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3/01/18 11:40
저는 아직 전역한지 별로 안되어서 그립지는 않지만 중요한건 소중한 추억을 하나 얻었다는 것이라고 말씀드릴수는 있겠습니다.
GOP에서 그 전등은 아직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KCTC라는 훈련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돈으로도 바꿀수는 없는 추억입니다. 비오는날의 전투,추운겨울날의 전방경계근무 물론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너무 멋진경험이였습니다. 아 물론 다시 돌아가기는 싫습니다
13/01/18 11:42
KCTC는 육군 과학화 전투 훈련 인걸로 알고 있는데 그거 정말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육군훈련소 분대장 다음으로 힘든걸로 알고 있는데...
13/01/18 11:43
실제 모의 전쟁이죠. 저는 장마철이랑 합쳐서 빗물을 먹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할까요? FEBA에서 KCTC 유격 혹한기 -> GOP라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라인업입니다 흐흐흐
13/01/18 11:45
저의 25사단은 GOP가 3개 대대가 돌아서 갑니다 그래서 GOP와 FEBA라 구분짓고 FEBA는 일반군부대랑비슷한대 GOP를 올라가는대기조입니다
13/01/18 17:09
저도 25사단 출신입니다~~ 반갑네요. 72연대였고 두포리 FEBA에서 GOP올라 갔는데 말년에 2교대...였지만 야식을 많이 먹었던건 나름의 추억입니다 크크
13/01/18 17:15
하하 자대 들어가자마자 KCTC 준비한다고 2,3달동안 아침부터 군장 구보하고 매달 중대 전술뛰고 병기본 했었죠. 홍천가서 사전검토할때 걷다가 다쳐서 치중대로 빠졌고 너무 힘들어서 이게 군대인가 싶어 넋을 놓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지나니 정말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진짜 전쟁같은 훈련을 할 기회 정말 흔치 않으니까요.
13/01/19 11:31
실제로 준비기간이 정말 힘들고 가보니깐 더 힘들더라고요? 이건 원래 준비가 더힘들다고하는데 이훈련은 큭 훈련도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였습니다
13/01/18 11:43
근데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아직도 경리병과도 교육하는지 모르겠네요. 첨에 행정학교 가서 헌병교육생들한테 담배 얻어피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먼저 왔다고 선배대접해주고 했는데 전 99군번입니다만...
13/01/18 11:44
제대한 남자는 누구나 다 그럴껄요?
저도 제대한지 10년도 훌쩍 넘어버린 20세기 군번이지만 제가 상무대 육군보병학교에서 근무했는데 지금도 시간있으면 전남 해보리?였나.. 제가 훈련하던 사격장에 가보고 싶네요..
13/01/18 11:50
헤에....저도 논산훈련소 일반병으로가서 헌병특기병 받았는데, 저랑 같네요.
저같은 경우는 자대간 다음에 헌병하기 싫어서 휴가 많이 준다는 꼬드김에 고정 취사지원 형태로 취사병했지만요......
13/01/18 12:17
08년 9월 22일 군번이면 913기 정도였던가요?
봉사중대 출신이신가요? 제가 909기 명예였는데... 맞후임으로 9월 초군번 9월 말군번 받고 10월 초군번까지 받아서 한번에 셋 가르치느라 죽을뻔했던 기억이 나네요.
13/01/18 12:32
저 봉사중대 맞습니다만 914기 입니다.
913기는 솔선입니다. 참고로 절 많이 혼냈던 해병대 선임이 님과 동기네요 909기...
13/01/18 12:47
아 914기셨군요.
저도 저희 생활관에서 저랑 제일 친하던 후임이랑 광개토대왕님이 동기가 되시네요 ^^ 909기 해병대 선임에 성격이 더러운 녀석이라면 왠지 알것도 같네요. 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종행교에서 저희 생활관이 해병대 애들이랑 친해서 자주봤었거든요. 해병헌병 909기 애들 성격 무지 더러웠는데... 고생하셨네요 ㅠㅠ 저는 부산 해운대 53사단에서 근무를 해서...
