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는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고 싶어 하지만
나는 정말 그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미안할만큼.
아, 비가 잔뜩 온다.
엄마는 이런날 어떻게 빨래를 했더라.
주섬주섬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어본다.
세제를 툭툭 뿌리고 버튼을 꾹 누르면
아무도 없는 집 안에 사람 사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얘! 까만옷은 흰옷이랑 돌리면 안된다니까!!!"
"아 맞다!!"
귓가에 꽃히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재빨리 세탁기 뚜껑을 열고 중지 버튼을 마구 눌렀다. 털털거리는 세탁기가 멎어들어가 조용해 진 집에서, 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고개를 아무리 둘러보고, 방문을 열었다 닫고, 불을 껐다 켜 보아도, 어디에도 없다. 분명히 들었는데. 엄마, 나랑 숨바꼭질 하자는거 아니죠? 엄마 나이를 생각해요. 나도 나이가 있는데, 빨리 나와요 엄마. 나오라구요!
우우우웅
얼굴을 감싸쥐고 주저앉아 있었는데,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그 것에는 몇몇 사람들이 보낸 위로와 격려의 문자라든가, 부재중 전화등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모두 보기싫어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내어 버렸다. 나는 훨씬 잘 하고있다. 굳이 힘내라고 말하지 않아도, 무너지면 안된다고 격려받지 않아도, 나는 잘 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 난 충분히 힘도 내고있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위로하지 말아요. 그냥 숨바꼭질 중이에요. 난 술래일 뿐이에요.
다 젖어버린 옷들을 주섬주섬 꺼내어 대충 대야에 모아두니,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다시 학교에 간 동생들은 급식을 먹겠지. 나는 엄마가 남겨둔 몇가지 반찬을 꺼내어 홀로 밥을 먹었다. 한 공기를 다 먹어도 배가 고파서, 두 공기를 비워내었다. 너무 맛있었다. 다시 먹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집에서 밥좀 많이 먹을걸. 이렇게 맛있는데. 숨바꼭질 중에 반찬좀 만들어 달라고 할수는 없겠지.
해는 길게도 구름사이에 숨어있고, 나는 그저 말없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고, 쌀을 씻었다. 가끔 귓가에 들리는 엄마의 잔소리에 고개를 두리번 거리고는 했지만, 나는 다시 집을 돌아보지는 않았다. 알고 있다. 엄마는 없다. 나의 엄마는 이제 어디에고 없다. 나는 무너지면 안된다. 그러니까, 허리를 꼿꼿이 펴자. 달그락 달그락 쿵쾅쿵쾅 위이이잉. 한바탕 집안일을 끝내자 등허리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는 매일 이렇게 일했던 거구나.
아, 다시 비가 내린다.
이러면 빨래가 마르지 않을 텐데.
엄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건 가르쳐 주고 가면 좋았잖아요.
나 알아요. 그게 아쉬워서, 가는길에 계속 울고있는 거잖아요.
힘 내야하는데, 엄마가 계속 울면 해가 뜨질 않잖아요.
무너진 가슴이 다시 일어 설 수 있게
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알려줘요, 엄마.
나는 힘이 나지 않아요
힘내라는 말을 들어도.
이를 앙다물고 버티고 있어요.
무너지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조금 빠르게 이별한 것 뿐이에요.
그렇죠?
내가 이렇게 밥을 잘 먹고, 잠도 잘 자도
엄마, 화내지 않을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