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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11 01:16:07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심야 데이트 후기2 - 게이남자에게 승리 -
이미 음식 접시는 비워진지 오래전이고...500cc 맥주잔도 바닥을 비웠습니다.
그러나 여자사람의 맥주는 반이나 남았습니다.

이제 슬슬 일어난 타이밍이 된거 같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여자사람이 재빨리 계산서를 잡으면서 '이건 내가 낼게. 다음부터는 오빠가 내'라고 합니다.

오빠-여동생 이라는 수평적인 구조가 아닌 한국사회에서 일종의 불평등 수직적인 구조로 이뤄져 있는 사이지만(곰렐루야!)
제법 이런 데이트 금전관계에 있어서는 남자사람과 여자사람은 꽤 이상적인 형태를 갖습니다.
오빠-동생 이라고 해도 그래봤자 한쪽이 몇개월 더 먹은것 뿐이지만...
정확히 반 갈라서 쪼개는 1/n 까지는 아니더라도 6:4정도로 밸런스를 맞춰주는 꽤 좋은 여자사람동생입니다.

옛 가부장제도에 아주 심하게 쩌든 기필코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된다는 어디가서 졸부소리나 듣기 딱좋은 남자사람도 아니고
사실 지갑에 금칠을 할정도로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여자사람의 배려를 기분좋게 받는 편입니다.

가끔 소개팅에 나간 여자사람들이 맘에 들지 않은 남자를 만났을때 부담을 갖기 싫어서 데이트 비용을 자신이
낸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는데 설마 그렇 경우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결국 계산은 남자사람이 기어이 하고 맙니다다.
오늘은  보통 졸부로 격하되는 느낌입니다.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 낙원상가가 보입니다.


'저기가 낙원상가야. 어제 이 동네 답사한다고 한바퀴 쭉 돌았는데 청계천에서 인사동으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낙원상가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놈의 방향치'

'앗 저기가 (정)용화가 서현이한테 기타사준 곳이야? 용화의 숨결이 묻어있는 곳이군!
용화 완전 좋아. 지난번 해운대 갔을때 저 멀리서 용화 목소리가 들려서 다 내팽겨치고 뛰어갔는데
용화는 잘 안보이고 정신이만 보이는거야. 하지만 그래도 용화의 목소리를 들어서 너무 좋았어!'

'정신이면 그 길쭉길쭉한 애? 차라리 아까 서울역에 있을때 말을했으면 남산으로 데려가 줬을 텐데
거기가면 (닉)쿤이의 숨결을 맡을 수 있잖니.'

'우우. 내가 왜 오빠랑 남산타워를 가?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남산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도 하고 남산타워 올라가서
사랑의 자물쇠도 걸어야하고 나중에 남산가서 남자친구랑 할게 너무너무 많은데! 오빠랑은 갈 수 없지!'

'남산타워는 같이 가보지 않았지만 부산타워는올라 가본적 있지 않냐?
부산타워도 같이 올라갔는데 남산타워는 같이 가면 안된다는건 무슨 경우래?'

'부산타워밑에까지만 같이 갔지. 올라가지는 않았잖아.'


남자사람이 예전에 같이 걸었던 데이트 코스를 리플레이 돌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혼자서 부산타워에 올라갔던것을 같이 올라갔다고 착각을 했었나 봅니다.
지나간 추억은 미화되는 것이라는 옛말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청계천으로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여자사람은 길가에 간판이나 아주 높은 빌딩에 반짝반짝 빛나는 불들을 보며 너무너무 이쁘다고 감탄을 합니다.
남자사람은 저 종로 무슨 호텔 건물 외관의 불빛이 그렇게 아름다운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자사람은 반짝반짝하는것을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습니다.
청계천으로 내려오자 가로등의 불빛이 개울에 비쳐서 반짝반짝 보석처럼 수놓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물에 빠져서 저 반짝반짝 하는 것들을 주워오겠다고 덤벼들 기세입니다.


혹시 남자사람은 여자사람이 작고 무게가 덜 나가고 신체에 착용이 가능한 고가의 물건을
갖고싶다는 이야긴지 진지하게 생각해봅니다.

새벽 한시에 청계천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 멀리서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저씨 한분이 다가옵니다.


여기저기 반짝반짝한 것들을 보며 너무 아름답지 않냐고 잠깐 동화나라에 가있던
여자사람의 눈빛이 아까보다 백배는 반짝반짝 해지며 몸을 낮추며 손짓으로 강아지를 유혹합니다.
남자사람 역시 주저 앉으며 손짓으로 강아지를 유혹합니다. 남자사람의 승입니다.

남자사람의 손의 형태 특히 손가락의 구조는 암컷과 수컷을 가리지 않고 견(犬)공 들에게 매우 먹음직스럽고
형이상적인 손의 골격 형태를 가지고 있기 떄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강아지는 정신없이 남자사람의 손가락에 침을 묻힙니다.

한쪽은 강아지와의 인기투표에서 승리했다는 작은 승리감에 도취된채
한쪽은 강아지와의 인기투표에서 패배했다는 패배감의 젖은 기분으로 화장실 조명필이 아주 진한 벤치에 걸터 앉습니다.

