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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26 00:03
어찌 보면 대한민국 화폐 속 위인들과 가장 인연이 많은 인물이군요.
본인은 세종대왕(만원)의 후손이고, 퇴계 이황(천원)을 존경했으며, 신사임당(5만원)의 아들인 율곡 이이(5천원)와 충무공 이순신(백원)을 중용했으니... (100원-1000원-5000원-10000원-50000원 전부 꿰찼군요. 헣헣)
13/03/26 00:04
종계변무라면 역관 홍순언에 얽힌 기가막힌 사연이 있지요.
http://ko.wikipedia.org/wiki/%ED%99%8D%EC%88%9C%EC%96%B8_(%EC%97%AD%EA%B4%80) 선조이하 조정에서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반전이 일어나죠
13/03/26 00:11
이순신의 승진속도가 후덜덜했죠. 부임-승진-부임-승진.. 전 유성룡이 밀어준걸로 알고 있었는데 선조였나 보네요.
밀어줄려면 끝까지 밀어주지 왜 ..ㅜ.ㅜ
13/03/26 00:17
이순신을 밀어줄 때 선조의 말이 무슨 소설의 한장면같이 멋지죠.
------------------------------ 사간원이 아뢰기를, “전라 좌수사 이순신(李舜臣)은 현감으로서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좌수사에 초수(招授)하시니 그것이 인재가 모자란 탓이긴 하지만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체차시키소서.” 하니, (선조가) 답하기를, “이순신의 일이 그러한 것은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순신)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 하였다. 사간원이 다시 아뢰기를, “이순신은 경력이 매우 얕으므로 중망(衆望)에 흡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현령을 갑자기 수사(水使)에 승임시킬 수 있겠습니까. 요행의 문이 한번 열리면 뒤폐단을 막기 어려우니 빨리 체차시키소서. ” 하니, (선조가) 답하기를, “이순신에 대한 일은, 개정하는 것이 옳다면 개정하지 어찌 않겠는가. 개정할 수 없다.” 하였다.
13/03/26 00:25
재능 면에서는 조선시대 왕 중에서도 최상위에 들었지요. 임란때 활약했던 인재들을 보는 예리한 안목 등.
문제는 성격. 의심종자에 이기적인 성격이랄까.
13/03/26 00:36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모든게 전쟁 스트레스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죠.
임란전 - 임란도중 - 임란이후 3단계로 멘붕테크를 탄 듯한...
13/03/26 00:58
인조의 경우도 전쟁 전과 후에 (아직까지 제가 읽은 정도에 한해선..) 어느정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치욕적이긴 했지만 두 달 남짓 고생한 인조가 그러한데, 7년가까이 과거 유례없던 전쟁에 시달렸던 선조의 경우 (전쟁도중엔 반란까지 일어나고-_-;;) 정말 성군이 폭군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지요. 만약 선조가 한 20년정도만 왕위를 하다 죽었으면 세종에 다음가는 명군이 됐을 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왕은 임진왜란을 맞이한 무능력한 왕으로 인식되고 선조가 살아있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텐데.. 하는 소리가 나왔을듯;
13/03/26 10:39
저 역시도 전쟁 중 있었던 두 차례의 반란이 - 하필 의병을 사칭했었고, 또 종실사람이었죠-_-
선조를 극적으로 변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한양이야 신립이 무너진 상황에선 당연히 버리고 도망가야 했던거고, 이순신이 서해에서 왜군을 막아내지 않았으면 요동 건너가야지 별 방법이 없죠. 선조가 장렬하게 싸우다 사로잡히면 그냥 전쟁이 끝나는건데;;;;
13/03/26 11:16
그 광해군도 인조반정 일어났을 때 내시에게 업혀 도망쳤습니다. 왕은 어떤 상황에서도 목숨을 보존하는 게 기본인데... 사실 그게 머리론 이해돼도 감정적으론 잘 안 받아들여지지요.
