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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25 16:20
아, 상황적으로나 순서상으로나 을사(乙巳)일이 맞고 고려사절요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사에서는 작성자가 오기를 했는지 기사(己巳)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가 고려사를 참조하다가 문득 잘못 썻습니다. 을사일이 맞습니다.
http://zh.wikisource.org/zh-hant/%E9%AB%98%E4%B8%BD%E5%8F%B2137%E5%8D%B7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24407&cid=3867&categoryId=3867 중국 위키에 올라온 고려사 원문이나 네이버에서 올라온 고려사 원문이나 다 기사일로 되어 있는것을 보면 고려사 자체에서 기사일로 잘못 써나 봅니다.
14/03/25 16:09
실제로 저런 상황에서 개경에 들어간 것이 이해가 안 되긴 하죠. 삼국지로 따지면 유비가 장판파에서 조조에게 쫓기다가 관우, 장비와 함께 성에서 농성하자고 마음 먹은 꼴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우왕과 비슷하게 생긴 병사에게 왕복을 입혀서 개경으로 군사를 몰게 하여 이성계를 유도하고, 최영과 우왕은 소수의 군사와 함께 아예 다른 길로 빠져서 훗날을 도모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저들이 생각 못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진짜 이유를 알고 싶긴 합니다.
14/03/25 16:49
유비야 군벌세력인데다가 마땅한 근거지도 없는 군주였습니다.
하지만 우왕은 다르죠. 500년을 이어온 정통왕조의 왕이었고, 개경은 수도였습니다. 상징성 자체가 다릅니다. 게다가 고려 자체가 강력한 중앙집권의 왕조가 아니기 때문에, 수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방세력들은 바로 등을 돌려버리겠죠.
14/03/25 16:59
그 상징성이 고려 때 몇 번을 무너진지를 모르겠는데... 뭐 그 개뿔도 없는 상징성 찾아 지방세력 등 돌리지 않게 하겠다고 굳이 거길 기어들어가서 죽을 이유는 없지요. 당장 개경 들어가면 죽는데 뭔 의미가 있습니까.
차라리 민비처럼 도망쳐서 나라나 팔아먹는 게 개인의 관점에서는 더 이해가 될 듯 싶네요. 혹은 이성계를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누락되는 역사가 있었다고 하면 그것도 이해가 되구요.
14/03/25 17:30
개경 버리고 지방으로 가면
이성계가 왕씨중에 아무나 하나 잡아서 왕으로 세우기만해도 지방호족들이 우왕 머리 잘라서 이성계한테 바쳤을겁니다. 이미 군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지방세력은 군사력이 강한쪽에 붙을 수밖에 없죠...
14/03/25 18:27
당장 죽기 vs 6개월 뒤 살지 죽을지는 모르겠는데 죽을 확률이 더 높기 수준이네요. 5천만 중 전자를 선택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고 봅니다만.
14/03/25 18:32
회유해서 안되면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똑같다라고 판단한거고 회유를 위해서는 개경에 있어야만 했던거죠. 회유에 모든 것을 걸었지만 회유가 실패(될리가 없었지만)하면서 모든것이 끝났다라고 봐야할거같습니다.
14/03/25 18:40
동경호족세력과 연합이 힘들면 명으로 망명했야죠. 명 입장에서는굉장히 환영할 만한 떡밥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지로 기어들어간 건 이해가 안 됩니다만 뭐 언제나 역만없이죠.
14/03/25 18:51
사명감이 아닐까 합니다..왕이라는 사명감..
나라를 말아먹은 군주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군주들이 적지 않으니...
14/03/25 18:51
개경에 있으면 개경에서 상대군을 막아 살기 or 잡혀서 바로 죽기 두가지가 있겠지만
멀리 달아나면 그대로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한거죠. 그리고 삼국지와는 달리 한반도는 중국에 비해 영토가 엄청 좁습니다. 도망가서 세력을 키워봤자 얼마 못가요. 한반도가 중국 정도의 크기라면 도망가서 후일을 기대해보겠지만 이 좁은 한반도에서 도망가봤자 쉽게 잡혀서 머리잘리는건 금방이죠
14/03/25 16:10
400km를 10일에 주파하는 위엄이네요. 큰 강도 4개나 있는데 5만 병력이 저시절에 저 속도로 움직인건 정말 경이롭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최영이 수비군을 어떻게든 긁어모아 농성전에 들어갔을테고 그러면 장담 못 했겠죠.
14/03/25 18:06
휘하 장수나 병사들 입장에서도 춥고 먼 북방대륙으로가서 대국과의 전쟁을 치루느니 킹왕짱 이성계 아래서 쿠데타군으로 개경입성하는게 훨씬 안전하고 목숨부지하기 좋았을것 같습니다. 그냥 냅다 우르르 달리기... 군인의 능력은 사기에 따라서 천지차이가 됩습죠.
14/03/25 16:14
실록에서는 회군에 대해서 무의미한 전쟁 종식으로 접근하지만 실상은 쿠데타죠. 회군이 저리 빠른건 일거에 정권 탈취하겠다는 의도가 강하다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4/03/25 16:28
10일만에 도달한건 경기병 위주의 선발대고 이틀 뒤에 본대가 도착해서 공성전을 벌인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그래도 알보병이 12일만에 주파한거죠;; 대단합니다.
