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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19 18:19:07
Name 가브리엘대천사
Subject [일반] [연재] 빼앗긴 자들 - 15


어둠이 내렸다. 주변은 죽은 듯이 고요했다. 저 멀리 놓여 있는 적들의 실루엣이 달빛에 살며시 반짝이자 몇몇은 두려워하며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레인과 가르멜 공작, 그리고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으나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자는 없었으니까. 다만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그것을 생각할 뿐이었다.



슈우우- 화라라락-



어느 순간, 멀리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하나둘 빠르게 피워 오른 불꽃은 이내 밤하늘을 수놓으며 왕성을 향해 날아올랐다. 라티움의 불로 타오르고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들이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성벽에 내려앉은 그것은 뒤쪽에 있는 병사들을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들며 왕성 내부로 떨어져 내렸고 갑자기 쏟아지는 거대한 불덩어리에 안쪽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연달아 불붙은 돌이 날아와 왕성을 후려지자 성벽 일부가 부서져 내리는 것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튕겨져나갔다.



“서둘러! 불을 빨리 꺼야 해!”

“거기! 멍하니 있지 말고 움직여!”



불붙은 돌덩어리는 모든 것을 휘갈기며 불태우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삭힌 오줌과 물과 모래 등을 사용하여 병사들은 다급히 불길을 잡기 시작했지만, 적들의 투석기에서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불타는 돌덩어리 때문에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힘을 과시하려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고개를 들어 올렸어도 스쳐 가는 돌덩이에 휩쓸려 비명횡사했을 것이 분명함에도, 칼레인은 별로 떨리지도 않는 듯 담담한 투로 옆에 있는 가르멜 공작에게 말했다. 조금 전에 그대로 승천할 뻔하신 분답지는 않으십니다만?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공작은 그러나 그의 답변에 대답하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병사들 소모 없이 공성 무기만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 것 같은데…… 저희도 준비해 놓은 투석기들이 있으니 대응을 하시지요. 어차피 지금은 거리가 멀어서 활을 쏘아도 맞지 않을 겁니다.”



칼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멜 공작은 온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는 듯한 이 난감한 상황 속에서도 지휘관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성으로만 날아오던 불붙은 돌덩어리들이 하나둘씩 왕성 외부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콰앙-!

콰콰쾅!



밤이 깊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로 돌들이 날아가서 얼마나 피해를 주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힘들었으나 사실 몰라도 상관은 없었다. 적은 현재 밀집대형으로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 곳이나 근처에만 떨어져도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을 테니까. 날아간 돌덩어리 중 하나가 운 좋게 투석기와 부딪히며 산산조각내는 것이 보였고, 주변에 타오르던 불길들이 와르르 무너지며 이리저리 뒹구는 것을 보아하니 횃불을 들고 있던 병사들까지 튕겨져나간 듯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왕성 내부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성벽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벽 쪽에 붙어 있는 병사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이미 상당수가 황천길로 향해 버리고 말았다. 열심히 돌덩어리를 받아 힘차게 토해내는 투석기가 반대편에서 날아온 돌덩어리에 처맞아 박살이 나는 것을 보며 칼레인은 다시 성벽 밖으로 시선을 날렸다.

조금이기는 했으나, 전선이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전진하기 시작하면 투석기를 막무가내로 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다 왕성에 근접하게 배치할 것이 분명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적들이 날리는 돌덩어리의 개수가 처음과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도 원체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쪽의 피해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파사사사사-



이내 화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가르며 천천히 다가오는 공성 탑에 위치한 궁수들이 이쪽으로 활을 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상에서 쏘아붙인 화살에 비해 성벽과 비슷한 높이의 공성 탑에서 쏜 화살은 치명적이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병사들은 활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푸욱, 하고 몸통에 화살이 박히며 떨어져 내려갔다. 그러나 이쪽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성벽 끄트머리에 숨어서 석궁 조준을 마친 병사들은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몸을 틀며 단순에 볼트를 쏘아 붙었다. 강력한 힘으로 날아가는 볼트를 공성 탑과 그곳에 있는 궁수들을 순식간에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렸고 위에서 후두둑, 하고 병사들이 떨어지자 밑에서 죽을 힘을 다해 공성 탑을 밀고 당기던 병사들의 비명이 애처롭게 들려왔다.