13/01/18 12:50
흐 군대에서 헬키타고 생명수당금 144000원 받았을때가 행복했어요
3개월에 1번씩 나오는 크크.. 건물레펠한거랑.. 5분대기조때 신발만 벗고 잤을때도.. 2007년이었나.. 육군 신전차 나왔을때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무슨 행사 있었는데 그때 산전체를 매복해서 경호했을때와... 하추억이 많네요
13/01/19 01:47
헬기 정말 재밌죠 크크크..
항상 레펠 훈련장 건물레펠 있는 곳에서 떴다가 바로 레펠 했었는데 한번은 제대로 한다고 다른 지역으로 20분을 헬기타고 날아간다음 레펠한건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13/01/18 13:08
제대 12년만에 거의 아버지뻘 고참을 동네에서 만났어요. 제 나이가 두 살 많기도 하고 군기가 그리 쎈 곳도 아니어서 만나자마자 말을 놨는데 쬐끔 당황스러워 하더라구요.^^ 안 그래도 군대 시절이 가끔 그리워지곤 했는데 어젠 더 많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세상 좁은게 명함을 교환하다보니 같은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었네요. 군대 선•후임병, 입사 선후배, 나이, 직급이 복잡하게 엮여있지만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3/01/18 13:34
저는 전경이었는데 어느날 세콤 사격연습하는것 보조하는걸 시키더라고요. 총쏘는거 옆에서 가르쳐주고 총검사해주고 총알지급하고 그런것이요. 여자사원 K2총쓰는것 가르쳐준게 기억납니다. 근데 우리는 총쏘는것 그냥 1년에 2번 사격장에서 연습하는것이고 검열준비한다고 매일 봉이랑 방패들고 연습해서요. 다행히 총쓰는것 안꺼먹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속으로는 어떡게 총알넣고 쏘는거였지 기억이 잘안나서 긴장빨았습니다.
13/01/18 13:47
정동진 해돋이가 너무 지겨워서 평생 보러갈일 없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꼭 한번 가볼것같네요
정동진 썬크루즈 밑 해수욕장에 가서 제가 항상 아침해를 보았던 초소도 한번 봐주고 크크... 상당히 위에 있는 초소라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는데 한달차이 후임이랑 너무 추워서 탐조등을 켜놓고 따뜻하게 한다음에 껴안고있었던 기억도 있고 추억하면 재밌었긴 하네요.. 다시 가긴 싫지만
13/01/18 15:20
핸폰으로 보다가 로긴합니다 -_-;;
저와 정말 비슷한 향수를 가지셨네요. 전 꽤나 오래된 군번임에도 아쉬운 갈증은 여전하더군요. 저는 광개토태왕님보다 더 군생활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보직 1111이었지만 사단훈련소에서 차출되어 6사단 사단본부 기수단으로 들어갔지요. 그전까진 어디가서 키 작다는 소리는 못들어봤는데 내무반에선 평균이하 취급이었습니다. ;; 그리고 행사만 뛸줄 알았던 기수단이 알고보니 사단본부 내 근무와 작업을 다 도맡아 하더라고요. 딴에는 옆 내무반으로간 동기보다 컴퓨터도 훨씬 잘 다루고 나름 가방끈도 길다 생각했는데 거기선 그냥 굴러야 했고 동기보다 뛰어난 요소는 내무반 내에선 오히려 갈굼의 씨앗만 됐죠; 그러다보니 광개토태왕님 말씀처럼 참 암기할게 많죠. 물론 육본 정문근무보다야 적겠지만 위축된 상태에서 암기하려니 참 고역이었죠. 그래도 어느순간 주요차번이 외워지니까 그때부터 차량 들어오면 무조건 제가 잡았는데 이게 또......;; 본부내에 진입하려는 차를 세워서 1.차번 2.차종 3.차색 4.선탑자 계급 5. 선탑자 성명 6.