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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16 02:00:42
Name 유유히
Subject [일반]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가끔씩 나는 그리워져요
풋내 가득한 첫사랑

-이문세, 조조할인 中




첫사랑이 기억나시는지요?
기준을 뭘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제 기준으로는 국민학교 1학년 때 앞집 살던 여자아이였습니다.
8년간 살면서, 그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보았거든요(?).
노란색 원피스를 자주 입었는데, 집에 같이 올때마다 치맛자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뛰어가던 게 아직까지 기억나는군요.
그러던 중 그 아이가 이사를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실연의 충격을 맛보았습니다.
사귄 것도 아니고, 뽀뽀를 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손을 잡은 것도 아니고,
같이 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함께한 추억이라곤 고무줄놀이 같이 한 것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그렇게 나는군요.

(저는 특이하게도 고무줄놀이를 그렇게 좋아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는 현역으로 뛰었는데 다리가 굳어서인지 그 이후로는 피지컬이 따라주지 않더군요. 4학년이 되어 명예로운 은퇴를 선언하고, 지도자격인 고무줄 끊기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 하던 노래가... 오늘아침 버스에서 만난 그애 날보고 호박꽃이래 주먹코에 사각턱에 못생긴얼굴 넌 뭐가 잘났니 흥! 호박꽃도 꽃이냐고 하루종일 놀려대던 그애얼굴 난 정말 참을수없어 멸치도 생선이니 예예예예~~ 이런 노래였는데, 지금 와서 추억해보니 못난남자를 멸치에 비유한 시대를 앞서간 노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도 지금쯤은 시집가도 될 나이가 되었겠지요. 아니, 어쩌면 결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찾아볼래도 찾을 수도 없어요. 제가 어릴 때 전학을 가서 국민학교 때 아이들은 한 명도 연락하는 사이가 없고, 혹시 싸이월드에 들어가서 얼굴을 본다 해도 제가 알아볼지 모르겠군요. 옷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얼굴은 아예 기억이 안 나니까요.

문자를 하네 마네 하는 친구놈의 시덥잖은 연애상담을 들어주고 있노라니,
갑자기 보석바처럼 순수했던(?) 첫사랑이 그리워져 써보았습니다.

PGR여러분, 첫사랑 기억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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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16 02:19
수정 아이콘
첫사랑이었던 그 소녀는 어느새 숙녀로 자랐고, 그녀는 가족들과 영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우리 집에서도 유학과 이민 이야기가 번갈아 오고 갔고,
'나도 영국으로 가면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라는 얼토당토 않는 마음으로,
곧 볼 수 있을 것처럼, 잠깐이면 여행갔다 금방 돌아올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고 그녀는 나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시간은 묵묵히 흘러갔고, 전화와 편지 엽서를 통해서만 그녀와 연락하던 어느날,
나는 영국행이 아닌 캐나다 유학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간 그녀를 꼭 다시 볼 것만 같았던 생각들을 하며,
유학생활 하던 중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베프의 전화 한 통을 받은 것이었다.



2004년 12월에 일어난
영국 한인 타운에서 좀 떨어진 시골 변두리에서
중고 소형차와 대형 버스와 충돌해
소형차에 탔던 3명의 일가족 전부가 사망하는 교통사고 소식을
캐나다에서 수화기를 통해 듣고서
그녀와 이렇게 억지로 이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무 이유없이
꼭 일주일을 앓았다.


- 제가 예전에 썼던 글, 「지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뇌 깊은 곳, 이별에 관한 회고록」中


벌써 10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저는 아직도 첫사랑 얘기하면 슬픕니다...
09/09/16 02:19
수정 아이콘
얼마 전, 예비군 훈련 전날이어서 여차저차 하여 선배 집에서 잠잘 일이 있었는데,
그 선배의 첫사랑 이야기를 밤을 하얗게 지새우면서 들었습니다.
평소에 무척 차갑게 보이는 선배였는데,
지금 여기에 글로 옮기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정말 너무도 아름답고, 영화같고, 가슴 절절한 첫 사랑을 하셨더군요.
(고등학교때 첫눈에 반해, 오랫동안 마음 졸이다 결국 사랑에 성공했지만, 아주 안타깝게 헤어지게 되고, 지금은 그 상대방 여자분이 결혼하셨다는 것으로 짧게 말하겠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첫 사랑은,
저 자신조차도 놀란, 제 치졸하고, 이기적이며, 비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너무나도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준, 차라리 없었으면 더 나을 뻔 했던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첫사랑이 가치로웠던 것은,
제 인생에서, 그렇게나 서로의 조건이나 환경에 신경쓰지 않고,
전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을 하는 것은
다시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사랑은, 그래서 영영 잊지 못하는가봅니다.
탈퇴한 회원
09/09/16 02:27
수정 아이콘
한아님// 슬프네요.. 제 친구에게도 비슷한 일이 이번년도 초에 있었습니다... 보는 제가 다 가슴이 아프더군요..
유유히
09/09/16 02:31
수정 아이콘
한아님// 아프군요. 막연했던 제 기억이 오히려 다행스러울 정도입니다.
FernandoTorres
09/09/16 13:46
수정 아이콘
아 첫사랑 ......
무한의 질럿
09/09/16 17:28
수정 아이콘
후....... 가슴에 커다란 구멍과 도트만.........
백화요란
09/09/16 18:51
수정 아이콘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집에 가려는 애를 한시간을 붙잡고 고백을 하려다 하려다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냥 안아주었습니다.
아직도 안아주니 활짝 웃던 그 얼굴을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겠네요.

한시간 동안 고심해서 전달하려던 그마음을 좀더 빨리 잃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요.

상처만 주고 헤어진거 같아서 너무 미안합니다 지금도.
09/09/16 22:44
수정 아이콘
첫사랑이라... 아련하네요... 어렸을 적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과 소녀도 안되는 거의 어린아이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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