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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7/17 04:01:00
Name 김현서
Subject [일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농담하지 않는 남자
동성애를 반대하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그에 따른 다의적인 시각을 전혀 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 글을 더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미 없는 논쟁의 여지를 줄이기 위한 방편이니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동성애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많은 부분 생략했습니다.
그에 관하여 예전에 주저리주저리 했던 게 너무 많아 링크로 대체합니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의 너무 가벼운, 그래서 더 섬뜩한 폭력.





=================================================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농담하지 않는 남자



        그는 도통 웃지를 않는다. 실없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는다, 저리도 멋지고 매력 있는 애인이 있는데도…… 아마 그녀가, 그에게, 그리 웃지도 말고 무거운 표정으로 일관하라고 주문했을 게 분명하다.



        연인으로 등장하는 그 남자와 남자의 연인은 잘생겼다━ 아니 너무 예쁘다. 그들은 키도 크고, 몸매도 호리호리하고, 심지어 목소리도 멋있다. 차와 방은 늘 깔끔하고 옷매무새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각각 내과의사와 대학 강사/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탄탄한 직업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진중하고 사려 깊고 건전하다. 그들의 생활양식이 너무 완벽해 되레 그것이 동성애자를 향한 편견임을 감지하지만, 이렇게 사뭇 작위적인 극 중 인물들을 등장시키기로 한 그녀의 선택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애를 향한 폭력적인 편견이 확고한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라는 것은 치명적인 ‘하자’다. 전반적인 한국 시청자들에게 동성애가 역겨운 성행위나 문란한 성취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듣게 해야 비로소 동성애자인 남자 둘의 스토리텔링을 할 수가 있었을 테니, 그녀는 그 ‘하자’의 본질에 대해 시청자를 먼저 계몽해야 할 강박관념에 시달렸으리라 짐작한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시작하자마자 사선으로 기울인 텍스트를 자막으로 천천히 올리며, “인간에게 있어 성적성향은 차별받을 수 없으며 동성애 역시……” 하며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도 없는 일이니, 그녀는 우선 시청자를 한 번에 매료시켜 그 남자와 남자의 연인이 일반 사람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도록, 아니 되레 더 우아하고 근사하며 어느 누가 봐도 멋있도록 작위적인 설정을 가미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해석으로 접근할 수가 없는 문제인데, 마치 동성애자는 모두 저렇게 청결하고 지성적이며 선한 사람들임을 교묘하게 주입하는 것 같아 불편하고 씁쓸하다. 가난해서 모두 청렴하고 결백하며, 돈이 많아 모두 부패한 인간이 아닐진대, 어찌 동성애자를 묘사하는 기법은 저런 정형화된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할까. 그 판에 박힌 설정을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처럼 악의적으로 조롱하는 데 사용하느냐, 아니면 <인생은 아름다워>에서처럼 대다수 시청자가 품고 있는 동성애를 향한 괴리를 줄이는 데 어쩔 수 없이 차용하느냐의 차이에서,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를 계몽시키려는 그녀의 노력이 거센 반발을 일으킬 거라는 사실은 이미 짐작되는 바였다. 인간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식을 전환해 자의식에 상처를 입는 것보다, 그른 것을 옳다고 끝까지 믿는 것을 훨씬 더 자주 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동물이다. 더군다나 그른 것을 옳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대다수의 지지층이 있다면, 일말의 의심은커녕 명백히 드러난 사실조차 왜곡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동성애를 ‘퍼뜨리고’ 이 땅의 건전한 청소년들의 성을 문란하게 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는 고로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은 아래와 같은 신문 광고를 냈다.