“성문이다! 성문 쪽을 공격하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전쟁은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뒤에서 투석기가 연신 불덩어리를 쏘아붙이며 왕성 내부를 참혹하게 만듦과 동시에 사다리가 놓이고 공성 탑이 다가오며 어떻게든 성 내부로 진입하려는 자들과, 죽기를 각오하고 그들의 머리를 몸통과 분리 시키기 위한 병사들의 혼전이 피의 강을 이루며 성벽을 물들였다. 그러는 사이에 공성 망치가 성문에 당도하였고 망치를 에워싼 병사들은 연신 망치를 밀어대며 성문을 부수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 그들의 머리 위에서 병사들이 돌덩어리를 집어 던졌으나 공성 망치 위에 가죽으로 뒤덮인 지붕이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무사했다. 아무리 집어던져도 여전히 쿵쿵, 하며 성문이 부서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자 지휘관은 다음 것을 준비하라 일렀고 펄펄 끓는 기름이 확- 하고 쏟아부어 진 뒤 횃불이 날아들자 순식간에 목구멍이 갈아져 버릴 것만 같은 기괴한 음성이 울려 퍼지며 대오가 흩어지고 말았다. 공성 망치를 들고 있다가 온몸에 불이 붙은 병사들이 난동을 부리자 옆에 있는 병사들까지 그들에게 휘말리며 성문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성벽 위에서는 몇 차례나 연속으로 기름을 쏟아부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불화살이 날아들었다. 펄펄 끓는 기름에 휘감긴 병사들은 순식간에 노란 불꽃에 사로잡혀 인생 최후의 광란 춤을 춰댔고 살아 있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괴성과 살타는 냄새가 진동하자 성문을 공격하는 병사들의 사기가 일시적으로 대폭 낮아져 버렸다. 하지만 몇몇 죽었다고 해도 그들의 공세가 끊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더 많은 병사가 달라붙어 공성 망치를 다시 밀어붙였고, 그들의 머리 위로 끝없는 기름과 불덩어리가 쏟아져 내리며 지옥 속에 존재한다는 업화의 징벌을 재현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모전은 새벽이 다가올 때 즈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아침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올 무렵, 첫 번째 휴식에 들어갔다. 물론 그것은 이미 칼레인이 가진 병사만으로는 상대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병력을 가진 라키쉬만 형제들이 오만하게 베푸는 자비였다. 그들에게 있어 조금 전의 전투는 맛보기였다. 전 병력 중 채 오분의 일도 사용하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전장에 투입되지 않은 채 쉬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쉼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그들이었으나, 이 전쟁의 목적은 정복이 아니었다. 고상하게는 이교도 왕을 물리치고 성지를 수호한다는 명분이었으나, 그것보다 더욱 구미에 당기는 것은 바로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라키쉬만 후작은 아키엔 왕국의 권좌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승리만 하면 곧바로 자기 자신이 다스리게 될 나라의 수도인데,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적당히-물론 죽어버린 병사들의 목숨 따위는 연연하지 않고-손을 봐준 뒤 잠시 뒤로 물러나는 척하며, 칼레인이 스스로 항복해 올 시간을 준 것이었다. 미친 듯이 전쟁을 한다면 항복을 하고 싶어도 전령을 보낼 수가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칼레인을 비롯하여 아키엔 왕국의 지휘관들은 당연히 응하지 않았고 라키쉬만 후작은 이미 그 정도는 예견했기에 다음 차례의 병력을 투여해 공성을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쓸데없는 소모전은 그 뒤로 사흘이나 더 지속됐다. 첫날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투석기 사용이 줄었다는 것인데 이미 자신들의 힘을 과시한 이상, 무의미하게 왕성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후작의 바람 때문이었다. 물론, 정 일이 안 풀릴 경우, 성문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을 보강하는 것도 잊지는 않은 상태였다.



“……피해가 얼마나 됩니까.”



사흘 내내 잠도 못 자고 병사들을 지휘하느라 칼레인과 가르멜 공작 그리고 로데인 남작과 수많은 지휘관의 몰골은 가관이었다. 죽은 자들도 꽤 있어서 전쟁 시작 전에 열렸던 전략 회의 때보다 사람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칼레인 역시 화살에 빗맞았는지 왼쪽 뺨에 길게 상처가 나 있었다.

