애..? 하면서 무언가를 검색해보니 이런, 안다고 생각한 단어의 모르는 뜻이 있었군요.
그 후에 막 궁금해져서 남자친구한테 야동의 등급을 매겨달라는 요청을 했더니 땀만 뻘뻘 흘리네요. 어헛.
이런 거 물어보면 안되는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