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내와 같이 아관파천 루트의 사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아관파천 당시 고종은 궁녀가 탄 가마에 몸을 숨기고 경복궁 영추문을 나와서 금천교 시장 앞에 있는 금천교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경희궁의 아침 오피스텔 3단지 앞에 있는 내수사 앞길을 가다 서울 역사박물관이 있는 새문고개를 넘어서 정동공원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경복궁의 영추문에서 출발해서 정동공원까지 걸어가봤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하지만 신호등에 걸린 것과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길을 확인하느라고 멈춘 것을 감안하면 대략 20분에서 30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경복궁 부근과 서대문 일대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고종이 볼쌍사납게도 궁녀의 가마에 몸을 숨기고 필사의 탈출을 한 것은 아마 아내를 잃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던 한 남자의 일생일대의 승부수였습니다. 이미 춘생문 사건으로 인해 감시가 심해진 상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했다면 고종의 퇴위는 1907년이 아니라 1896년에 벌어졌을 겁니다. 가마에 탄 고종이 지나갔을 그 길을 가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새문고개 앞,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 역사박물관 자리 에는 광해군이 세운 경희궁이 있었답니다. 멀쩡한 궁궐을 놔두고 남의 나라 대사관에 몸을 맡겨야만 했던 고종의 심정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얘기들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죠. 한말의 격동기는 비극으로 끝난 덕분에 관심들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격동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습니다. 상놈과 서자가 출세하는 세상은 양반들에게는 말세였지만 상놈과 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시대였으니까요.
한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고종이 어느 문으로 공사관으로 들어왔을까 하는 겁니다. 지금의 캐나다 대사관쪽이 정문이지만 당시 러시아쪽 기록을 보면 쪽문으로 들어왔다고 되어 있으니 이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정동공원을 둘러보면서 고종이 진입할 만한 곳을 점찍었지만 경비가 지키는 상림원이라는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탓에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 사는 사람을 알고 있으니 나중에 동행하든지 직접 들어가볼 생각입니다. 아관파천 루트는 이미 개척한 갑신정변 루트와 더불어 길과 도시가 역사로 탈바꿈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인것 같습니다. 둘 다 걷는데 한 시간 안팎이라 도심 산책에도 제격이죠.
이런 식의 발로 뛰는 답사기를 모은 여행인문서가 다음번 일정입니다. 조선백성실록 원고는 이미 넘겨줬고, 그 다음 청탁 받은 원고도 거의 끝나가는 상태거든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걸으면서 당시의 상황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그 많은 자료들을 보고 글을 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지만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 편입니다. 정동까지 오면 조용한 정동길을 걷는 보너스를 얻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 중명전 역시 볼 수 있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