가르멜 공작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피해가 큽니다. 적들의 숫자가 저희가 예상했던 것의 두 배는 넘는 듯싶은데, 저희는 이미 절반도 넘게 병사들을 잃었습니다. 투석기도 다섯 대나 파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나마 이쪽의 병사들이 결사항전을 통해 놈들이 성벽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공작이 말을 잇지 못하자 칼레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 있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지난 사흘간의 공격 동안 저들이 모든 전력을 투입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성벽에 올라온 병사들의 숫자 또한 왕성을 에워싼 병사들 대비 그리 많지는 않았지요. 저들은 성을 완전히 불태우고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함락시키는 것 보다는 우리들의 항복을 받아내길 바라고 있을 겁니다. 총대주교가 이 땅을 정복한다면 라키쉬만 후작에게 짐의 자리를 내준다고 했으니 저들의 입장에서야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 보다는 최대한 보존하면서 짐의 항복을 받고 싶겠지요. 마치 양위를 받는 것처럼.”

“폐하, 그러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항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칼레인은 지휘관들의 눈동자에 피어오른 두려움과 우려와 혼란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원하는 것임은 분명했으나 척후병이 전해 준 병력보다 두 배는 많아 보이는 저들의 병력 앞에 모든 것이 무력할 뿐이었다. 만일 봉신들에게서 추가 병력이 당도한다고 해도 저들을 물리칠 방도는 없었다. 아키엔의 전 병력을 모아 봤자 라키쉬만 형제들의 병력의 반의반도 미치질 못했다. 이 무의미한 싸움의 귀결은 어찌 될지 알기에,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예롭게 싸워서 죽는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었지만, 자신들이 죽게 되면 처자식들은 분명히 겁간당하거나 죽거나 노예로 팔려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죽는 것조차 맘대로 죽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사흘 동안의 소모전이 몇 번만 더 진행된다면, 성 안에 남아 있을 병사는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아무도 할 수 없는 말을 칼레인은 해야만 했다.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협상을 말씀입니까?”

“병사들과 성내에 있는 모든 이들의 생명과 재산 보장을 말입니다.”

“……허면 그 대가로 폐하께서는…….”



칼레인은 슬쩍, 메마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짐의 왕관과 목숨을 내놓아야겠지요.”

“폐하, 그 무슨……!”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한 나라에 왕이 둘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짐을 추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연히 처형하겠지요. 하지만 국왕의 존재는 무엇입니까. 짐을 따르는 자들이 무엇을 받기에 짐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까?”

“…….”

“바로 그들의 안전입니다. 그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다면, 국왕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군사력 증진을 하려고 했건만…… 이젠 다 부질없는 짓이 되었군요.”

“하오나 폐하, 그렇다면 왕자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 아들은…….”



그때, 회의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안으로 전령이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가자 전령은 사색이 되어 부들부들 떨었다. 급히 들어오느라 문을 너무 시끄럽게 연 것이 자신의 목줄을 조이고 있었다. 소리가 목구멍에 걸렸는지 모기만 하게 나오고 있었기에 그는 마른기침을 몇 번 한 뒤 죽을 힘을 다해 소리치듯 말했다.



“저, 저들이 협상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무엇이냐?”

“그, 그것이…… 폐, 폐하를 요구하고…….”

“저놈들이!!”



칼레인이 거론된 이상,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가르멜 공작과 몇몇 지휘관들이 일시에 욕지기를 내뱉었고 또 다른 몇몇 지휘관들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담담한 것은 칼레인 한 명뿐이었다.



“그래, 짐의 목숨을 요구하더냐?”

“마, 망극하옵니다, 폐하!”



차마 대놓고 얘기할 수 없었던 전령은 그대로 엎드리며 통곡에 가까운 절규를 내질렀다. 칼레인은 침묵 속에 그를 내려다보다가 잠시 후, 전령을 보내라 하였다. 항복에 따른 절차 이행에 시간이 걸리니 언제까지 준비하겠다는 내용의 전달을 위함이었다. 가르멜 공작을 위시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결정을 따를 수 없다, 마음을 돌려달라 애원 아닌 애원을 했으나 칼레인은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그러나 잠시 후, 칼레인과 공작과 지휘관과 성내의 모든 병사는 저쪽으로 갔던 전령이 하늘을 날아오는 것을 보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철퍼덕!



