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본 글은 예전 글에 대한 영상 추가 및 내용 수정본입니다.*
[영화공간] 잊을 수 없는 한국 멜로영화 속 명대사
오늘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국 멜로영화 속 명대사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올드미스 다이어리(2007) - 예지원, 지현우
"맘에 없으면, 단둘이 술 마셔주지도 마.. 영화 보잔 말도 하지 마.. 전화해서 뭐했어요, 미안해요, 담에 봐요, 그딴 말도 하지 마.. 맘에 없으면, 돌아서 머리통이 깨져도 그냥 받아주지 마.. 단둘이 술 마시고 만나주고 그랬으면.. 그렇게 했으면..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사랑해줘야 돼.. 그게 예의야.. 알어?"
정통 멜로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연하남 지PD(지현우)로 상징되는 '이 세상'을 향한, 서른 둘 노처녀 최미자(예지원)의 도전과 외침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대한민국에서 30대 미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른바 노처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아픔인지를 영화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웃음과 유머를 통해 편안하고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특히나 영화의 종반부, 확성기를 들고 지PD의 집 앞에 찾아가 그의 면전에 대고 그동안 쌓인 설움과 울분을 토해내던 그녀의 절절한 외침은,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올미다] 최고의 명장면이다.
2. 봄날은 간다(2001) - 유지태, 이영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우리 주변에서 있을법한 연애와 사랑을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린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봤다. 2001년, 고3 시절 처음 봤을 때는 내용도 재미없고 지루해서 살짝 졸기까지 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 몇 년 후에 다시 본 영화 [봄날은 간다]는 우리네 연애의 현실적 단면을 정말 진솔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은수(이영애)의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 못지않게 기억에 남았던 명대사는 사랑이 식은 은수에게 찾아간 상우(유지태)가 했던 이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3. 후아유(2002) - 조승우, 이나영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니가 좋아! 야구보다 더! 난 니가 좋아! 우주보다 더!"
2002년 개봉 당시 커다란 흥행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20대 젊은층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얻았던 영화 [후아유]. 영화 [접속]의 2000년대 판이라고 한정짓기엔 그 새로운 감각과 신선한 캐릭터들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영화이다. 특히나 영화 중반, 형태(조승우)가 기타를 치며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인주(이나영)를 위해 들려주는 윤종신의 '환생', 긱스의 '짝사랑', 나미의 '유혹하지 말아요' 메들리는, 특유의 풋풋한 맛에 저절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4. 8월의 크리스마스(1998) - 한석규, 심은하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건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한국 영화계의 보물같은 여배우로 기억되는 심은하와 90년대 한국 영화계 최고의 배우였던 한석규가 호흡을 맞췄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진관 주인 정원(한석규), 그리고 그의 죽음을 모르는 다림(심은하)이 문 닫힌 사진관 속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음 짓는 모습은 그래서 오히려 더 슬펐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 잔잔한 엔딩과 함께 깔리는 한석규의 내래이션은 두고두고 영화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대사이다.
5. 번지점프를 하다(2000) - 이병헌, 故 이은주
"태희야, 왜.. 어째서 넌, 날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니..? 난 널 이렇게 느끼는데, 널 이렇게 알아보는데.."
동성애 코드라는, 2000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가 삽입되었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보면 동성애라는 코드는 우리의 마음을 그다지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애틋하고 마음 아픈 영화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시절 사랑했던 연인인 태희(故 이은주)의 환생처럼 느껴지는 제자 현빈(여현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힘들어하는 인우(이병헌)가 현빈을 향해 토해내는 흐느낌. 엔딩씬의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못지않게 가슴을 울리는 명장면-명대사이다.
6.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 정우성, 손예진
"왜 울어.. 내가 다 기억해준다니까..? 내가 있잖아, 다 잊어버리면.. 내가 짠하고 나타나는 거야. 이렇게, 새로 꼬시는 거야.. 니가 안 넘어오고 배겨? 매일 새로 시작하는 거야. 죽이지..? 평생 연애만 하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처럼 대놓고 슬픔을 전면에 내세우는 최루성 멜로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 등으로 대표되는 많은 명대사들마저도 CF광고처럼 느껴져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찡했던 장면은. 사랑하는 수진(손예진)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철수(정우성)가 헤어지자며 우는 그녀를 위로하며 애써 밝게 말을 건네는 장면. 매일 매일 새로 꼬시겠다며, 죽이지 않냐며 일부러 밝게 장난처럼 말을 건네던 그 모습이 꽤나 짠하게 다가왔다.
7. 약속(1998) - 박신양, 전도연
(5분 50초부터)
"당신께서 저한테 '니 죄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이 여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혼자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이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하지만 이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만큼은 저 정말이지, 정말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면서 참 뻔하고 통속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꽤나 슬프고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영화 [약속]. 수 많은 우여곡절 끝에 사랑에 빠지게 된 조직의 보스 공상두(박신양)와 그의 담당 의사 채희주(전도연).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상두는 결국 경찰에 자수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희주와 함께 마지막으로 성당에 가서 결혼을 약속하고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에서 공상두가 하나님에게 말하는 이 대사는 당시 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8. 와니와 준하(2001) - 김희선, 주진모
"너 그런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야. 꼭 내가 싫어졌다란 소리로 들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른바 '나만의 멜로영화'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그런 영화가 바로 김희선, 주진모 주연의 [와니와 준하]이다. 이 영화는 그 당시 내가 무척 좋아했던 배우 김희선의 연기를 재발견하게 해준 영화이자 잔잔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화면이 마치 순정 만화 같았던 영화로 기억된다.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준하를 짝사랑하는 소양(최강희)이 준하와 술을 마시던 도중, "너무 잘해주지 마요.. 그러면 상대는 마음이 꼭 그만큼 뒤로 물러나더라구요.."라고 말하던 대사였는데, 영상을 찾지못해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고양이 교통사고씬)의 준하의 대사를 꼽아봤다.
9. 조금만 더 가까이(2010) - 정유미, 윤계상
(6분 30초부터)
"나 너 때문에 연애 불구야."
어느 날, 헤어진 전 남자친구 현오(윤계상) 앞에 불쑥 나타난 은희(정유미). 안부를 묻는 그에게, 너 때문에 연애불구가 되었다며 "난 너 절대로 용서 안 해."라고 대놓고 저주하듯 말하는 그녀. 갑작스레 전 남친 앞에 나타나 당당하게 막말을 퍼붓는 은희의 모습이 한편으론 4차원적이고 뻔뻔하게 느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왜 이렇게 가엽고 짠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몇 번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난 너 절대로 용서 안 해."라는 말이 "난 널 절대로 못 잊어.", "널 지금도 사랑해."라고 들리는 건 왜 일까. 그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정유미라는 배우의 고유한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작품, [조금만 더 가까이]였다.
10. 아는 여자(2004) - 이나영, 정재영
"사랑해요.."
[아는 여자]는 두 남녀의 평범하면서도 엉뚱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사랑과 연애에 대한 현실적인 판타지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위대함이나 특별함이 아닌, 사랑의 일상성을 통한 수수함과 잔잔함을 이야기한다. 이른바 사랑이라는 것이 꼭 정해진 운명이나 인연처럼 대단하고 화려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삶과 일상으로부터 잔잔하게, 그리고 서서히 스며들 수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영화. 이렇듯 장진 감독은 [아는 여자]의 여주인공 이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 그게 뭐 별건가요?" 라고 말하며 빙그레 미소 짓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