행선지를 듣자마자 암기해서 위병소에 전달해줘야 하는데 바쁜시간에는 줄서서 들어오기 때문에 5대만 밀려있어도 30개의 단어를 암기해야 해서 참 힘들었습니다. 한가한 시간에는 각잡고 서있으면 되느냐... 그건 또 아니고 행사 나가기위한 자세훈련을 해야 했죠. 가장 고역인건 국기를 계양하러 갈때와 하강하러 갈때입니다. 정문앞 위병소에 있는 국기함을 플레밍의 왼손, 오른손법칙을 응용한 손에 살포시 얹어놓고 국기계양대까지 각맞추어 걸어가야했고, 애국가에 맞춰서 국기를 걸거나 내려야 하는데 딱딱 끊어서 밧줄을 잡되, 절대 시간이 남아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되었죠. 그래서 국기계양대 밑에서 참 많이 맞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 역시 행사 파견되는 사진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행사준비 후 거울을 보면서도 도무지 멋있다는 생각보단 제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만 많았습니다. 그밖에도 행사나갈땐 '각' 때문이라도 옷을 최소화로 입고 나가야해서 겨울에도 내의를 입지 못하고 연병장에 하루종일 서있는 현실이 저에겐 그저 악몽이었기 때문이죠. 지금 생각하면 부질없는 짓이긴한데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지금처럼 틈나는대로 운동하면서 위협감을 안겨줬지 싶은데... 그래서 조금 아쉽긴하네요. 이상 민방위 x년차가 지나가다 글 남깁니다. ^^> 필승~
13/01/18 15:38
어느날새벽 특기병자리가있다면서 동네친구가 전화해서 주민번호를알려주고 전 동반입대ㅡ.ㅡ로 27사 이기자부대로 끌려갔었죠..
메이커feba땅개로 훈련이 총 29회ㅡ.ㅡ 부대밖에서 잠잔게 300일가까이는되는거같네요.. ㅡ.ㅡ 중대전술훈련 중대전술평가 대대전술훈련 대대전술평가 연대전술 rct 호국훈련 마일즈 kctc 유격 혹한기 춘추진지공사 군단탄약고경계근무파견(asp aop?..)동원훈련 중대전투사격등등 뭐빠뜨린훈련이있는거같지만..패스..한달에적어도 오일에서 이십일가량의훈련..뻑하면사격에 매복에 정찰에 대민지원 작업 취사지원 탄약고 위병소 불침번 근무에 그와중에 깨알같이 주특기교육부터 각개전투 지뢰 철조망 삽탄 연습에 분대장교육에 아침저녁체력단련에 태권도단증에 정신교육 온갖 병과교육까지..ㅡ ㅡ그와중에 휴가 70일 외출외박10일에 시간은 진짜 잘간거같네요... 걷기도엄청걷고 하라는대로하면되니 맘도편하고..다시가긴싫지만요..그립진않지만 맘은편했던거같아요 거기아니고서야 언제 별똥별이 우수수떨어지는걸 허구헌날 봤을것이며 영하삽십도에 텐트치고자보겠나요...써놓고보니 안갈수있으면 안가는게좋은거같네요
13/01/18 17:06
저는 인천서 배타고 약 4시간 걸리는 백령도에서 근무한 해병입니다.
그리고 보니 글쓴 분 괴롭힌 선임과 같군요... 저는 전역한지 13년차지만 아직도 그 때 꿈 꿉니다. 저도 언젠가 아들들 손잡고 그 곳에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13/01/18 17:13
전역한지 2년밖에 안된 09년 4월군번이지만, 진짜 가끔 그립습니다. 특히 말년을 보내던게 겨울이어서 그런지 요즘들어 더 생각나네요.
13/01/18 17:19
딱 이맘때의 혹한기 훈련 때 반합에 밥이랑 오삼불고기 김치 넣고 흔들어서
맛다시 풀고 김가루 뿌려서 비벼먹으면 거의 죽음의 맛이었는데말이죠. 가끔 생각나네요.
13/01/18 17:57
아주 가끔은 철원의 동송읍내가 그리워질때가 있긴 하더라구요.. 그리고 군생활의 거의 전부를 보낸 독서당리의 풍경이나 말년에 있던 고요했던 GOP의 풍경 까지도.. 아주 가끔 생각이 나곤합니다..
13/01/18 18:13
동송읍 이평리 8사단 75챠리 출신입니다. 군생활이 가끔 생각날때가 있긴한데, 훈련때도 그립고 가끔 GOP 수색지원,매복지원 나가던 때가 생각나네요.