그들은 전령을 붙잡더니 투석기에 매달았다. 그리고 쏘아 보냈다. 날개 없는 인간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대로 땅에 충돌하며 즉사해 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터져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기묘하게 꺾인 등을 뚫고 기다란 뼈가 솟아올랐다. 뒤틀린 채 죽어 버린 전령의 팔다리가 한이라도 남은 듯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병사들 틈에서, 용케 한 병사가 참혹한 시체가 되어 버린 전령의 옆에 떨어뜨려 진 종이를 발견했고 이내 그것은 칼레인에게 전달되었다.



- 비겁하게 병사들 뒤에 숨지 말고 그대가 직접 나와라. 아침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그대가 나오지 않는다면, 맹세컨대 단 하나의 목숨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가르멜 공작은 볼 것도 없이 결사항전을 주장했다. 전령을 저렇게 쉽게 죽여버리는 것으로 보건대 저들이 우리를 살려둘 생각 따위는 없을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싸워도 죽고 항복해도 죽는다면 싸우다가 명예롭게 가고 싶다는 그의 연설과도 같은 말에 지휘관들이 동조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지휘관들은 칼레인을 바라보았다. 칼레인은 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 밖에 있는 병사들은 자신을 무슨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짐의 의사를…… 헉!”



말을 하려던 칼레인은 갑자기 가슴에 심한 충격을 느끼며 신음을 내뱉었다. 뭔가 날카로운 것이 심장을 후벼 파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공작과 지휘관들이 놀라 그를 부축했으나 순간 하늘에서 시뻘건 핏물이 쏟아져 내리자 모두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피의 강이 칼레인을 휘감으며 세차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앞으로 고꾸라지듯이 쓰러져 있던 칼레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엇인가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환영처럼 일렁이던 그것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반복된 행위를 하고 있었다.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작은 칼날이 대기를 가르며 무엇인가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것은…….



“으아아아악!!”



눈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에, 성난 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토해내며 칼레인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팔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컥, 하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낸 남자는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자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의 내실에서 칼리스토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지상이 분명했다. 깨지고 박살이 나고 터진, 생생한 전투의 한복판에 와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다고?

생각을 더 진행하기도 전에 갑자기 세상이 휙 뒤집어지더니 머리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남자를 뒤로한 채, 칼레인은 날 듯이 칼리스토에게로 향했다. 부르르 떨리는 팔을 내밀어 난자된 채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칼리스토를 끌어안으려 했다.



“칼리스토…… 카, 칼리스토…… 눈 좀 떠봐…… 응? 눈 좀, 아빠가 여기 있는데 왜…….”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칼리스토는 말이 없었다. 다만 그의 뺨에 흘러내린 말라버린 눈물 줄기가 그의 최후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내실에서 나서기 전에 그의 눈가에서 뭔가가 반짝이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것일까? 그것을 이 못난 아빠는 외면한 채 그냥 나와버린 것이었을까……?



“칼리스토!”



끌어안으려 했다. 어떻게든, 안아주고 싶었다. 이 어린 것이 그곳에서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빠를 얼마나 불러댔을까. 살려달라고…… 얼마나 외쳐댔을까. 이제야 다시 만났는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들인데, 안아줘야지. 그러나 안을 수 없었다. 너무나 참혹하게 난도질 되어서, 끌어안는 순간 헝겊 인형처럼 스르르 뒤로 흘러내려 버렸다. 마지막으로 안아줄 수도 없었기에, 그래서 칼레인은 땅에 엎드린 채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르멜 공작을 포함하여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은 보았다. 회오리치던 피의 소용돌이가 천천히 잦아드는 것을. 땅을 붉게 적시며 냇물을 이룬 그것이 스며들 듯이 칼레인의 손을, 팔을, 그리고 몸 전체를 잠식하는 것을.



파파팟-!



