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료를 수백번 수천번 수억번 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연체료의 모든것을 터득했어요. 그만큼 연체료를 많이낸 불성실한 불량채권같은 손님이였 던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연체료를 받다니 웬지 생소한 경험이다.
따지고보면 나도 옛날에 받았던 것들에 대한 연체료 명목으로 녀석에게 건네주었던 것 뿐인데
거기에 복리에 복리를 더한 연체료를 갚아주다니 좀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싶다.
이래서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채무관계를 가지면 안되는거구나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채무관계를 끝내고 싶어도 도무지 이놈의 연체료는 갚아도 갚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연체료로 책두권과 DVD한장 직접만든 코코아 믹스 한통을 받았다.
시중에서 팔지 않는 코코아와는 다르게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코코아라고 써붙혀놨다.
반품과 할부는 불가능하며 만든 제조일자까지 친절히 써붙혀 놨다.
코코아를 보니 옜날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보러 갈때 녀석이 전날 준 쟈스민차를 마시고 복통이 일어났다.
입으로 사인펜을 잡았는지 코로 사인펜을 잡았는지 기억이 날랑말랑 하다.
한 십년만에 이렇게 또 분말가루[?]를 받으니 예전 생각이 난다.
설마 그때처럼 독을 탄것은 아니겠지.
내 인생의 그렇게 포풍설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 날을 생각하니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키다리아저씨라는 책이 있다.
난 그책을 읽지 않았다. 책 제목부터가 본능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말은 원래 속 뜻이 있는 말인데 난 정말 아주 오랜시간동안
키다리 아저씨라는 말이 정말 키가 꺽다리 처럼 크기만 한 사람을 말하는 의미인 줄 알았다.
정말 꽤 오랜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키다리 아저씨라는 말의 속 뜻을 알게 되었다.
근데 그 녀석앞에서만 서면 키다리 아저씨라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더라.
그녀석은 정말정말 작다. 4월에도 털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그런지 정말 꼬맹이가 따로 없었다.
길가는 초등학생들한테 헌팅이..아니라 삥이나 뜯기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하긴 생긴것은 그렇지만 워낙 말투나 하는 짓이 할머니 같아서 그렇게 큰 위화감은 안든다.
저 털모자 안에 있는 머리카락이 빨리빨리 자라기 위해서 다음에 만날때는 연체료 명목으로 19금 정성이 듬뿍 들어간 그림많고 페이지 얇은 책들과 대사가 적지만 비쥬열이 화려한 영상들을 선물해 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여자들도 그런거 많이 보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나?
생각해보니깐 예전에 같이 학원다닐때 우연히 홍등가 앞에서 그녀석과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짙은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옷을 입은 언니들을 보며 그녀석은 조용히 말했다.
'언니들 너무 춥겠다. 저러다 감기들면 어쩌지'
1초라도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였다.
주님 이 죄 많은 어린양을 용서 하소서.
특별할것도 없지만 평범할것도 없는 괴상한 채무관계가 어느덧 10년이 다됐다.
친구란 것은 분명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벗이라고 하는데
이 녀석과 나는 멀리두고 오래사귄..아니 지켜본 벗 쯤 될려나.
남자 여자의 관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10년동안 한 동네에서 살아온 친한 친구 관계도 아닌 것이
소울메이트는 더더욱 아닌 것이 이 미묘한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살짝 궁금한 생각이 든다.
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아니지만...
뜨거운 여름이 오기전까지 어서 친구가 털모자를 벗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는 연체료로 받은 코코아를 타먹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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