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안정이 그립다. 하도 숨가쁜 세상인 흰구름 뭉게뭉게 일어나는 깊은 산, 고요한 절에서 목탁을 울리며 사는 승려의 생활도 이 세상에서는 벌써 신화가 되고 말았다. 강낭콩같이 푸르고 맑은 호숫가에 일간죽(一竿竹)을 드리우고 고기와 벗을 삼아 짙어가는 저녁노을에 물들어보는 것도 태고의 꿈인 양싶다. 구태라 생생한 현실을 등지고 도피의 생활을 추구하랴마는 진실로 너무나 몸둘 곳이 없이 숨가쁘기 때문이다.
제집 대문간을 나설 때도 무슨 불안이 문밖에 기다리고 서 있는것만 같고 제집 문간에 다 와서도 안에서 무슨 괴상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만 같다. 이 초조한 심경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제집 방구석이라고 그리 안락한 자유성(自由城)은 아니다. 소란과 추악과 야비의 속취(俗臭)는 구석구석 스미어들고 무미와 건조와 침울과 공포는 염통에 쉬파리떼처럼 들어붙는다.
<이유없는 반항>이란 10대 소년의 행태를 그린 영화의 제목이라거니와 '이유없는 초조'는 노경에 가까워가도 면할 수 없는 현대인의 생태라고나 할까, 백팔번뇌에 시달리는 어리석은 중생들이라고 초연히 비웃는 석가모니는 대체 이 세상에 누구냐? 그러나 나에게는 한 복지(福地)가 남아 있다. 변소에 문을 닫고 용변하는 시간만은 완전히 이 세상과 절연된 특권을 향유한다. 겨우 두 다리를 오그리고 앉을 수 있는 좁은 우주. 그러나 자유가 확보되어 있는 우주요, 나에게만 주권이 부여되어 있는 왕국이다. 이 우주 안에 들어있는 동안만은 완전히 치외법권에 속하는 지역으로 할애받고 있다. 그 시간만은 아무도 내 절대권을 침해하려 들지 않는다.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시간선상에서도 나에게만 완전히 포기해준 은총의 시간이다. 큰기침을 하건 가래침을 뱉건 바지춤을 끄르고 하반부의 둔육(臀肉)을 노출하건, 수륙병진(水陸竝進)으로 배출을 하건, 악취를 마음대로 분산시키건, 아무 시비도 체면도 없다. 법률이야 물론이지만 도덕도, 예의도, 인습도, 전통도, 아무것도 ─ 모든 사회적인 간섭, 인간적인 관련에서 오는 시비훼예(是非毁譽)도 없다.
나는 굳이 내 결백을 수식할 필요도, 내 단정한 품격을 조작할 필요도, 시간에 분망(奔忙)할 필요도 없다. 우선 조여매었던 혁대를 끄르고 켜켜로 입었던 바지며 내의, 속내의에서부터 하반부의 둔육을 해방시키고 양족(兩足)을 고여 전신을 편안히 내려앉히면 위로 충만했던 모든 들뜬 기운이 가라앉으며 평온한 희황시대(羲皇時代)로 돌아온다. 향기롭지 못한 냄새도 어느덧 잊어버리고 만다. 마치 이 세상에 오래살아 이 세상 냄새를 모르고 배기듯이. 아무도 이 문을 열 사람은 없다. 아무 일도, 내 스스로가 나가기 전에는 부를 리도 없다. 찾을 리도 없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은 나의 이 작업으로 말미암아 권위있게 스톱당하고 만다. 지구조차 이 속에서는 돌지 않는다. 외계에서 수소탄이 터지든 태양이 물구나무를 서든 나는 결코 개의하지 아니해도 좋다. 내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이런 무관심과 태만에 대해서도 아무도 문책하는 사람은 없다. 잠시 가쁜 숨을 그치고 유유자적한 세계에서 기상천외의 꿈속을 헤매며 오유(遨遊)하는 것도 나의 자유일 것이다. 이 지상에서 자유 해탈의 시간은 이 시간뿐이고 소부(巢父) · 허유(許由)가 놀던 기산(箕山) · 영수(穎水)는 남아 있는 곳이 이곳뿐이다.
- 「방망이 깎던 노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수필가 윤오영의 글입니다.
- 측간은 수소폭탄이 터지든 좀비사태가 일어나든 절대 침해받지 않는 성스러운 생텀! 입니다.
- 이 글을 옮기고 나니 저도 급작스런 변의를 느껴 우주에 둘도 없이 권위로운 작업을 하러 떠납니다. 쾌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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