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했던 팀타율 .300을 기록했던 팀이 있습니다. 바로 1987년 삼성라이온즈 입니다.
당시 박영길이라는 당대 최고의 타격 조련가가 감독으로 부임했던 그 해에 삼성은 저런 놀라운 기록을 남겼었죠. 어떤 팀도 삼성의 타력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가 제가 처음으로 야구라는 것을 제대로, 그리고 어떤 팀을 응원하면서 보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더불어 저의 슬픈 야구팬 생활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구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30여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입니다. 그에 비해 삼성라이온즈는 대구를 연고로 하고 있는 팀이죠. 어쩌면 제가 삼성을 응원할 이유는 없을 수도 있는데요.
제가 삼성, 그것도 2002년 전까지 지지리도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삼성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저희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고향이 대구 분이십니다. 대구에서 태어나셨고, 중학생 시절까지 대구에서 사셨습니다.
아버지가 대구에 사시던 시절까지는 아버지 집안이 지역 유지였다고 하네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땅도 많고 밭도 많고, 수많은 소작농들을 거느린 지주같은 분이셨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형님(아버지는 늦둥이셨습니다.)께서 그 많던 재산을 사업 실패 등으로 날리신 관계로, 아버지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부터 서울로 이사와서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바뀐 가난한 환경에서 아버지는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나름대로 언론계에 몸담게 되셨구요.
그래서 인지 저희 아버지는 고향인 대구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하셨습니다. 프로야구가 없던 70년대에도 고교야구 보시면서 자신의 출신교도 아닌 '대구상고', '경북고' 등을 응원하시며 야구장에 들락거리셨다네요. (정작 본인은 야구 명문 경동고 출신이심에도 말이죠.)
그런 분이 프로야구가 개막했을때, 그것도 정권에서 나름 의도적으로 지역색을 강화해서 국민들이 야구에 몰입하게 한 시점에 대구 연고인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지 않았을 리가 만무했을것입니다.
더군다나 82년의 그 명승부 아시죠? (어쩌면 삼성에게는 불운의 시작이었지만....) 그 억울한 삼성의 시리즈 패배는 아버지를 더욱 야구에 집착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품에 안겨있던 세 살 때부터 야구를 봤습니다. (뭔지는 몰랐겠지만...) 아직도 잘은 기억이 안나지만 84년, 85년 경에 온 가족, 친척이 모여서 그 촌스러운 푸르딩딩한 유니폼을 입고 있던 라이온즈를 응원했던 장면의 기억이 있습니다. 안타치면 박수치고 홈런치면 환호하고.... 그런 모습이 야구가 뭔지도 모르는 저에게는 '저 푸르딩딩한 옷 입은 사람들이 이기는게 좋은거구나~'라는 무의식을 가져다 주었나봅니다.
그래서 이제 야구 규칙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어떻게 점수가 나며 이기고 지는 지를 알게 된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저는 아버지의 팀인 삼성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선택은 저를 비운의 팬, 슬픔의 팬, 애증의 팬으로 만들었습니다. 약 15년 가까운 시간동안 말이죠...
그 당시는 해태가 너무 미웠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시즌에 잘해도(실제 1987년에는 팀타율 3할을 기반으로 전후기리그 모두 1위를 차지했었죠.) 이상하게 한국시리즈만 올라가면 해태에게 기를 못폈습니다. 선동열, 김정수, 문희수, 김성한, 김종모, 김봉연, 이순철, ...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었죠. 특히 당시 김응룡 해태 감독은 어린 저에겐 어디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삼성이 해태를 뛰어넘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런 해태를 삼성이 처음으로 뛰어넘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1990년입니다. 플레이오프에서 해태에게 3연승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거죠. 더군다나 몇 년 동안 삼성에겐 넘사벽이었던 선동열을 두들기며 이긴 3연승이기에 너무도 기뻤습니다. 당시 한국시리즈 직행한 LG는 예전 80년대 해태에 비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일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아시다시피 4:0의 참혹한 시리즈 스윕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삼성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찾아옵니다. 양준혁과 박충식이라는 투타의 핵심 신인이 가세했던 1993년입니다. 정말 삼성은 우승에 한이 맺혔는지 죽기살기로 해태에게 덤볐습니다. 아직도 이름만 떠올리면 가슴이 짠한 박충식 선수는 넘사벽 선동열을 상대하며 15회 완투도 했었죠. 그러나 결국 선동열, 김성한과 혜성처럼 등장한 이종범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은 몇 년간의 암흑기로 들어갑니다. 저 역시 그 때부터 삼성에 대한 암흑기라면 암흑기가 시작되었죠.
늘 깨지고 얻어터지는... 그렇다고 다른 야구팬들에게 인기도 없는 삼성을 내가 응원하고 있다는게 너무 싫었습니다.
반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해태 아니면 LG, 롯데 등을 응원했고, 간간히 빙그레와 OB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삼성은 저 혼자였습니다. (특히 해태응원하는 친구들은 저를 무지 싫어했습니다. 이유 역시 제가 해태를 싫어하는 이유와 대동소이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저는 나름 결단을 내리고, 응원하는 팀을 옮기려고 무단 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95년 OB베어스 우승 장면에 감동을 받아서 잠시 OB도 응원해 봤구요.