마치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갔다. 대부분이 뒤로 떠밀려 나가듯이 나뒹굴었으나 그 와중에도 칼리스토의 등 뒤에서 핏빛 날개가 확, 펼쳐지는 것을 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흘러내릴 정도로 선명한 날개가 살며시 움직이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칼레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감았던 눈을 뜬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칼레인의 눈은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악마가 강림한 듯한 형상이었기에 가르멜 공작조차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신들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릴 것만 같았다. 도망가야 한다고 머리에서 미친 듯이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발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전신을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칼레인은 미치지 않았다. 자신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처참하게 난도질당하는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스르륵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을 따라 날개가 함께 이동했다. 녹아서 흘러내리듯이 핏물이 계속해서 뚝뚝 흘러내리는 날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기절했다가 이제 마악 정신을 차린 남자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흐익!”



칼레인이 팔을 뻗어 그의 목을 움켜잡자 남자는 순식간에 마비라도 된 듯 축 늘어져 버렸다. 하지만 기절하지는 않았다. 두려움에 잔뜩 물든 그의 눈이 칼레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내 아들을…… 죽이라고 했느냐…….”



숨이 막힌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조차도 마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칼레인은 남자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다. 크게 뜨인 그의 눈을 통해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칼레인은 볼 수 있었다. 왕국에서 쫓겨난 이사키엘 대주교가 남자에게 비밀리에 암살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을. 이 모든 것이 아타나시우스의 뜻이라며 남자를 다독이며 축복을 내려주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지금 그가 라키쉬만 형제들과 함께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커헉!”



손가락이 살을 꿰뚫으며 목줄기 안으로 파고들자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야 숨통이 트인 남자는 신음성을 토해냈다. 마비가 풀린 듯 몸이 움직였기에 남자는 칼레인의 손을 붙잡으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그럴수록 손가락이 날카롭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섬뜩한 파육음과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이내 남자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잘려나간 목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칼레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사람 한 명을 참혹하게 죽여버린 그의 모습에 봉신들은 물론이고 병사들까지 히익, 하며 두려움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차라리 검으로 남자의 목을 베었다면 응당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저렇게 맨손으로 사람을 참혹하게 죽인 것을 보니 당연하고 뭐고 간에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폐, 폐하…….”



가르멜 공작은 이것이 자신이 내뱉은 마지막 말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칼레인을 믿었기에 용기를 쥐어짜 내 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칼레인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어느새 검은 안개에 휩싸인 그의 핏빛 날개가 하늘을 향해 펼쳐지며 힘차게 펄럭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칼레인은 성벽에 올라가 있었다. 순간 그의 주변에 타오르고 있던 횃불이 기름이라도 쏟아부은 것처럼 미칠듯한 크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저기 좀 봐!”

“이교도 왕이다!”

“악마다!”



밑에 것들이 뭐라고 지껄이건 말건 칼레인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주먹을 꽉 쥔 채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날개가 형체를 잃고 흘러내리더니 이내 검붉은 안개가 되어 그의 주변을 세차게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주변에 걸려 있던 깃발이 찢어발겨 지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이번 협상은 분명히 잘 되겠지? 어쩌고 하며 시시덕거리던 라키쉬만 형제들은 성벽 위에서 벌어지는 이 기괴한 현상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오직, 그들의 뒤에 숨듯이 서 있던 이사키엘 대주교만이 목이 터지라고 외치고 있었다.



“악마를 소환하고 있다!! 쏴라! 당장 쏴라!!”



쏘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몇몇 병사들이 활을 날렸으나, 칼레인을 휘감고 있던 소용돌이의 근처에 당도하기도 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칼레인은 움켜쥐었던 주먹을 펼쳤다.

그것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주변의 모든 바람을 빨아들이며, 주변으로 모든 바람을 토해내며, 회전하던 검은 광구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미친 듯이 회전하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조각조각 박살이 난 어둠의 파편은 소용돌이치는 상태 그대로 주변으로 확 펼쳐졌다. 이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검은 별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많은 비명이 온 사방에 울려 퍼졌다. 목이 단숨에 날아간 자, 팔과 다리가 잘린 채 버둥거리는 자, 몸이 꿰뚫린 채 아직도 자신이 죽은 지 모르는 자까지, 삽시간에 대형이 무너져 내리며 죽은 자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갑자기 진형 일부가 텅 비어 버리자 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자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 당황하지 마라!! 적은 한 놈일 뿐이다! 활을 쏴라!”

