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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11/16 02:51:27 |
Name |
네로울프 |
Subject |
[일반] 담배를 빼어무는 타이밍 |
담배를 빼어 물기엔 아직 빠르다.
마지막 카드가 왔다.
카드를 집는 손은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느리지도 않게.
이 순간에 다른 사람을 살피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마치 이미 패가 완성된 듯 허세를 부리는 것은 하수에게 맡겨두자.
자연스럽게...
그래 그냥 책장을 넘기듯이... 그렇게...
카드를 눈높이로 들고 미끄러지듯 마지막 카드를 쫀다.
상대편을 살피려면 차라리 이 순간이 적당하다.
카드를 보며 동시에 판에 둘러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슬쩍 살핀다.
그리고 카드를 마저 확인한다.
담배를 물려면 지금이다.
바로 옆에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태연하게
팔을 뻗어 담배를 가져와 뽑아든다.
'치익..'
라이터 돌이 나즈막한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해낸다.
예닐곱 번의 신호가 가고 전화는 기어이 메세지 함으로 넘어갔다.
"전화를 받지않아..."
무덤덤한 부재 멘트가 끝나기 전에 종료 버튼을 눌렀다.
메세지 함으로 넘어가는 신호까지 가면 기분이 끝없는 나락을 겪게 될 것이다.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다 보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익..'
바알간 불꽃을 허덕이는 폐의 바닥까지 들여마신다.
아무렇지 않게 지폐 몇 장을 바닥에 던진다.
블러핑...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한 명이 카드를 덮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 판에 끼어든 놈.
안절부절, 표정이 확확 들어나는 놈.
놈은 카드를 들었다 놓았다 부산을 떤다.
"에이, 그래도 여기서 죽긴 억울하지. 받고 하프.."
지폐 몇 장이 낙엽처럼 뿌려진다.
'걸렸다.'
나머지는 모두 카드를 덮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자나보다.'
곤한 새벽에도 어김없이 전화를 받던 그녀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보니 벨 소리를 못들은게지'
전화를 건지 한 시간이 지났다.
내일 아침이면 아무런 변명이든 괜찮은 거다.
앞에 놓은 지폐 뭉치를 만져본다.
처음 보다 많이 비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숨을 조금 깊게 들이 마신다.
"레이스.."
옆에 앉은 친구 녀석이 괜한 헛기침을 뱉어냇다.
"하프 받고...올인!"
시커멓게 벌린 아가리로 남은 지폐를 밀어넣는다.
'나 그만 할까?'
'그러고 싶어요?'
'아니 그러고 싶지 않지만... 네 마음을 모르겠어'
"콜!"
놈이 받았다.
"아원입니다. 에이스 원페어."
놈의 입꼬리가 빙긋이 올라갔다.
"졌네요. 드세요."
"이야아, 혼자 남아서 그냥 확인은 해야겠기에 받은 건데 제가 운이 좋네요 하하"
놈의 너스레에 살짝 썩은 미소를 지어주고 판에서 일어났다.
"그만 하시게요?"
"아 네. 오늘은 별로네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빼 물고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뒤이어 문 소리가 들리더니 친구 녀석이 곁에 와 선다.
"너 그러는 거 처음 본다. 오늘 밸런스가 완전 무너졌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의 하늘엔 커다란 오리온자리가 떠올라 있었다.
몇 안되는 아는 별자리다.
"뭐 안되는 날도 있는 거지. 나 간다."
성큼 가뭇한 별들 사이로 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주에도 판 있으니까 와라. 그 땐 한 번 제대로 쓸어보자고"
친구 녀석의 말 소리가 아스라히 멀어졌다.
난 이미 오리온의 삼태성을 밟아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건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후로 그녀에게선 아무런 응답도 오지 않았다.
담배를 빼어 무는데 적절한 타이밍 같은 건 애초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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