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냄새 피냄새 쇠냄새 화약냄새 나는 전쟁 얘기를 1년 내내 하니 지겹군요. -_-a 마침 부산 와서 자료도 없고 하니 좀 다른 거 올려보겠습니다.
논밭은 다 소작 주고 농사짓지 마소. 내 철릭 보내소. 안에나 입세. 또 봇논 모래 든 데에 가래질하여 소작 주고 생심도 종의 말 듣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헌 사철릭을 기새에게 주소. 기새 옷을 복경이에게 입혀 보내네… (중략).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군관 나신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임진왜란 때 사람이었다는군요. 농사는 절대 짓지 말라니, 당신 손에 물은 묻혀도 흙은 안 묻히겠다는 걸까요 @_@ 그의 아내 신창 맹씨는 이런 남편의 편지를 고이 간직해 왔고, 죽은 후 같이 묻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의 목관 내에서 미라, 복식과 함께 출토되었다고 하네요.
자네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십니까? 자네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자네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자네에게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자네를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 빨리 자네에게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 주소…
경북 안동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원이엄마 편지"입니다. 남편을 먼저 보낸 마음이 느껴지네요... 숙연해집니다.
이 달이 다 저물어 가는데 지금도 아기를 낳지 아니하니 틀림없이 출산일을 잘못 헤아렸는가 싶으이. 오늘 기별이 올까 내일 기별이 올까 기다리다가 불의에 언상이가 달려오니 내 놀란 마음을 자네가 어찌 다 알겠소… (중략). 종이에 싸서 보내는 약은 내가 가서 달여 쓸 것이니 내 아니 가서는 잡수시지 마소. 꿀과 참기름 반 종지씩 달여서 아기가 돈 후에 자시게 하소. 염소 중탕도 종이에 싼 약과 함께 보냈소… (중략). 산기가 시작하면 부디부디 즉시즉시 사람을 보내소.
곽재우의 조카 곽주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임신한 아내를 걱정해주고 있네요 @_@
늦게 든녀가 오거늘/ (당신의) 편지를 보고 기뻐하되/ 석대의 병이 또 났는가 싶으니/ 갔던 놈에게 물으니 하도 끔찍히 이르니/ 매우 놀라워하네/ (석대의 병이) 요사이는 어떻소?/ 한가지로 그러하면 / (날씨가) 덥거나 말거나/ 내가 가 볼 것이니/ 사람을 또 보내오/ 음식도 일절 못 먹는가? 자세히 기별하소/ 계집종은 원실에게 보내려고 하였더니/ 작은개는 보내려고 하되/ 희복이가 부디 (계집종을 이곳에) 두고 싶다고 하므로/ 란금이를 보내오/ 아이를 데려 올 때 하나는 도로 보내소/ 나는 잘 지내니 염려 마소/ 아무래도 자네가 (몸을) 많이 손상하였던 것이니/ 그렇게 편히 지내지 못하면/ 매우 (몸이) 상할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하여 병이 나지 않게 하소/ 한 가족이 (떨어져) 각각 있으니 민망하거니와/ 이 두어 달이 얼마나 지나며 벌써 그리 된 것을 어이할고?/ 걱정 말고 지내소/ 온 (물건) 것은 자세히 받내/ (당신에게) 간 것도 차려 받으소/ 너무 바빠 아무 데도 편지를 아니 하오/ 이만. 7월 8일에 명보
송준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죠. 아픈 자식 석대는 결국 천연두로 죽었다고 합니다. -_-a 에궁
부부끼리의 편지라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애뜻한 뭔가가 느껴지지 않나요? '-') 조선은 요렇게 남은 글들이 참 많고 계속 발굴되면서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게 참 좋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달달한 연애시절의 연애편지 보다 애틋한 정이 느껴지는 부부간의 편지가 더 가슴에 와닿더군요. 사랑으로 살지 않고 정으로 산다는 많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어찌 사람이 정 만으로 산단 말인가, 사랑하지 않고! 라고 외쳤는데, 살다보니 사랑만큼이나 정도 끈끈하고 또 따뜻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