13/01/18 18:19
마지막 예비군 훈련중 예비군 대대장이 자네는 어디부대 나왔나? 해서 66사단 나왔는데요. 이랬더니 아 거기 없어졌는데.. 하더라는;;
예비군 중대장도 여긴 어디 부대에요? 이러시고;; 다들 신기하게 저의 부대 마크를 쳐다보았죠. 66사단;; 일명 건담방패 부대.. 없어졌다고 하니 괜히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13/01/18 18:47
전역하고 사회에선 힘드니 점점 그떄가 생각나는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단체 생활로 재미있는 추억도 많았고 평생 겪어보지 못할 다양한 일들을 해봤고 좀 아련하긴 하죠. 군대 있을때 고참이 한 말이 아직 기억나요. 전역하고 사회나가면 진짜 좋겠다고 하니까 꼭 그렇지도 않다고,자긴 그냥 무덤덤하게 군생활 한다고,이유를 물으니 '군대선 D-XXX일이라는 절대적인 목표가 있고 그저 시간만 때우면 되고 일도 짬먹으면 점점 편해진다. 하지만 사회는 D-XXX라는게 없고 모든걸 혼자 정하고 책임져야하며 짬 먹어봐야 편해지지도 않는다고' 그게 참 와닿았었죠. 전역한 고참들한테 전화하면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상병만 넘으면 군대가 훨 편하다고. 이젠 그 이유를 알것 같아요.
13/01/18 22:07
제 모든걸 주고라도 저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그립다기 보다는 그 시절 스무살때로 돌아가고 싶은것 같습니다 이젠 민방위도 끝나가서 그런가 하아~ 94군번 나와주세요~~ 안계시나요???? 육해공해경 출신 다 하면 피지알에도 같은 군번 몇분은 계시지 싶은데......
13/01/19 02:00
전 이제 겨우 3년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군생활이 그립네요 (말뚝을 박았어야.....)
제가 있던 부대는 후방 기동 중대였습니다. (전방의 수색부대 같은) 연대 소속이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독립중대라 참 다이나믹한 군생활을 했었죠. 다행이 구타나 가혹행위는 제가 오기 바로전에 새로부임한 중대장이 주작사건까지 만들면서(사건을 만들고 당시 유명한 갈구는분들?을 영창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비록 듣기만 했지만 덜덜했죠) 없애버린탓에 제가 약간 개념이 없었던 이등병때에도 거의 갈굼을 받지 않았드랬죠 크크크 독립중대이다보니 중대장과 행보관이 슈퍼갑이라 오히려 중대장과 행보관을 제외한 간부들과 병사들이 한몸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물론 불리하면 언제 친하게 지냈냐는듯이 바로 갈구기는 했습니다만) 덕분에 평일에도 12시까지 티비연등하고, 주말에는 간부허락하에 병사들끼리 술도 먹었습니다.(당당히 가서 술먹겠습니다하고 먹었습니다. 아 다만, 중대장이 막사안에 없다면요. 영내관사에 있어도 경계근무자의 활약?으로 바로 상황 해제 할 수 있었거든요) 이러한 기억중 최고의 기억은 중대장이 휴가를 갔을 때였는데 그때 당시 부대내의 cctv가 탄약고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행정반내에도 없었죠. 덕분에 당시 당직사관이 미친척하고 모든근무자를 불러들여 밤10시부터 술차려놓고 고기 먹으면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근무자 없이 모두가 잠이 들었습니다. 정말 다이나믹하지 않습니까? 유격조교와 헬기레펠은 훌륭한 조미료 였구요. 요즘 너무 일상이 무료하고 반복적이라 더욱더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13/01/19 10:02
아니요 35사단이었어요 전북 향토사단입니다
사실 저는 저희부대만큼 막장인 곳을 못들어봐서 부심한번 부라고 싶었습니다. 이거말고도 훨씬 많거든요 암튼 부대전역하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식은 간부들이 기름(휘발유 경유 등유) 맘대로 쓰다가 걸려서 간부가 장교제외하고 부사관이 모두 바뀐거였는데요. 걸린 이유가 군병원에서 입원중이었던 병사하나가 다른 부대원들과 자기부대 얼마나 막장인지 토론이 벌어졌는데 그중에 한명이 기무사 병사였답니다... 결과는 뭐 위와같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