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는 딸아이를 달래면서 별도 달도 없는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곧 동이 트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딸아이는 잠들었고,
새벽하늘을 보면서 옛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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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학번으로 울산대 기계과에 입학했을 당시,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웠다. 입학 첫 등록금은 대출이 안돼서 이모,삼촌들이 등록금을 모아서 줬다.
수업이 끝나고 삼겹살집 알바를 했는데 알바가 끝나는 시간이 새벽 세시였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들지도 슬프지도 않았지만, 가끔은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 삶은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식의 걱정과 새내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기들에 대한 부러움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과 달리 참 부지런하게 살았던게, 그 빡빡한 생활 와중에도 축구동아리 활동은 참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니 과 회장이 체육부장을 맡겼고, 나도 과 생활에 어느정도 녹아 들어갈 수 있는 기반이라는게 생겨서 좋았다.
당시 과 학생회는 운동권계열이었는데, '숨겨진 진실' 이런걸 알려줌으로써 지적 우월감과 도의적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세를 불리고 유지함에 있어서 핵심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당장 하루하루가 벅찬 내게도 주입식 교육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에 홀라당 넘어갔었다.
혹은, 개인적 힘듦에 있어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고, 가려운 곳을 긁어줬기에 무비판적으로 넘어갔던 것일 수도 있겠고..
그렇다고는 해도 00년의 운동권은 끝물이라 활동이라고 할만한건 딱히 없었다. 그냥 선배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듣고 술먹고 가끔 대자보 붙이고..
내가 그들을 등지게 된건 굉장히 사소한 계기때문인데,
과 회장놈이 내 피같은 돈 20만원을 빌려서 안 갚았다..
그러면서 '20만원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라'는 식으로 나오길래
"니들이 욕하는 대상이랑 지금 니들이 하는 짓이 똑같아" 라고 쏘아붙였다.
내 삶은 그 이후로도 딱히 변한건 없긴 한데, 한가지 깨달음은 있었다.
'이념이 밥맥여주는거 아니다.'
(정확하게는 이념장사하는 놈들의 말과 행동은 경계해야 한다.)
이후의 선거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해야 할 때가 오면, 그 시기의 일들이 떠올라 꼼꼼히 따져보고 확인해보게 된다.
"이놈들 중 누군가는 나를 속이고 있다" 를 기본으로 깔게된 것인데, 가훈으로 삼아야겠다.. 울 딸아이는 아빠처럼 시간낭비 않도록.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의 일도 있다.
엔진조립 라인에 하청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노사분규가 꽤 큰 규모/강도로 일어났다.
정확한 순서는 모르겠지만, 우리회사 직원들은 원치않는 파업에 동참해야만 했고 (정규직 임금협상건만 있었기에 비정규직이나 하청은 해당사항이 없었다)
파업의 결과로 비정규직 상당수와 하청이 쫒겨났다.
사측 입장은 "니들은 당사자도 아닌데 파업해서 손해를 끼쳤다" 정도였을거다.
결국 앞에는 늑대 뒤에는 호랑이 이런 식으로 선택을 강요받고, 이용당한 후 버려지는 길을 피할 수가 없었던 입장이었다.
거죽만 남은 이념이지만, 여튼 좌/우를 막론하고 나를 가장 분노캐 하는 것이 이런 행태이다.
"국민 혹은 구성원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국가 혹은 회사" 뭐.. 회사야 이윤추구와 구성원 보호가 양립하지 못 할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니 국가와 똑같은 잣대를 대면 안된다고 생각은 한다.
그런데 국가가 적극적/소극적으로 자국민에게 총질을 하고 머리를 자르고 바다에 버리고 산에 묻고 굶겨죽인 전례가 있다. 한두번이 아니다.
내가 지금 '이념적으로 무난한 중산층' 에 위치한다고 하여 '언제든지 무고하게 희생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를 쉽사리 타자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옆집 개똥이가 신고만 넣으면 중세 마녀사냥 하듯 고문받다가 '이젠 죽자' 는 심정으로 자백하고 다음날 목이 바닥에 굴러다녔을 수도 있는거지.
그렇게 극단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고, 인생도 짧게 살아왔지만 '이념가의 모순' 과 '무고한 희생자가 된 입장의 편린' 은 겪었다고 생각한다.
다소 오만할 수도 있지만, 나는 무난한 중산층이고
비교적 '지식계층'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나처럼 살면 무탈하게 살 수 있어. 사회 탓하지 말고 나만큼 노력해' 라는 식의 태도는 경계한다.
그거야 말로 공동체를 살아가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불행을 쉽게 재단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그 것이 사회환경과 밀접할 때는 더욱 그렇다.
자기계발서의 무가치함을 비꼬는 말이 있다.
"성공한 소수의 삶이 다수의 삶을 망친다"
한국사회에서 저 말은 자기계발서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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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아이는 굳이 막 착하고 막 잘난거까진 안 바라는데,
의심이 많은 아이로 자라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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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학교에서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법적 회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도와 주거든요.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어떠한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스스로의 기준을 확립하고, 회의하고, 의심하고, 하나의 사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이요.
그냥 윤리교과서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정말로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이끄는 것이 교육의 올바른 방향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딸내미도 의심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