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가 울린다. 받았더니 친한 친구 A이다.
"어디냐? 술이나 먹자. "
A는 금요일밤이라 그런지 안달이 났다.
"미안. 오늘 좀 바빠서. 다음에 마시자. 다음에는 꼭 빠지지 않을께."
"금요일인데 뭐가 그렇게 바빠? 알았다 이놈."
살다보면 웬지 술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A에게는 오늘이 그럴테지. 녀석에겐 미안하지만 난 오늘은 해야할 일이있다. B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 B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후배. B를 바로 어제를 비롯해서 그간 내가 참 많이도 울렸기에. 감정을 담아 내 마음을 좀 털어놔줘야 한다. 아니 달래주고 싶다는 표현이 좀더 정확하겠지.
갑자기 편지지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편지지를 사러 나갈까 하다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편지지에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만들어줘야겠다. 이제껏 B에게 종종 편지를 썼었기에 이번만큼은 조금은 다르게 쓰고 싶었다. 뭘로 만들어줄까. 간만에 포토샵으로 그림이나 그려볼까 고민했는데 손 놓은지가 오래되어 웬지 자신이 없다. 순간 머리속에 예전에 본 그림을 텍스트 파일로 변화시켜준다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그림의 픽셀들을 가장 가까운 문자로 변환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가까이서 보면 글자 같지만 멀리서 보면 그림같다.
그래 이걸로 하자. 이걸로 B의 사진을 편지지로 만들어줘야겠다. 기뻐할테지. 그 생각만해도 의욕이 넘친다. 일단 다운로드 부터 해야겠지. 정확한 프로그램 명칭을 모르겠기에 찾기가 힘들었다. 힘들게 물어물어 알아낸 ASCII Generater라는 프로그램을 다운받아서 설치하고는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변환에 성공했다.
이정도면 만족스럽군. 프린트해야지. 가는 날이 장난이라고 이 놈의 프린트가 말썽이다. 사실 문제가 생기는게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그간 버텨준게 고마울 뿐이지. 오다가다 지나쳐 봤었던 인쇄소가 떠올랐다. USB에 파일 챙겨서 달려갔다. 웬지 반쯤 등이 꺼져있는 인쇄소가 불길하다.
말과는 다르게 아저씨는 이것저것 다시 켜면서 출력을 준비중이다.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잽싸게 USB를 꽂고 출력을 했다. 곧이어 프린터가 삐걱삐걱 하면서 내 편지지를 뱉어낸다.
"이쁘네요?"
"하하 고맙습니다"
편지지에 대한 칭찬인지 모델 B에 대한 칭찬인지. 칭찬에 대한 고마움인지 출력에 대한 고마움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성공적으로 출력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좀 무의미한 글자들의 나열같은데 멀리서 보면 무지 이뻐보인다. 그게 이 편지지의 매력이다. 문구점에 들려서 봉투도 샀다. 이제 편지만 쓰면 된다. 편지는 사실 이미 써놨다. 뭔가 생각이 떠오를때 간단하게 쪽지 같은 편지를 연습장 혹은 컴터 메모장에 써놨다. 옮겨적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얼른 옮겨적어야 내일 전해 줄수 있다. 편지지의 출력된 부분 뒷면에 편지를 정성들여 한자한자 옮겨적는다......
"이거 읽어봐"
다음날 만난 B의 얼굴은 웬지 졸린듯 피곤해 보여서 편지부터 손에 쥐어줬다. 편지를 받은 B의 표정은 금새 환해졌다. 역시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길쭉하고 야윈 손가락으로 편지봉투를 뜯는다. 이제 잠시 후엔 내 정성이란 이름의 작품이 처음으로 햇볕을 보겠지. 편지지가 나오는데 침이 바짝 마른다. 편지지를 보고 아주 살짝 놀란것 같아 보인다. B가 어떤 말을 해줄지 궁금하다. 아! 너무 감동하고 그러면 안되는데 하하. 이윽고 B의 입술이 들썩인다. 나의 심장도 따라 들썩인다.
드디어 B가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이면지에 쓰고 그러네요?"
"어 미안..."
끝.
필력이 딸려서 글쓰기가 힘드네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mlbpark의 NorthWind 님에 대한 오마쥬로
마지막 형식을 패러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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