        그녀가 택한 우회로는 결국 이런 식으로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늠름하고 잘생기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동성애를 미화하기 위해서 치밀하게 선택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 앞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그 소통의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건지 회의적이다. 동성애가 에이즈를 확산시킨다는 주장은 소주 한잔 들이키면서 배꼽 잡고 웃어넘기고 말게 된다. 그렇게 참담하리만치 우습다. 그만큼 허황한 이야기이다. 동성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과 양성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행복도가 다르지 않다는 연구결과는 오래전에 나왔다. 출산율의 저하는 지금 이 사회제도의 안정성을 향한 전반적인 불신이 팽배해 나타난 결과이지, 100명 중 아무리 많아야 7~9명을 넘지 않는 소수성적성향인 때문이 아니다. 더군다나 동성애자는 이성과 섹스하고 싶지 않을 뿐이지, 자녀를 가지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자녀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중세시대 전과 비교해 의학기술이 현격히 발달한 현시대에서는, 그들 역시 대리모를 통해 자신의 자녀를 가질 기회가 있다. 다만, 혈연중심의 가족 외의 다른 형태의 가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한국 사회 대다수가 그런 변태적인 가족형성 과정을 용납할 수 없을 뿐이다.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다. 사실 선천적이라고 확신하지도 않는다. 그럼 후천적이니 강요에 의해 바꿔도 된다는 말인가? 실은 후천적인 정신병이니 치료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 테다. 도시 아이들 가운데 동성애자가 더 많고 시골 아이들은 동성애자가 적다는 유치한 주장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답이 나온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려주는 이도 없고, 그것이 네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이도 없이 이성애자의 허울을 몸에 맞지 않는 젖은 원피스처럼 입고 다녀야 하는 몇몇 “시골 아이들”이 이성과 억지로 입을 맞추는 놀이에 또래에 의해 강제로 종용당했을 때 느끼게 될 성적 혼란과 수치심은 누가 치유해줄 수 있는가?
        2007년 제정된 차별금지법에 ‘성적지향‘ 항목이 대다수 특정종교 단체의 반발로 누락됐다. 동성애자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위하지 않으면 감옥행━ 협박하는 긴급비상조치 유신이 아니다. 인권, 존엄, 평등을 보장해주는 최소한의 장치 그 경계다. 제발, 때리지만 말아 달라는 그들의 절규다. 그런데 ’성적지향‘ 항목이 누락된 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자 그 단체들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안도했다. 그리고서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며 억압과 차별받는 것을 그들 자신이 나서서 바로잡아주며 치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병환자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치유하는 태도 그대로였다. 알코올과 도박중독자들을 상담하는 병실 옆에 동성애전문가 하나를 들여 “동성애중독자”들을 상담시키고 치료하겠다는 굳은 의지였다. 불통으로 야기된 실존적 공포가 느껴진다. 이 사회는 뿌리부터 어그러져 있다.
        어차피 이리될 거, 차라리 얼굴에 잡티가 서넛 있고 사타구니를 벅벅 긁고, 불은 면발이 들어찬 양은냄비가 개수대에 더럽게 놓인 집에 사는 동성애자를 등장시켰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매력적인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매료시킬 것이 아니라, 동질감이 느껴지는 동성애자를 등장시켜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하는, 현실성 없는 허황한 바람이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명백히 당연한 일이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의 비율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차이가 없다. 의과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될 확률도, 패션잡지의 디자이너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막노동판 잡부나, 성추행범이나 음주운전자가 될 확률도 근본적으로 똑같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오직 하나, 말 그대로 이성이 아닌 동성에게 성적 매력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동성애자 청소년의 자살률은 또래 이성애자의 그것과 비교해 현저히 높고, 그들 대다수는 폐쇄적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연기된 표면적 생활을 한다. 그들이 동성애자임을 부끄러워하도록,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하도록 한국 사회가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분위기는 그들을 더럽고 추잡한 변태로 보고 있고, 그들에게 다른 이성애자들과 똑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들에게 향해지는 폭력에 관한 법적인 보호 장치마저 나 몰라라 하며, 평소 상식적이고 건전하다고 스스로 자평하는 당신과 나조차 우리들의 문제가 아니니 그 만연한 불합리함에 대해 무신경하다. 그러니 같은 학급의 남학생을 향한 사춘기 열병을 숨기지 못하고 고백했다가 게이라는 소문이 학교 전체에 퍼져 구타와 따돌림을 당해 비관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남자아이의 피가 우리 손에 묻지 않았다고 떳떳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고 우리의 그 애달픈 사춘기 열병을 숨길 수 있었던가.



