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끼리의 경쟁은 시청자입장에서 반길 만한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그것 중계권을 따기위한 로비 경쟁이 아니라 더 좋은 컨텐츠를 만들기 위한 제작 경쟁이 되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SBS 월드컵 독점은 방송 컨텐츠의 질적인 면에서 말이 많은 거 같습니다. 피지알에서도 독점 자체를 반대하시는 분들보다는 방송 컨텐츠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더 치열한 로비경쟁이 펼쳐질 거 같습니다. 이미 SBS가 따낸 독점 중계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월드컵같은 큰 대회는 방송삼사가 목숨을 걸고 뛰어들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중계권료는 중계권료대로 퍼다주고 독점 중계에 따른 상대적으로 부실한 컨텐츠(독점에 성공하면 아무래도 더 좋은 컨텐츠 경쟁을 기대하기 어렵죠), 그리고 그 돈을 메꾸기 위한 돈은 결국은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게 됩니다. 또한가지 부작용은 큰대회에 돈이 많이 들수록 상대적으로 돈 안되는 작은 대회에 대한 방송사들의 관심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4년마다 애국자가 되길 강요하는 태도도 마음에 안듭니다. 결국 애국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자사 광고의 소비자가 필요한 거니까요. 진정성 없는 마케팅을 뻔히 알고도 봐줄 수 밖에 없는 것도 일종의 피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건 독점의 피해라기 보다는 마케팅의 피해죠. 차라리 축구 자체의 열정을 마케팅으로 내세우면 진정성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축구 싫어하는 사람마저도 애국심에 호소해서 무조건 응원에 뛰어들어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즉, 그동안 전혀 해당 스포츠분야(단적인 예로 K리그)에 관심도 없었던 방송사가 월드컵만 되면 애국심에 호소하며 열광적인 축구마니아가 되니깐 진정성이 안 느껴진다는 거죠.
서론이 길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이용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방송국끼리의 경쟁체제를 최대한 이용해 단물을 최대한 빨아먹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일단 중계권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수 있는 국내기구가 있어야겠죠. 이 기구가 하는 것은 점수 매기는 일입니다. 그동안 각 방송사가 해당 스포츠분야에 얼만큼 투자(실질적인 투자 및 방송제작, 중계에 대한 투자)했는지 점수를 매겨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입니다. 선정된 방송국은 해당 대회의 독점중계를 우선적으로 협상할 수 있으며 협상이 불발될 경우 차선자가 협상합니다.
월드컵의 경우 당연히 K리그 중계가 큰 점수로 들어가겠죠. 공중파에서 중계했느냐, 자사 케이블에서 중계했느냐에 따라 점수도 차등 적용됩니다. 그리고 실업리그, 고교리그, 대학리그, 여자축구등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리그 중계는 가산점을 줍니다. 그리고 해당 스포츠 꿈나무 장학금 지급 및 연습구장 건립 지원등 직접 투자도 좋은 점수를 줍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측면에서 해당 스포츠에 대한 방송국의 정성을 평가해서 독점 중계 우선 협상권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4년마다 찾아오는 축구매니아 방송국의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SBS 독점중계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컨텐츠는 역시 피겨였습니다. SBS는 꾸준히 피겨 그랑프리를 중계해왔고 배기완 아나운서와 방상아 해설의 호흡도 안정적이었습니다. 충분히 피겨관련 중계를 도맡아 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동계 올림픽 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등 빙상관련 중계를 꾸준히 해오던 방송사는 KBS였습니다. 즉, 올림픽 등 종합 스포츠 대회는 분야별로 나눠서 그 해당 스포츠에 가장 적합한 방송사를 중계방송사로 선택하여 중계권을 주는 것입니다.
MBC같은 경우에는 중계 여력을 야구에 가장 많이 투자합니다. 이번 시즌에는 자사 케이블을 두개나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서 퓨처스리그까지 중계하고 나섰습니다. 이런경우 WBC 독점중계 우선협상자로 MBC가 되더라도 별다른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이스픈의 야구 컨텐츠 제작 기술이야 모든 야구팬들이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이와같이 각 해당 스포츠에 대한 방송국의 기여도를 기반으로 독점중계권을 줄 수있는 기관을 만든다면 모두 윈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복중계에 따른 전파낭비도 없고 생뚱맞게 등장하는 해설자도, 잘 모르는 캐스터도 없을 것이며 그동안 꾸준히 투자하고 제작해 온 방송 컨텐츠이므로 방송국 입장에서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겠죠. 또한 스포츠계에도 비교적 비인기 분야와 관심을 덜 받는 리그에 대한 중계도 보장되고 큰대회때마다 진정성 없이 애국심만 부르짖는 행태가 아니라 해당 분야에 대한 방송국 스스로가 자부심과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입니다.
쓸데없이 경쟁체제의 단물을 중계권을 파는 외국 단체에 주지 말고 경쟁이라는 힘 국내 스포츠 발전과 방송 컨텐츠 발전에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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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가 코리아풀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점계약을 한 건 아니라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SBS가 단독으로 나가기 이전 최고액은 IB스포츠가 불렀다죠. 네, 공중파 방송국만 참여하는 무대가 아니라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는 무대가 중계권 협상이지요. 한 방송사 선정했다가 다른곳에 뺏기면 그때는 어떻게 해결하시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