13/03/26 15:53
사실 몽진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든 극히 당연한건데-_-;
이상하게 임란 당시 선조의 몽진만큼은 마치 있을 수 없는것처럼 다뤄지더군요; 이승만이야 뭐 거짓말하고 몰래 도망갔으니까 욕먹을만하다 치더라도, 애당초 선조가 몰래 도망간 것도 아니고, 덕분에 백성들도 다 도망갈 수 있었죠. 도망갈 시간이 남았으니 궁궐에 불도 지르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_-;;;; 오히려 끝까지 싸워서 한양에서 조선이 망했으면 백성들 피해는 훨씬 컸겠죠. 진주성처럼.
13/03/26 00:53
전형적인 재능있고 자의식 강한 인물이 그 프라이드가 꺽였을때 얼마나 찌질할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명으로 도망가려는 추태를보이고 신하들은 대놓고 왕위를 세자에 넘기라고 눈치를주고 이순신등 다른 장수들이 활약하며 자신의 자존심은 무너질대로 무너진 상황 이럴경우 자의식강하고 능력있던 인물이 돌변해서 찌질해지고 의심이 많아지며 상대를 시기하는 소인배가 되곤하죠. 광해군에 대한 시기도 도망이나 치던 자신과 분조를 이끌고 맹활약한 광해군에 대해 서로 비교가돠니 질투심과 의심이 미친듯이 치솟았겠죠. 능력있고 자의식강한 인물이 그 프라이드가 꺽이면서 안좋은형태로 몰락한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m]
13/03/26 16:08
하..신하들이 선조에게 양위하라고 눈치를 줬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선조가 얼마나 한심하면 그랬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선조 입장에서는 정말로, 비참하기 그지없었겠네요..
13/03/26 08:18
예전에 눈시님도 써주셨지만 능력은 있으나 능력을 쓸데없는데 쓴 경우입니다. 그리고 전쟁이라고 변호해줄 수 없는 게 전쟁이 있을 때 나라를 수호할 최종 책임이 있는게 왕인데 그걸 못했으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죠. 광해군이 분조를 이끈 모습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평화시에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반쪽 왕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임진왜란에 보여준 선조는 반쪽이 아니라 1/100...쪽도 안 됩니다. (네 저 선조 정말 싫어해요 -_-)
13/03/26 09:02
신하가 가장 융성하던 시기가 조선에 3번이 있었는데
그 첫번째가 세종~세조 그 두번째가 선조 그 세번째가 영~정조 선조 시기에 기라성 같은 신하들이 많았죠. 이이 이황 유성룡 이산해 이항복 이덕형 이순신 권율 신립 등...난세가 영웅을 만들었나 영웅이 난세에 빛을 봣냐는 다른 문제라고 치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토양은 적어도 지도자가 준 것은 틀림 없겠지요. 문제는 후기에 자기 처신을 못한 점? 저는 선조가 오히려 당 현종하고 많이 닮은 듯 합니다. 말년에 여자 문제와 반란에 고심하던...
13/03/26 10:15
전재 없었으면 대단하긴 했을텐데 =_=;;
그런 if가 많이 떠오르긴 해요. 어쨌든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상 미증유의 사태였으니까요
13/03/26 10:28
임진왜란마저 슬기롭게 헤쳐나갔다면 역대급이 될 수 있었겠지만...
왕으로써 전쟁에 대처한 모습이 너무나도 안습이였고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찌질해지는... 그런 안타까운 케이스로 볼 수도 있죠.
13/03/26 11:19
그래도 임란전의 선조보다 굵직굵직한 업적은 더 많이 남겼죠.
선조를 아무리 고평가 한다고 해도 성종, 영조, 정조를 능가할수는 없죠. 굳건하다는건 어디까지나 선조에 비해서...
13/03/26 11:1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선조가 이이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셨는데, 이이의 십만양병설 주장이 사실이었다고 한다면 왜란에 대한 대비는 좀더 잘 되어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럼 반대로 본다면 십만양병설은 결국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일까요?
