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방자여사
李方子, 1901.11.04 - 1989.04.30.
본명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梨本宮方子.
대한제국의 황족. 영친왕의 부인으로 일본 황족 출신
원래는 히로히토 왕의 부인으로 물망이 오르고 있엇던 인물이지만 불임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밀려 영친왕과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불임이라는 소문과는 달리 두 아이를 낳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제가 패망하자 황족신분이 박탈되어 호적상 재일한국인이 되고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왕족을 견제한 이승만에게의해 좌절,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정희의 허락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낙선재에 기거하며 학교를 세우는 등 각종 사회봉사 활동 등을 펼쳤다.
일본 황실출신이며 한국어에 매우 서툴렀지만 국적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한국인입니다" 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며 많은 한국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일본드라마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왕비에서 칸노미호가 이방자역을 맡았다.
2. 사가 히로
嵯峨 浩(さが ひろ, 1914~1987)
청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동생 아이신기오로 푸제(愛新覺羅 溥傑, 애신각라 부걸)의 아내
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의 동생 푸제와 1937년 정략결혼을 하였으며 둘 사이의 금슬은 매우 좋았다.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고 푸이를 만주국의 황제로 임명하자 남편과 함께 만주로 건너갔다. 일본이 패망하고 소련이 진격하자 남편인 푸제는 황제 푸이와 신료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만주를 탈출하고 자신은 황후와 딸과 함께 조선을 거쳐 육로로 탈출하려고 했으나 푸이는 비행장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히게된다.
사가 히로도 팔로군에게 잡히고 퉁화, 지린, 옌지 등을 옮겨다니며 감옥생활을 하다가 석방된다. 그뒤 중국의 국민당군에게 또 체포되어 상하이에서 공안의 감시를 받다가 일본 군 대위에게 구출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이후 사가히로는 선생을 하면서 일본에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재혼하지 않고 두 딸을 키웠다. 그후 일본과 중국이 미수교 상태였기에 16년동안 남편인 푸제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 뒤 장녀가 저우언라이에게 편지를 보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이에 감명을 받은 저우언라이의 초청으로 16년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뒤 사가 히로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푸제와 베이징에서 여생을 보내며 사가히로가 죽었을시 푸제는 시신앞에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일본드라마 <유전의 왕비, 최후의 황제>에서 토카와 타카코가 사가 히로 역을 맡았다.
후에 많은 사람들은 일제는 가장 못난 사람을 일본의 황후로 삼고 진짜 황후감인 사람들을 조선과 중국으로 시집보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