남자사람은 가방에서 그냥커피와 그냥안커피를 꺼내며 그냥커피를 여자사람에게 건네 줍니다.
그냥커피를 마시는건 여자사람이고 그냥안커피를 마시는건 남자사람입니다.
.
여자사람은 오늘 안에 3년간 풀지 못한 이야기를 모조리 다 토해내고 가겠다는 일념하에
직장이야기와 친구들이야기 다른사람들에게 말하기 힘든 이런저런 이야기등을 마구마구 토해냅니다.

'요즘 내가 룸메이트 한테 열등감에 빠진거 같아.
1년동안 같이 산 룸메지만 웬지 룸메를 보면 내 마음이 자꾸 삐뚤어 지는거 같아.
나보다 훨씬 이쁘고, 피부도 좋고, 직장도 좋고, 전에 룸메가 취업준비 중일때는 그런 감정 하나도없이
매일 매일 보고싶고 너무너무 좋은 마음만 가득했는데 왜 이렇게 속이 좁아진건지 모르겠어'

'왜, 너도 피부는 좋은편이잖아.'

'누구 놀려? 나 피부 되게 안좋거든. 다른사람들에게는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가끔 놀러오는
룸메 남자친구에게도 왜 너희는 맨날 집에서 데이트 하냐며 심통부리고...'

'사실 아무리 친한 친구들끼리라도 그정도 질투 시기심 그런건 있는건데 너무 예민하게 받는거 같은데...'

'제일 맘에 안드는건 가끔 내가 기분이 안좋거나 울적해지면 룸메가 다가와서 내 기분 풀어줄려고 엄청 노력하거든.
그럼 난 싫은 티 팍팍내면서 저리가라고 하는데 그럴수록 룸메는 더 가까이 다가서고 난 그게 더 싫고...'

'하하, 외모도 너보다 이쁘고 피부도좋고 좋은직장에 거기에 성격까지 더 우월하니 열등감 가질만 하네.
아 맞다 룸메는 이쁜 연하의 남자친구도 있다고 했지 잠깐만...'

'한번도 다른사람들한테 그런적 없었는데 이런 생각드는거 처음이란말야. 룸메가 싫은게 아니라 속좁은 생각을 하는 내가 싫은거야.'

남자사람이 가방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냅니다.
작은 수첩에는 열 페이지 가량 빼곡하게 적혀있습니다.
몇페이지를 넘기더니 여자사람에게 수첩에 적인 문구를 보여줍니다.

'고향친구들보다 부산 친구들이 더 좋다?'

'오빠가 그렇게 센스가 있는 편은 아니잖냐.
오랜만에 만나서 혹시 어색하면 어쩌나 혹은 준비한 레파토리가 떨어지면 어떨까 싶어서 한번적어봤다.
원래는 편지나 한통 적어서 나중에 줄까 하다가 이게 더 날거 같아서 적어봤다. 아 이거 보니깐 정말 할일없어 보인다. 글씨야 뭐..'

'와, 뭘 이런걸 다 준비했대. 정말 오빠답네. 뭐야이게...그리고 난 오빠 글씨 정말 잘 읽어! '

수첩 맨 위에는 질문이 적혀있고 그 밑에는 여자사람의 답변을 4가지로 예상해본 객관식 답이 적혀있습니다.
객관식 답항은 포스트잇으로 안보이게 가리개까지 했습니다.
이게 뭐 엠본부 '놀러와'도 아니고 손발이 오글거리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부산친구들보단 고향친구들이 더 좋아. 하지만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룸메도 고향(충주)친구인걸.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당연히 더 좋아. 여기서 답을 고르라면 1번

'당연히 그렇다! 님 지금 10년친구 무시하나요?
고향친구들은 꼬부랑 할머니될때까지 오래오래 같이 살거거등요.
가까이 있진 않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이 훨씬 더 애틋하고 소중하다'

이게 내 마음이야. 정말 난 꼬부랑 할머니 되서도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다구.
지금 옆에있는 룸메도 사실 열등감 그런 마음이 살짝 들긴 하지만 그것도 잠깐잠깐일뿐
또 그런마음 금방 잊어버리고 같이놀고 마음속으로 많이 좋아하는걸.

오빠랑도 마찬가지로 고향친구들처럼 꼬부랑 할머니 될때까지 볼거구...'



남자사람은 귀엽다는 표정으로 여자사람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 혹시 게이 남자친구에 대해서 환상을 가지고 있냐? 게이 남자친구 갖고싶어?'

'어떻게 알았어? 당근이지! 지난번에 (사촌)경미 언니랑 서울에 놀러왔을때도 둘이서
진지하게 게이바를 찾아가볼까 생각했는데 우리는 게이바에서 출입금지일거 아냐.
그래서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지. 근데 게이 남자친구는 한번 꼭 만나보고 싶어.
왜 혹시 아는 게이남자라도 있어?'


'하하 있으면 소개시켜줄까? 게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한번 만나본적은 있는데
평소에 별 생각이 없다가도 그런느낌을 받으니 별로 편하진 않더라 그래서 거리를 살짝 뒀어.
게이 남자친구가 왜 편할거 같은데?'