친구가 LG팬이라서 같이 응원갔다가 LG의 응원 분위기와 치어리더(응?)가 맘에 들어서 LG응원하며 홈경기에 자주 가기도 했었죠. 그 해 한 1년 정도 LG팬이 되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계속 저 스스로를 세뇌시켰습니다. '나는 서울 사람이니 서울팀을 응원하는게 맞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홈경기를 갈 수 있어야 진짜 팬이다.', '삼성은 늙은 팀이고 LG는 젊은 팀이니 LG가 내가 응원해야 할 팀이다.' 등등... 별의별 합리화를 다 하면서 제 뼈속까지 스며있던 삼성의 파란색을 지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건... LG가 다른 팀과 경기할 때는(특히 해태^^;) LG이기면 너무 좋았는데... LG가 삼성과 경기할 때만큼은, 진짜 응원이 입에서 안나오더군요.
삼성 파란색이 너무 꼴보기 싫은데... 저 푸르딩딩한 촌스러운 옷을 입은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너무도 꼴보기는 싫었는데... 도저히 LG가 삼성을 상대로 점수를 내는 것이 좋지는 않은 겁니다....
그렇게 LG를 응원하던 1년 동안 항상 삼성과의 경기는 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두 팀의 경기때 마다 저 자신을 혹사하다가... 결국......
97년 말에 저는 결국 제 스스로에게 항복해 버렸습니다. 이미 제 뼈속까지 스며든 파란색은 지울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푸르딩딩한 라이온즈가 꼴찌를 하든 1위를 하든... 나는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체념을 해버렸죠.
그리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기던 지든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이라고 해야 할 까요?
그리고 난 97년 플레이오프, 제가 잠시 응원했던 LG와의 플레이오프 혈투 때부터 저는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삼성을 응원해왔습니다.
그리고 돈성파동, 양준혁 트레이드, 이만수 퇴출 등 삼성 구단의 막돼먹은 행동에 분노하긴 했으나, 그냥 그런 부분때문에 운명같은 나의 팀을 버릴 수는 없었기에... 여전히 푸르딩딩한 라이온즈를 응원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마해영 선수의 끝내기홈런에 눈물 흘리며,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구요.
2005년과 2006년 두 번의 우승을 통해 여러 번 우승하는 강한 팀을 응원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꼈답니다.
참 신기한건 말이죠. 제가 푸르딩딩 라이온즈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니, 정말 운명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간절하게 우승을 바래던 끝에 첫 우승의 감격은 누렸던 2002년은 제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위암이라는 병이 발견되었던 해입니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저는 너무 놀랜 나머지 급하게 정량제 긁어모아서 휴가를 내고 병간호를 했는데요. 그 휴가 기간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간호하던 어려운 마음 가운데 삼성의 드라마티간 한국시리즈 첫 우승은 저를 참 많이 위로해 주었구요.
그리고 그 해 어머니께서 정말 기적적으로 나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다시 암이 재발한 해가 바로 2005년이었습니다. 그 해 여름부터 재발하여 결국 그 해 말에 천국으로 이사가셨는데요. 한참 말라가시는 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기 때 삼성은 가을 시리즈를 치렀고, 그 때 역시 삼성이 우승을 했습니다. 그것도 강팀만이 가능하다는 시리즈 4:0스윕으로 말이죠. (두산팬에겐 죄송합니다. ^^;)
어머니 돌아가신 직후 맞았던 2006년은 제겐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제대로 간호하지 못했던, 어렸을때부터 속을 썩혀드렸던 죄책감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죠. 그런데 홀로 되신 아버지는 저보다 더 괴로운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날마다 어머니 이름을 부르시며 눈물을 흘리셨구요, 가끔 약간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모습도 보여주셔서 저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보다는 아내를 잃은 충격이 훨씬 더 크다는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보다 훨씬 더 힘드시고 괴로우신 아버지 앞에서 저의 약한 모습을 차마 보여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지병이 있으신 아버지께서 행여나 그 충격에 어머니 뒤를 따르는건 아닐까하는 걱정마저 들더라구요...
2006년은 제게 정말 돌이키고 싶지 않은 괴로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웠던 시절 삼성이 또 한번 우승을 했습니다. 정말 시시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시리즈 내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1위를 지켰고, 역시 그 해 한국시리즈 역시 강력함을 과시하며 세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죠. 항상 제가 어려울 때 제 마음을 위로해 주던 좋은 친구인 푸르딩딩 라이온즈는, 제가 어려웠던 그 시기에 또 한번 제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정말 운명처럼......
2010년... 삼성은 지금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습니다. 1차전때는 하루 휴가내고 KTX타고 대구 직관 다녀왔구요. 2차전, 3차전은 일하면서 TV로 봤습니다. (당연히 어제 경기 끝나고 나서는 1시간 동안 멍때렸구요. ^^;)
오늘 삼성이 져서 시리즈에서 탈락 할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선뚱렬 감독의 쩌는 가을야구 경력답게 역전해서 한국시리즈 올라가 SK랑 붙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팬으로서 이기면 기쁘겠고, 지면 섭섭하겠죠.
그런데, 이기던 지던 저는 운명같은 친구인 푸르딩딩 라이온즈의 팬이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지더라도 그들의 최선을 다한 플레이에 고마워 할 것이고, 좋은 친구가 내년에도 멋진 모습 보여주길 기대하며 2011년의 봄을 기다릴 겁니다.
어쩌면 그 좋은 친구의 2010년 마지막 경기가 될 지도 모르는 오늘 저녁 6시...
비록 표를 못구했기에 그 푸르딩딩한 옷 입고 잠실야구장 3루 관중석에 앉을 수는 못가지만...
TV앞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그들을 기다릴겁니다. 그들이 늘 평소와 다름없이 저 곁에 있어주었던 것 처럼요...
P.S) 예전 생각하다보니 너무 감성적인 글이 되지는 않았나 모르겠네요. 글도 길어지고... 스크롤 압박 드려 죄송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