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전 아내와 주고 받은 문자 내용이다.
부부가 함께 이리 작은 흥분에 젖어 무언가를 기다렸던게 얼마만이던가.
맥주에 육포, 번데기탕, 골뱅이를 곁들여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프로그램을 본다.
"음이 하나도 안 맞아"
"몸이 안 좋은가 얼굴이 왜 저리 부었어"
"학예회 보는 것 같아"
"아 어뜩해 우리 은비 가사 까먹었어;;"
"노래가 안 어울리는 것 같아"
"노래 진짜 잘 하는구나"
"여태 본 중에 젤 낫다"
"진짜 노래 소화 하나는 끝내주게 한다"
연신 중얼거리는 아내를 보며 제안 하나를 한다.
"누가 우승할까 내기하자"
"나는 장재인. 5만원이다."
"그럼 나는 존박 하지 뭐. 우리 얘기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 되면 반땅 내기다."
"아 추잡스럽게 무슨 반땅이야. 아무도 안 되면 그걸로 땡이지"
"ㅡㅡ;"
장재인과 김지수를 세워놓고 김성주가 '탈락자는!!!'라고 외치자 살짝 긴장이 된다.
"말도 안돼 저 둘 중에 탈락자가 있단 말야?"
다시 한번 탈락자는!!! 하고 외치자
"없습니다 뭐 이 지랄이나 하겠지"
"크킄 ㅡㅡ;"
'없습니다!!!!'
"거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둘. 이승철25주년기념콘서트.
연휴 중 어느 날이었는지, TV를 돌려보다 이승철 콘서트란 자막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승철 콘서트 한다 같이 보자~~"
웬만한 걸로 꼬셔서는 들썩도 하지 않는 아내가 이승철 한 마디에 금방 컴퓨터를 끄고 옆에 자릴 잡는 걸 보니 확실히 급이 다른 카드이긴 한가 보다.
"이게 언제 한 콘서트지?"
"어디야 여기가? 잠실이구나?"
"규모가 장난 아닌데"
잡다한 얘기 몇마디 나누고는 함께 화면에 빠져든다.
"세상에"
"어이가 없어서"
"사기다 사기"
"표현하는게 정말 너무 너무 더 좋아졌다..."
"와 진짜..."
"애들 심사할때 저렇게까지 직선적으로 말 할 필요가 있나 했었는데...... 걍 아무 말이나 다 해라. 다 해도 되겠다 진짜"
"아니 목소리가 어떻게 더 맑아졌어?"
"음향시설도 장난 아니긴 하다"
"진짜 가수가 저 정도로 불러주면 얼마를 내고 봐도 안 아깝겠다"
역시나 틈틈이 종알종알 재잘재잘 아내의 입이 가만히 있질 않는다.
배우 이은주의 팬이었던 아내는, '인연'이란 노래를 들으면서는 살짝 눈물을 보이기까지 한다.
"국보 지정해야 돼"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나름대로 보여주는 공연의 매력도 상당하다.
특히나 반주들의 독주에 부부가 함께 또 한번 넋을 잃고 부러움과 시기가 극에 달한다.
"나쁜 놈들이야"
"그러니까"
셋. 남자의 자격
나는 일을 하느라, 아내는 애들과 함께 본가에 다녀오느라 합창단 마지막 에피소드는 함께 보질 못했다.
지난 에피소드도 같은 처지여서 한 주 내내 케이블 어디 재방송 안해 주나 틈나는 대로 찾아 헤맸지만 번번히 실패했던 터라 언제쯤 보게 될런지 함께 애가 닳는다.
하루 쯤 지났을까, 기대했던 대로 피지알에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이거 보자 남자의 자격!!!!!!!!"
"어디 어디"
대회 당일 동영상은 애저녁에 본 터이지만, 클로즈업과 편집이 가미된 방송 화면은 또 다른 맛이리라.
잠시도 입이 가만히 있질 않던 슈퍼스타 무대나 틈나는대로 떠들어댔던 이승철 콘서트와는 달리 아내는 보는 내내 화면에 집중하고 한 마디도 뱉어내질 못한다.
첫 노래의 감동이 두번째 노래까지 이어지고, 마지막 단원들이 있는 힘껏 위로 솟으며 점프하는 모습을 보자니 코끝마저 찡해져 온다.
그래. 다들 그렇게 뛰면서 열심히 사는 거야 크흥ㅠ
합창 내내 쪽박 깨는 자막이 없어서 무지 땡큐였는데, 끝나자마자 또 깨는 자막이 몇개 쏟아진다.
'왁 터져나오는 박수'
'왁 터져나오는 눈물'
"으이그....... 왁이랜다 왁. 왁이 뭐니 왁이."
촉촉해진 눈가가 민망스러웠는지 더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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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이유로 원기와 활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는 공연 세개를 모두 볼수 있었던 지난 몇일을 두고 보자니,
세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알고 이렇게 저렇게 감동 받을 수 있었던게 따지고 보면 굉장한,
쉬운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지만은 않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부부에게 함께 어떤 의미로든 새겨지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살찌우게 했으니
지리한 일상을 꾸려 나가는데 있어 뭔가가 충전된 그것 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 아닌가.
"오빠 언제 이승철 콘서트 또 하면 꼭 한번 가자"
"그래.."
아이들 보살피느라 입에 풀칠 하느라,
혹은 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로 구하질 못했던 생활 속의 여유를 한번 쯤 돌아보게 한 몇일이었다.
진심이었지만 언제 그럴 수 있을까 의구심 역시나 그 진심만큼이었던 우리 둘의 저 약속
언제든 지켜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소소하게라도, 요 몇일과 같이 함께 마음을 살 찌울 수 있는 그 정도 만으로도,
그것으로도 꼭 부족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또 부부는
얼마간(^^;) 웃음 띠고 즐겁게 보낼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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