        올해로 예순일곱인 그녀는 드라마 속 그 젊은 남자가 많이 안쓰러웠나 보다. 물론 그녀가 그리 웃지도 말고 즐거워하지도 말고, 말 수도 적고 시종일관 침울하다시피 진지하며, 무엇보다 외로워하라고 주문했을 테지만, 그의 오래 곪은 상처를 그녀가 살아온 긴 삶으로 가득히 공감하는 것이리라. 시답잖은 농담 하나 하지 않는 그는 오랜 시간 철저히 숨어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더는 숨길 수가 없는 때가 온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단순한 비밀 폭로가 아니다. 이제부터 나 아닌 것으로 연기하며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을 목격하는 당신을 내 모든 것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결의에 찬 고백이다.
        계모보다는 새엄마라고 불리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거리감은 두었을망정 동경해 마지않던 자상한 어머니를 앞에 앉혀두고 그는 고백한다.
        -저요…… 동성애자예요.
         어머니가 울고, 아들이 울며 서로 위로하는 장면은 과장이 아니라 실은 어머니의 지극히 이성적인 반응으로 깔끔히 절제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그 격렬한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며 같이 울었던 시청자가 나를 포함해 많았으리라 짐작만 해본다. 이후 월드컵 중계로 드라마가 결방되었을 때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축구를 전혀 안 보지만, 어서 빨리 그가 활짝 웃고 행복해하며 농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왠지 조금은 더 그가 지내온 과거의 아픈 나날들을 곱씹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끝내고 그가 집을 나서 차를 달리는 제주도의 수려한 풍경에는, 바다갯벌이 있고 높다란 발전기 하얀 날개가 돌고 있다. 그는 울고 있지만, 그렇게 그는 슬퍼하고 있는 걸 테지만, 왠지 괜찮다; 되레 그가 울 수 없었을 때, 그는 더욱 불행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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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좀괜찮은
10/07/17 11:29
수정 아이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성적 가치관이 정당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동의하면서도(타협일 수도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미끄러운 비탈길 논리를 확대해석하는 일반의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것을 허용하게 되면 결국에는 내 영역까지 침범하게 될 것이다, 고로 나의 '정상성에 대한 페티시즘'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게죠(혹은 내 가정은 '일반적'이어야 한다는 욕구의 반영? 하긴 다른 영역에서도 그런 논리로 자식, 혹은 부모를 희생시키는 논리야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마는). 이런 일반의 인식은 일견 매카시즘이 사회주의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비슷한 사고방식으로는... 동성애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동성애자는 모든 남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본다, 나는 원치 않은 성적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고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라는 식의 생리적 혐오감이 있겠죠. 그리고 이러한 혐오감은 이상하리만치 정당성을 쉽게 획득하고는 하는데, 이거야 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수에 의한 폭력(보통은 이것을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위장합니다)에 길들여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텐데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Montreoux
10/07/17 12:34
수정 아이콘
1. 피지알 유머게시판 상주자여서 자게의 긴글은 거의 안 읽어요.
밥벌이하느라 지쳐서 기운 딸려서요.
둘 다 드라마에서 출발한 얘기인데 비시청자도 맥락 파악은 되었어요.
글이 길어서 집중이 되다 말다 그랬어요(독해력이 갈수록 떨어져서요.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었습니다2.

2. 처절한 광고문구가 절실해 보이긴 한데 전반적으루다가(추노, 이한위 버전) 문구들이 구려요-,.-;;;
느닷없이 '며느리'는 왜 등장하는지.

윗분이 지적하신것처럼 생리적 혐오감이나 실질적인 거부가 적지 않을텐데요.
광고는 노골적인 거부에다 경제윤리로 '생산적' 이지 않음을 되게 우려하는 메세지네요.
모 주류신문에 실린 건가요?
'광고안내기운동'이라...

저 광고문구는 공감할수 없어요.
윤리적으로, 부분적으론 미학적으로.
이사무
10/07/17 16:50
수정 아이콘
지난 글도 이번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관련 주제에 대해선.... 사실 각종 커뮤니티를 돌다보면, 정말 상식외의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분들이 많아서 혈압이 오를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포탈사이트 댓글들 수준이면 무심코 넘어가겠는데,
진지하고 이성적인 척, 예의바른 척 하면서 읽어보면 되지도 않는 소리를 쓰는 분들이 있어서요.
엊그제는 정신분석의 과정인 학도인데, 자기 지인인 현역 분석의를 포함해서 동성애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드립(?)을 치시는 분을
어느 사이트에서 뵈어서 힐난을 해주었습니다만....(정말 정신분석의 과정이시리라 생각지도 않지만요)
그런 분들이 더 반감이가고 싫더라구요.

P.S. 시작에....동성애에 반대(?)하는 분이라고 하셨는데, 사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도 되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반감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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