'일단은 '이성'친구니깐 여자들에게 말하기 힘든것들을 편하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
그리고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않고 순수한 '친구'형태로 남을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어디 놀러나가서 '짐'같은것도 들어줄 수 도 있고 아무튼 있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


'혹시 웹툰중에 어서오세오 305호라는 만화 알아? 그거 게이만화지만 굉장히 재미있는데..

아무튼 내가 너에게 있어서 '게이'남자친구 느낌일 수도 있겠네.
뭐 '게이'남자친구라고 하기엔 이미 한번 감정의 선을 넘은적이 있지만
본인은 크게 신경은 안쓰는거같고...일단 남자로서 경계심을 거의 못느끼잖아?
그렇군 '게이'남자친구라는건가. 그런 느낌인건가.'

'아냐 게이남자친구는 아냐! 절대 그런건 아니야.  오빠가 왜 게이야 그런생각은 해본적 없어.'
음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게이 남자친구는 아니야. 그냥 '친오빠' 같은 느낌이지 게이는 아니라구.'


여자사람은 열심히 이런저런 변호를 해보지만
남자사람은 아까 강아지와 인기투표에 이어서 게이남자와의 대결에서 이미 2연승을 한 듯 합니다.


'그러면 하나 더 물어보자. 내가 연애를 해서 여자친구를 만나면 어떤말을 해줄래?'
'당연히 환영해줘야지. 음 무슨말을 할까 '정말 잘 선택하신거에요' 진짜 잘 고르셨어요' '아 정말 잘 어울려요'

'그러니깐 어디가 어떻게 '잘'선택했다는 이야기야? 내 어떤점을 보고 칭찬해줄건데?'
'그러니깐 그건 음...그러니깐...'

거의 자폭성멘트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정작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것은 남자사람이 아니라 여자사람입니다.


'하하,10년정도 같이 알고 지낸 사이지만 좋은점 하나 제대로 못불러주는데...
내가 너에게 특별한 존재라는게 정말 설득력이 없구나.
왜 특별하게 여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역시 게이남자라서? 하하 정말 다른 남자들 앞에서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싶네.'

'아냐 전에 오빠 친구들 하고 있을때 봤잖아. 난 정말 낯도 많이 가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구. 가까운 친구들보다
오빠가 훨씬 편하고 말못할 이야기들을 하기도 더 편하단말이야. 오빠는 정말 특별해'


'보자...그러니깐 우리가 이런식으로 5년 아니 3년이내로 다시한번 내가 너 좋다고 달려들면 그때도 편할까?
아니 이미 한번 고백했는데 정말 보자보자 하니 이게 양심도 없고 염치도 없네.

니가 나를 편하다고 생각하는건 나의 한없이 찌질한 인내심과 배려심 덕이 가장 크고
두번째로는 너의 그 무신경함에 가까운 단순함 복잡한거 어려운거는 최대한 피하거나 도망거리는 백치미 때문에
가까스로 유지되는거라고 본다. 뭐 이제 이렇게 터놓고 말 할 수 있는것도 다 너 좋다고 고백해서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다만

3년만에 만나서 이렇게 정리를 하는거 보니 도대체 나도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와와 표정봐라. 진짜 어색하게 웃는다. 아직 좋아한다고 말도 안했고 나중에 좋아할거라고 말도 안했고
무엇보다 너랑사귀자고 할 마음도 전혀 없거든. 그냥 좋아하는 것 뿐이였지'



어찌보면 쿨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일종의 자기혐오 혹은 자신감부족의 배짱없고 끈기없는 남자사람의 극한을 보여주는
남자사람의 이야기에 여자사람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니가 룸메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여자사람으로서 별로 자신감이 없다고 하지만,
피차일반이야 오빠는 너보다 더 그럴걸.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거지'

'그거 나랑 오빠랑 닮은거야?'

'글쎄 닮았다기 보다는 유전이지. 10년간 소꿉놀이가 여전하다면 우리는 오빠-동생이 아니라
여전히 아빠-딸인거고 뭐 그럼 유전 아니겠니. 근데 너 이제 아빠라고 안부른다? 하긴 아빠보다는 오빠가 좀 더 낫겠군.'



남자사람 정상인의 범주를 벗어나기로 생각한지는 이미 오래인거 같습니다. 답이없네요.





아 쓸데없이 정말 기네요,
나름 줄인다고 줄였는데 분량조절이 영 안되네요.
원래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되는건데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굽신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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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1 01:35
수정 아이콘
아뇨 참 재미있고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흐흐흐

결말은 해피엔딩일까요 아니면 새드엔딩일까요.
DuomoFirenze
10/10/11 02:19
수정 아이콘
이렇게 끝은 아니죠??
결말 궁금해요~~
등짝이가살아나야제.
10/10/11 09:44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10/10/11 09:46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었는데 뭔가 부족한 이 느낌..

결말 알려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응?]
쌀이없어요
10/10/11 14:48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 중에 나온 김에 말씀드리면...
게이바에는 여자도 들어갈 수 있지요~
하지만 레즈바에는 남자가 들어갈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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