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은 까망색, 신문지색, 빨강색, 보라색, 비닐색, 핸드백색따위의 모습으로 옹기종기 거리를 누빈다. 다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때문에 느려져버린 걸음걸이가 가볍다. 빗방울이 부딫히는 시끄러운 소리가 되려 고요함을 선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전히 촤악-촤악-하는 물방울의 부딫힘이 귓가를 맴돌지만, 어쩐지 조용한 저녁의 시계소리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금세 어두워진 거리의 간판은 빗물을 색색으로 덧칠하고, 헤드라이트는 떨어지는 물방울에게 멋진 빛깔을 헌사한다. 사람들은 찰박거리는 발바닥에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지만, 덕분에 다들 주변을 한 숨 돌려 돌아보는 모습이 재미나다. 매일 앞만보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불청객과도 같은 비는 미안하다며 그들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게 아닐까.
빗물사이에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옷 사이에 스며들어 펄럭인다. 세상의 색깔은 회색빛으로 덮여 옅어졌음에도, 어쩐지 이런 묘한 어두컴컴한 세상이 되려 편안해서 마음이 놓인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담배 한까치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 그 연기 하나에 마음 하나씩 얹어 빗물사이로 후-욱 하고 날려보낸다.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던 무거운짐들을 잠시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들어, 나는 영화배우마냥 멋쩍게 씨익 웃어본다.
어제 좋아하는 누나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별 것 아닌 답례같은 것이었는데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에 어쩐지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아직 서로 이름도 모르는, 주중에 두번밖에 볼 수 없는 직장동료지만 어쩐지 조금은 더 가까워 진게 아닐까 싶어 신이 납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엄청 삭막한 것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저는 아직도 몇십년전 사람들처럼 작은 행동 하나하나, 작은 말 하나하나를 시간을 들여 이어가며 좋아하는 마음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진것 같습니다. 금세금세 휙휙 모든게 지나가는 바쁜 삶 속에서, 소소한 휴식처를 찾은것만 같아 기분이 좋네요. 다음에는 이름을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누군가를 이렇게 천천히 좋아해 간다는 일이 참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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