14/03/25 16:48
갈때와 올때의 차이
갈때는 요동원정에 필요한 많은 보급품까지 챙겨서 가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고려 국내이기 때문에 병사들 훈련도 겸하면서 천천히 전진합니다. 올때는 보급품? 후속대 챙겨와~ 그리고 본대와 선발대 달립니다. 선발대는 기병중심으로 빠른 거점 확보를 목표 (당시 원정군 규모가 5만병력에 군마 2만필 이었으니..선발대만 해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만기병이 넘습니다.) 본대는 선발대가 거점 확보한 곳을 위주로 강행행군 합니다. 후발대는 보급품 챙겨서 따라옵니다. 개경에 선발대 도착 +2 일 후 본대 도착 후 공성전 -> 이때 전쟁이 끝났기에 다행이지 여기서 못끝냈으면, 후발대가 보급품(식량) 가지고 올때까지, 기다려야 했을겁니다. 후발대까지 오는 시간이 있다면 근왕군이 개경에 구원올 확률도 있었지만, 그런거 없죠.
14/03/25 16:27
정도전을 보다보니...궁금한게 생기더군요..
명나라가 설치했다는 철령위의 위치는 아직 정확히 모르는 것이지요? 위키를 보고 블로그들을 봐도 논란이 있다 정도로만 끝맺음을 하는거 같은데.. 현재 주류사학계에서는 어디를 철령위의 위치로 보고 있는지요?
14/03/25 16:43
철령위 위치에 대한 관점은 주로 교과서 등에서 배우는 그곳이 정설입니다. 철령위 위치에 관련하여 논란이 있다는 식의 표현은 자주 사용되긴 하지만, 사실상 그냥 외교적인 수사로 보면 되고 일반적인 사학계에서는 논란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鐵嶺衛 설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는 그냥 아예 '확실하다' 고 표현을 하기도 했고.
다른곳에 있다는 설을 내신 분이 복기대 교수라고 계시는데 검색 해 보면 알겠지만 이 분은 고려사 전공자도 아니고 고고학 전공자라 사실 전혀 다른 분야라...말하자면 근현대사 전공한 이덕일이 고조선 책 내는것과 비슷합니다.
14/03/25 16:36
14/03/25 16:49
이성계의 주특기인듯 크크크
엔하위키에서 보니 요동성을 정벌하러 갈때도 200리(80km) 거리를 단 이틀만에 주파했다고 하네요. http://rigvedawiki.net/r1/wiki.php/%EC%A0%9C1%EC%B0%A8%20%EC%9A%94%EB%8F%99%EC%A0%95%EB%B2%8C
14/03/25 16:38
개인적으로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가 그냥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만 바꿔 쿠데타를 한게 아니라 이전부터 많은 준비를 해오다 거사일을 잡고 내려간거라고 결론짓게 되더군요. 불과 몇 달 전까지 손을 잡고 이인임을 몰아냈던 이성계가 갑자기 칼끝을 돌릴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최영에게 일시에 기습을 가하는 걸로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 개경에 들어가기전에 우왕과 최영을 잡을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은...뭐 실패했어도 결과적으로 개경이 하루만에 함락되었으니 상관없었겠지만요.
14/03/25 17:07
철령위가 원산만 쪽이라면 원정군은 왜 위화도 방향으로 갔을까. 반대로 또 철령위가 요령 지방이라고 하기에는, 그 시대의 고려가 압록강 이북까지 영향력이 있었을까라는 물음표가 띠용 생기네요. 역사 문외한에게 역사는 너무 어렵습니다. 헐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4/03/25 17:26
철령위를 치러 간게 아니라(철령위는 어차피 당시 명나라 근본적인 세력이 미치던 지역은 아니었음)
철령위 쪽을 내놓으라고 하는 명나라를 위협하기 위해 요동을 치러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일본이 독도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대마도로 진격하는 식과 비슷한 거겠죠.
14/03/25 17:08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무쌍을 보여주더니 이방과가 나름 한끗발 했었군요.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의 등쌀에 밀려 격구나 치러 다니는 유약한 이미지였길래, 정도전을 보면서 이방우와 이방과를 헷갈렸었습니다. ;;
14/03/25 18:48
항상 그런 충신으로 살수 있을까? 오 베이베~
난 내 나라는 내 손으로 만들꺼야 똑같은 나랄 강요하지마 내안에서 꿈틀대는 반역의 기운 난 키워가겠어
14/03/25 19:42
우왕이 최영에게 자기 곁을 떠나지 말라면서 만약 가겠다면 자기도 가서 친정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던데
(부왕이던 공민왕이 암살당해 죽은 거때문에 굉장히 두려워했었고 공민왕이 죽을 떄 최영이 곁에 없어서 생긴 일이니 이번만큼은 자신을 지켜달라는 식으로..) 만약 원래 계획대로 원정군에 최영이 그대로 갔다면 역사가 어떻게 변했을 지....
14/03/25 20:02
아마 데리고 가서 죽였겠죠.
원정군 끌고 외국과 전쟁하러 가다가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가던 도중에 변심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 같고 아마 출발 오래전부터 원정군 무장들 대부분을 회유해뒀겠죠. 정말 요동정벌에 명분이 없었다면 조선건국 후 요동정벌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을거라고 봅니다.
14/03/25 20:15
사실 조선건국 후의 요동정벌도 정도전이랑 남은 둘이서만 열불 냈고 이성계는 영 탐탁치 않게 생각해서(..) 실제로 조준이 반대하니깐 이성계가 정말 좋아했다고 하던데.......아마 고려 말이나 조선 건국 당시나 요동정벌이 섬 한번 점령하는 건 가능해도 유지는 안된다고 줄곧 생각은 했었던 거 같아요.....
14/03/25 21:47
화력이라는 게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시점에서 그만큼 기동전에 무게가 실리게 되고, 그 결과로 기동력에 있어서 엄청난 우위에 있었던 이성계가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분석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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