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봤을때 느꼈던 감정은 생경과 동경이었다. 일단 내가 본 사람들중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는 사람은 저 사람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말은 되게 빠르게 하는데 이상하게 발음이 귀에 쏙쏙 들어오지 않나(덕분에 영어공부도 좀 했다.), 거기에 뭐라뭐라 말할때마다 사람들이 미친듯이 호응을 하지 않나....
입는 옷도 굉장히 화려한데다 매우 잘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지, 게다가 외모도 잘 생겼지....
하지만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듯 이 사람의 진짜 매력은 역시 경기에서 찾을수 있었다. 물론 기술을 날림으로 쓴다는 지적도 있지만, 특유의 접수력과 리액션으로 줄타기하듯이 경기를 이끌어나가며, 아슬하게 승패가 갈리기 일쑤였다. 그 상대가 메인이벤터이든 미들카터이든.... 그것때문에 이미 결과가 정해져있는걸 아는 스포츠라 할지라도 더욱더 손에 땀을 쥐면서 경기를 관전할수밖에 없었다.
챔피언을 자주 지내던 시절에도 경기에서 압도적인 포스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때문에 그 사람을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설령 경기에서 진다하더라도 그 진 상대(악역)에게 특유의 인터뷰로 조롱하며 여전히 팬들에게 다음 경기에 대한 신뢰감과 기대감을 주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에 대해 보답하기도 하고..... 진다고 해도 또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고.
또한 팬들의 반응을 유도해내기도 하고 스스로 반응하기도 하는, 즉 팬들과 호흡할줄 아는 레슬러, 그야말로 Peoples Champion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갑자기 영화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레슬링계에서 그가 멀어지는거다. 처음에는 굉장히 서운했다. 그의 레슬러로서, 엔터테이너로서의 활약에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열광하고, 울기도 했는데.... 아직 레슬러로서는 창창한 나이인데 영화배우로 전업할 분위기라니.
게다가 중간에 잠깐 복귀해서 통합챔피언을 먹었다가 차세대 거물 브록레스너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한달만에 다시 영화계로 떠난거다. 팬들도 내 마음과 똑같았는지 그에게 엄청난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복귀한 2003년 초, 그의 인상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왼팔에 거의 안하던 문신을 하지 않나, 머리는 빡빡 밀었지..... 거기에 복장은 완전히 영화배우의 복장으로 나오지. 그때의 그는 Peoples Champion이 더 이상 아니었다. 마치 자신에게 퍼붓는 야유를 오히려 더 유도하는것처럼 완전 거만한 헐리우드 스타 악역으로 바뀐채 돌아왔다. 어찌보면 그 팬들의 반응에 같이 반응하던 그 모습 그대로이기도 했다. 결국 그 야유에 '반응'한 셈이니 말이다.
그리고 한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준 팬들이 돌아선 모습을 보이자 자신도 같이 돌아선듯 조롱하고, 관중들과 함께 호응하는 특유의 피니쉬 기술인 피플스 엘보우를 시전할때도 더 이상 관중들과 호응하지 않았다. 그저 관중을 위한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레슬링계에서 딱 하나 이루지 못했던 일만을 처리하고 영화계로 돌아가려 했다.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WWE가 가장 흥했다고 평가받던 시기인 애티튜드 시대를 같이 이끌어왔던 아이콘. 그러나 겉보기에 항상 그와 나란히 하는듯 보였어도 인기에서도 딱히 앞선다고 하기에도 그랬고, 결정적으로 그동안 벌어진 수많은 경기들에서 그는 오스틴을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었다. 오스틴에게 승리한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레슬링 업계 최대의 흥행인 레슬매니아에서 오스틴에게 다시 도전했고, 선수생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목부상을 안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받아들였다.
치열한 경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의 피니쉬 기술인 피플스 엘보우, 그리고 락바텀 2번을 오스틴은 전부 킥아웃해냈다. 결코 쉽게 1승을 줄수 없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드러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까지 버틴것도 기적이었다. 마지막 3번째 락바텀에서, 그 본인도 잠시 뭔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그 잠깐의 순간동안 그들이 싸워오고, 함께했던 그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결국 마지막 락바텀이 작렬하고 커버 1-2-3.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vs오스틴전 승리, 그리고 오스틴의 WWE에서의 마지막경기가 그렇게 이뤄졌다.
그 뒤로 그 역시 골드버그와의 경기를 끝으로 완전히 영화배우로 전업하며 떠났지만, 저 당시의 오스틴과의 대립 과정속에서 그가 보여줬던 그 악역스러운 모습과 승리를 향한 집념에 떠날뻔했던 그에 대한 팬심도 완전히 돌아왔다. 아마 레슬매니아 19에서의 승리, 그의 커리어에서 어찌보면 가장 중요했을 승리가 그에게도 그렇지만 나에게 정말 강한 감동을 느끼게 해줬던게 아니었을까. 역시나 팬들의 마음도 나와 똑같았는지 그가 가끔씩 링으로 돌아와서 세그먼트를 할때마다 야유가 아니라 뜨거운 환대를 해줬고, 그도 거만한 헐리웃 스타가 아닌 예전의 Peoples Champion으로 돌아와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11년, 2012~2013년에 그는 존 시나, CM 펑크라는 새로운 스타들과 대립을 만들어갔다. 다만 영화배우라는 직업 여건상 매주 쇼에 출연할수 없는 환경인 주제에 1년중 가장 중요한 흥행인 레슬매니아의 헤드라인을 3년연속으로 장식한데다가, 심지어 챔피언 자리에 다시 오르는 모습을 보여 잠깐 일해서 고액을 벌어가는 '알바'라고 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게스트로나마 레슬매니아같은 중요한 PPV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라는 프로레슬러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레슬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사람만큼은 정말 잘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비록 엔터테인먼트라고 할지라도)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의 재미를 가르쳐줬던 사람..... 어떤 적과 싸운다고 하더라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맞서 싸우고 극복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어 대리만족을 안겨줬던 사람. 그런모습으로 자신감이 항상 부족했고 부족한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
여전히 'If you smell~'이라는 그의 테마곡 도입부가 들려오면 내 심장은 여전히 쿵쾅거린다.
아마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아닐까. 나에게,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그는 영원한 인민의 챔피언, 그리고 나와 그들의 챔피언으로 남아있을것이다.
Do You smell what the rock is coo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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