13/03/26 11:22
이이를 스승으로 모시긴했으나 이이의 여러 개혁책등에 대해 그닥 적극적으로 밀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선조라는 임금이 원래 누군가를 밀어주더라도 끝까지 신뢰를 주고 끝까지 밀어주는 스타일이 아니기때문에...
왜란에 대한 대비야 열심히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선조나 다른 신하도 설마 왜군이 그렇게 많이 쳐들어올지는 몰랐다는거죠. 전쟁규모로 일어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13/03/26 11:29
십만 양병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니었지만 이이의 개혁책은 한명의 결단으로 또 한시대에 다 이룰만한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거시적으로 제시한 거였죠. 이런 측면에선 선조도 그의 의견을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대동법의 가장 기초적 기반도 이이의 주장에 의해 선조 때 만들어진 거에여.
13/03/26 11:40
아 그리고 10만의 병사를 양성하다는 건, 조선 후기 훈련도감 연간 급료로 계산을 하면..
그냥 산술적 계산으로만 봤을 때 조선 전체 재정의 60%를 병사 양성에만 투자를 해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13/03/26 11:25
선조는 확실히 재평가가 필요한 군주입니다.
임란 때 이후로는 요동 망명설도 있었고, 이미 군주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으니 사실상 재기불가의 상태였지만 임란 이전까지 신하들을 이렇게 쥐락펴락했던 군주들이 거의 없죠. 그전까진 동-서붕당이 시작된 시기라는 인식하에 식민사관의 당파성론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선조는 정말 신하들 입장에선 짜증날 정도로 완벽한 통제를 하죠. 동인이 기어오를라고 하면 스윽 서인 한번 띄워주고, 서인이 기가 오르려 하면 동인 스윽 띄워주고;; 아마 지금은 붕당이나, 전쟁의 입장에서 선조시기를 고찰하는게 일상적이라 그렇겠지만, 몇년 후에 선조의 입장에서 조선중기사를 재조명하면 분명 재평가가 일어날겁니다.
13/03/26 11:31
우리나라가 이순신이 워낙 성웅으로 띄워지고(물론 그럴만한 위인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이순신을 영웅으로 알고 있으니 그런 이순신을 고문하고 핍박한 선조에 대해서 재평가가 이뤄지는건 시간이 많이 필요할거라고 생각되네요. 아니면 영원히 안될수도...
일단 이순신의 발목을 잡았다는것 만으로도...
13/03/26 12:38
그 재평가가 많은이들에게 남게될려면 대중정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아직도 선조는 무능한 암군. 멍청한 군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
13/03/26 13:03
송시열은 평가하는데 딱히 걸림돌이 될 인물이 없지만
선조의 재평가는 이순신이 워낙 입지가 굳건하신 분이라서 ^^ 최고다 이순신논란을 보니 이순신때문에서라도 선조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 받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거같아요
13/03/26 13:42
선조대 정치사는 결국 극복대상입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당파성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아셔야 하는게 우리는 선조를 쓰레기 취급하지만 조선후기 가장 추앙받은 임금이 선조입니다. 그것도 전란을 극복한 임금으로요. 우리야 이순신, 이순신 하지만 전쟁에서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명군의 개입이기도 하구요. 마찬가지로 이이도 우리에겐 성인군자로 취급받지만 동인측 당론서 한두개만 읽어봐도 잘해봐야 중간정도 가는 선비, 못하면 쓰레기 취급받는게 이이입니다. 선조가 무능하고 멍청하다는 이미지가 그렇게 쉽사리 덧씌워진것처럼 학계에서 맘먹고 재평가해서 교과서 바뀌고 하면 또 쉽사리 새이미지가 덧씌워질 수도 있습니다.
13/03/26 14:18
하지만 사람들은 명군이 이순신등 의병보다 더 활약했다고 하면 무슨 매국적인 소리냐라며 진저리를 치죠.
