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매우 개인적인 주장이며, 제가 보컬리스트를 따지는 기준일 뿐입니다.


어제의 '나는 가수다'는 진한 감동을 남겨주는 반면에, 여러가지 논란거리도 만들었습니다. 가령, 간만에 나오신 '왕의 귀환' 임재범씨의 음정, 박자, 호흡 논란이라거나, 김연우씨의 키 낮추는 것, 김범수씨의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 등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해바라기씨가 던져진 격이지요. 햄스터마냥 갈작갈작갈작 재미나게 그 해바라기씨를 갉아먹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조금 큰 범위에서 한 마디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음악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고 싶어하는 취미니까요.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좀 유명한 보컬트레이너분과 한시간쯤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입 습관은 잘했다 잘했다 하고 칭찬하는 것인데요, 그 분께 좋은 보컬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고 물었더니 재미있는 답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악기란 뭘까요? 라고 묻는 그 분의 말에 아! 하고 뒤통수를 맞은 격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가수'와 '보컬리스트'는 좀 다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U-kiss의 동호군은 분명히 '가수'입니다. 그러나 그를 '보컬리스트'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아요. 가수는 그 사람 하나의 매력을 승부하는 사람이라면, 보컬리스트는 그 어떤것보다도 '악기'가 되는, 소리로써 경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훌륭한 보컬리스트라고 해서 꼭 '가수'로서 인정받는게 아닌 것 처럼, '가수'가 꼭 보컬리스트가 아닌것도 비슷하게 통하겠지요. 최근에는 가수는 훌륭한 보컬리스트여야만 한다 라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프로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 이면에는, 너무 악기로서의 성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다른 매력으로 가수생활을 하며 이 판의 중심에 오래 섰기때문에 대중이 질려왔다고도 생각하지만요.



좋은 보컬리스트의 기준을 저는 3가지를 둡니다. 하나는 1. 음색이구요, 둘째는  2. 음정과 박자를 조절하는 능력이구요, 셋째는 3. 이것들을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 할 수 있는 자유로움입니다.



기타는 싸게는 3만원부터, 비싸게는 수천만원짜리 혹은 그 이상의 값을 갖는 물건이 있습니다. 좋은 엠프, 좋은 케이블, 좋은 나무로 만든 기타의소리는 분명히 같은 악기, 6개의 현으로 연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색에 확연한 차이를 가집니다. 그래서 좋은 음색을 가진 악기는 더욱 비싸기 마련이죠. 반면에, 그걸 연주하는 사람이 코드도 잡을 줄 모르는 초보라면 그 악기는 별 볼일 없어집니다. 5억짜리 건반을 가져다 주어도 기본코드를 못 치는 사람이 반주를 해 봐야 의미가 없는 것처럼요. 반면에 그러한 '연주자'로서의 기술을 가진 사람은, 그 기술의 능숙도에 따라 악기를 때로는 수백배 이상의 가치로 보이게 해줍니다. 아마도 보컬리스트에게 있어서 타고난 '음색', 즉 목소리는 가격이 딸린 악기일테고,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그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겠지요.



어제의 무대를 빌리자면, 임재범씨의 목소리는 굉장한 호소력을 지닙니다. 흔히 가수는 자신만의 색이 있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임재범씨는 그러한 '색'에 있어서는 캐릭터를 포함하여 발군의 보컬리스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연세도 연세시고 최근에 '진화'했다고 할 정도로 발전해 온 대중음악의 발성테크닉등으로 생각하면 그것을 연주하는 능력은 어제 일곱중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그는 오랜 공연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어떻게 전달해야하는지, 상황에 맞게 자유로이 표현할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1,3번의 조건은 만족하는 보컬리스트인 것이죠.



가장 이상적인 보컬리스트는 1,2,3번을 다 가진 보컬리스트일겁니다. 하지만 이도 여전히 문제는 있습니다. 음정 박자를 잘 맞추고 올바르고 건강한 발성만으로는 전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때로는 존재합니다. 가사, 멜로디, 공연장의 분위기 등에 맞추어 보컬리스트는 자신이 악기로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아야만합니다. 그 때에 비로소 보컬리스트는 '가수'와 겸업을 하는 것입니다. 음색이 좋지만 건강한 발성만에 매달려 자신의 표현력을 한정짓는 가수도 많고, 표현만을 위해 목을 혹사해 점점 가창력을 잃는 가수도 있습니다.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필만을 따라가다가 시대가 변하는 순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는 별들도 많지요. 결국 보컬리스트는 1,2,3번중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취사선택하고, 상황에 맞추어 그 관중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야만 합니다. 그때에만 보컬리스트는 보컬리스트로서 '가치'를 갖게 됩니다.



대중의 마음에 무언가를 남기지 못하는 보컬리스트가 어째서 가치를 지닐 수 없는가. 우리는 사실 가정용 컴퓨터 하나로도 음정 박자가 정확한, 샾과 플랫이 없고 키의 조절도 필요없으며 호흡따위를 신경써도 되지 않는- 심지어 음색마저 자유자재로 입힐 수 있는 시대를 살고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죽어라 만들어내는 조절능력만으로는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수많은 보컬리스트들은 그 자신의 실력을, 목을 보호하는 법을, 음을 내는 법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만 가지고는 남지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래서 임재범의 무대는 매우 훌륭했다고 평가하는 편입니다. 비록 그가 연주자로서의 '기술'이 부족했다고 할 지라도, 음악과 음학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가진 음색이 매력적인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음정이 나가도, 박자가 밀리거나 당겨도 '매력'으로 보이게 한다는건 정말 축복받은 것이겠지요. 그래서 음에 민감한 사람들은 어제의 임재범 무대를 혹평하게 됩니다. 당연히, 그의 무대에서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면 그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은 그 앞의 '기술적으로 훨씬 완벽했던 6인'을 넘어선 감동을 준 그의 무대에 이견이 없었습니다. 허구한날 믹스드 보이스니, 헤드보이스니 체스트 보이스니 파사지오 복식호흡 가성부 비강 뭐 이런 발성용어를 뒤지는 취미가 있는 저도 역시 이견이 없었습니다.


결론을 맺자면, 좋은 보컬리스트의 가치는 관중에게 무언가를 남겨야만 합니다. 좋은 음색, 뛰어난 연주력, 상황에 맞는 표현력 이 모두는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요소중 무엇이 뛰어나든 부족하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메세지에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이 마음에 남았다면, 그는 좋은 보컬리스트이자 좋은 가수라고 하고 싶습니다. 비록 두성이니 흉성이니 올바른 발성이니 그런게 부족하다고 할 지라도 말입니다. 최소한의 수준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만, 사실 대부분 심금을 울리는 것들은 그 정도 수준은 지켜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얄팍한 지식이 담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매주 좋은 무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