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해 봤자 소용없을 것임을 우리 둘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미안하다는 말을 억지로 참았다. 그 말이 오히려 상처만 더 키울 것임을 깨달았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해와 배려, 그리고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것이었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를....... 은을 잊을 수 없겠죠. 설령 은이 결국 당신을 거부하고 떠나더라도 당신은 그저 그의 뒷모습만 쳐다볼 거예요. 헌, 당신이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죠. 그렇기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나는.......”
단지 입을 열었을 뿐인데,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한 줄기 눈물이 이윽고 천천히 말라붙어 갔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의 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눈물은 미량의 수분과 끈적임만을 남긴 체 사라졌지만, 그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쉬이 아물 성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만든 것은 나였다. 나의 우유부단함이.
“당신이 은을 생각하는 것은 괜찮아요. 하지만.......”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그가 당신에게 돌아오진 않아요. 이미 그는 다른 사람을 선택했으니까.”
“......알고 있어.”
나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당신, 결국 상처받을 거예요."
"......그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도 그를 버릴 수는 없는 건가요.”
그건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의 피부는 부드러웠고 온기가 느껴졌다.
“가여운 사람.”
그는 뜻밖에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당신은 결국 그를 기다리겠지요.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줘요.”
그의 입술이 내 뺨에 와 닿았다. 흐느끼는 듯한 그의 숨소리가 지척에서 느껴졌다.
“그런 당신을, 나 역시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 가슴 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이내 눈물이 폭발하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목을 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내 머리를 가만히 안고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대었다. 한참 후, 그가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듯 차분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