교과서에 명군의 활약이 이순신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가 교과서에 실릴 일도 없을것이고 교괴서에 선조가 임진왜란시 명으로 도망을가고 이순신을 잡아서 문초했다는 기록이 빠지지않는이상 선조에대한 사람들의 폄하는 오랫동안 계속될거라고 봅니다. 조선후기 가장 추앙받는게 선조지만 현재 사람들은 그 조선후기를 그렇게 좋게 보고있지가 못하죠 선조가 무능하다 멍청하다라는게 그렇게 쉽게 덧씌워진게아니고 오랜시간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미지가 구축된겁니다. 단시간에 그 이미지가 바뀌는던 쉬운일은 아니죠 더더군다나 선조에는 이순신이라는 아킬레스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교과서를 수정하고 고친다고 해도 이순신을 핍박하고 잡아서 고문한 역사를 숨길수는 없으니까요
13/03/26 14:27
예 순두부님 말씀은 알겠습니다.
근데 말씀을 계속 선조 대 이순신의 구도로 잡고 계신데, 그 구도만 탈피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라는 거지요. 그리고 시간의 문제는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선후기를 올바로 재조명하려면 그 시작점이 선조이니까요. 결국 선조를 부정적인 인물(제가 그렇다고 무한정의 긍정을 하는 건 아닙니다.)로 덧씌워버리면 조선후기를 시작하는 첫단추를 잘못 꿰매는거니까요.(요새야 임진왜란을 시대구분으로 두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하지만요.) 그리고 조선시대 통틀어서 좀 잘나가는 사람 잡아다 고문하고 공초받는 사실은 손으로 셀수도 없습니다. 계속 그 사실 하나에 집착해서 절대 바뀌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조금.. 고루해보이네요. 계속 약간 핀트가 어긋난다는 느낌은 받지만, 이만하겠습니다.
13/03/26 14:46
잘나가는 사람정도가 아니라 그 고문대상이 이순신이니까요...
최고다 이순신 드라마 논란에서도 볼수있듯이 이순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은 상상이상이고 이순신은 그만큼 우리에겐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위인중 하나죠. 라이트한 역사지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겐 이순신을 잡아서 고문하고 핍박했다 하나만으로 선조에 대해 나쁜감정을 가질수밖에 없는겁니다. 거기서 좀더 공부를 한다면 이순신을 견제하고자 원균을 띄워준 선조의 무능을 알게되고 명으로 도망가려고 한 선조의 추태아닌 추태가 기억속에 남겠죠. 학계에서의 재평가는 좀더 쉽게 이루어질수있을지 모르나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는데는 시간이 상당히 걸릴거라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순신은 다른 위인과는 달리 특별하니까요
13/03/26 13:23
애초에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할 생각만 안했어도...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뻘소리지만 성질급한 오다 노부나가가 조선침략을 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됬을까요?
13/03/26 14:30
오다 노부나가였다면 일본 통일 후에 병력이 많이 남는다고 고민할 이유도 없고(성격상 히데요시보다 훨씬 피를 많이 흘리는 통일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가신단 부족으로 골몰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 외부로의 원정이란 측면에서 볼때 히데요시인지 노부나가인지는 별반 중요하지 않아요.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라.
13/03/26 16:57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인정안 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지만, 여러모로 실책을 많이 저지른 것도 부정하기 어렵죠.(특히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신하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지만, 선조가 신하들을 다루던 모습은 후대 숙종때의 환국정치나, 선대의 사화와 유사한 형태로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정여립의 난을 이용(정여립의 난 자체가 정철과 서인+선조가 합작한 작품이었다는 설이 있고), 기축옥사로 이어져 엄청난 수의 유림을 갈아버렸는데(상당수의 무고한 사람까지 포함해서) 이런 선조의 왕권 강화 방식이 결국 임진왜란중 명망높은 의병장들의 숙청(이산겸 이라든가)및 이순신 옥사로 이어지죠.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3.3혁명을 능가하는 기적의 역전극을 보여주지 못했더라면 아마 왕조가 끝나버렸을겁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분조를 이끌고 국난을 극복하는데 일조한 광해군의 뒷통수를 치는 행보로 이후 광해군이 폭주하게된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고요.(본인도 서자 출신이었고, 그래서 왕권 강화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의 서자라는 약점을 자극한 이유가 당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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