“놈을 죽인 자에게 금화를 내리겠다! 쏴라!!”



하지만 죽은 자보다 훨씬 많은 자가 아직도 건재해 있었다. 그랬기에 아까부터 광신도처럼 소리치며 명령을 내리는 이사키엘 대주교에게 합세하여 라키쉬만 형제들도 다음번 공격이 날아오기 전에 서둘러 공격 명령을 내렸다.



“폐하, 폐하, 위험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을 써서 수많은 병사를 일거에 싹쓸이해 버린 칼레인이었지만 한번 힘을 방출한 뒤라 그런지 그는 상체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방비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있던 횃불은 여전히 하늘을 불태울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명확한 목표가 또 있을까! 가르멜 공작은 어떻게 해서든 칼레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나 그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날아드는 무수한 화살은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대부분은 칼레인을 스치듯이 날아갔으나 단 한 발의 화살이 칼레인을 향해 정확히 날아들었다. 그의 눈동자를 잠식하고 있던 핏빛이 사라지는 순간, 화살은 그의 목을 꿰뚫었다.



“크헉!”



칼레인은 뒤로 튕겨 나가듯이 떨어지며 땅바닥에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공작은 이미 늦었구나, 하면서도 더욱 전력으로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목덜미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핏물을 바라보며 절망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폐하, 폐하!”



칼레인의 푸른 눈동자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숨이 흩어져 나가 버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부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공작의 뺨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서둘러라! 폐하를 안으로 모셔라!!”



그 사이, 들것을 든 병사들이 황급히 달려왔고 방패 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들의 왕을 안으로 모셔가기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은 갈 수 없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이었건만, 칼레인이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칼레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 바람에 그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감히 폐하를 땅바닥에! 하며 공작이 소리치려는 찰나, 부르르 떨면서도 엉금엉금 기어가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바로 저기에, 자기 아들이 차디차게 식은 채 누워 있었다. 자기 혼자 갈 수는 없었다.



‘조, 조금만…… 조금만 더…….’



눈앞이 흐려지고 몸의 관절이 부서지는 것을 느끼며 칼레인은 쓰러졌다. 아들은 울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무사히 다녀오라며, 안아 달라고 했다. 그랬기에 팔을 뻗었다. 그렇게 그를 안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한 뼘만 더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칼레인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울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어둠에 깊이 가리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칼레인은 끝없는 저주 속으로 빠져들었다.





------------





발로 쓴 공성전 끄읕-!!


....이번 편은 사실.... 공성전 쓰려고 이런 저런 자료 준비했다가... 막상 쓸때는 시간도 없고 좀 힘들고 해서 그냥 스르륵 써버리는 바람에, 공성전의 긴장감과 전투의 박진감과 잔혹함은.... 강아지어미한테 줘 버리고, 시시하게 되어 버렸다는 비화가....

어떤 분이 공성전에서 투석기의 힘이 너무 강하게 나와서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을 해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의 예루살렘 공성전을 참고했냐고 물으셨는데.... 네, 제가 바로 그 영화를 참고했습니당...;; 완벽한 고증으로 유명하지만, 공성전 만큼은 뻥이 가미된 영화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바로 그 뻥인 부분만 참고를 했기에.... 위와 같은 글이 만들어 졌다지요.... 흐흐.....;;

그래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특히, 세상만사다반사 님, 은별 님, 댓글 감사합니다. ^^
좋은 하루 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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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다반사
14/11/19 20:55
수정 아이콘
이번 화는 분량이 엄청나네요 덜덜.. 칼레인이 이대로 죽는건지.. 다음 화 좀 얼른 부탁드립니다.
가브리엘대천사
14/11/20 14:30
수정 아이콘
어쩌다 보니 분량이.... ^^; 그 궁금증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다음 화를 올렸습니닷! 감사합니다.
14/11/20 08:57
수정 아이콘
뭔가 4차원적인 이동이 있는 것 같은데... 다음이 궁금하네요.
가브리엘대천사
14/11/20 14:31
수정 아이콘
흐흐흐.... 다음 화에 궁금증이 풀리시길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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