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썼기 때문에 조회수 올리려고 제목을 저렇게 뽑았는데 우리나라 신문들도 열심히 썼는데 얼마나 독자들을 읽게 하고 싶으면 그따위 뽑을까 불쌍합니다. 제목이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관련글 코멘트화 하면 좋기도 한데 그러기에는 너무 기네요 ^^;;
방학을 일찍한 바람에 하는 일이 없어서 매일 새벽에 보수신문 하나 진보신문 하나 사서 5시간 정도 읽고 있습니다. 제대로 언론을 공부한 적은 없어서 아마추어적인 시각이지만, 학보사에서 일한 적도 있는지라 계속 관심 가지고 있고 생각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 들어가기 전에
일단 글을 시작하기 전에 피하고 싶은 논쟁이 있습니다. 조중동은 언론으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저지르는 잘못을 떠나서도 역사 앞에 정말 많은 죄를 지었고 그것을 반성할 줄 모르는 더 지독한 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용서를 해야한다는 입장이나 더이상 죄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죄를 이유로 안티조선운동을 펼칠 수는 있지만, 조중동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거의 똑같은 논리가 한나라당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있습니다. 양당 정치체제가 지금의 현실이고 앞으로 꽤 오랜 기간 바꿀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당위성 주장은 특별히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의 차이
부모님이 보시는 보수신문이 집에 쌓이면 어쩌다가 가끔 보다가 정치에 관심을 가질 나이가 되자 진보신문을 보기 시작하신 분이 많을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신문인데 이렇게 다른 소식을 전할 수 있는지 깜짝 놀랄 것입니다. 잉여력이 남아 보수신문과 진보신문을 하나씩 사서 보기 시작했을 때 정말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당장 오늘(6월 9일자) 신문만 놓고 보더라도 조중동은 스티브 잡스와 핸드폰 사진을 한겨레, 경향은 4대강 공사 현장 사진을 1면으로 넣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의 신문이라도 보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짓을 며칠 하다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뉴스거리가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신문을 내야하는데 그 두꺼운 신문을 채워줄 뉴스거리가 우리나라에 그닥 많지가 않습니다. 5단이냐 1단이냐, 당일이냐 다음날이냐, 비판적이냐 우호적이냐, 1면이냐 구석이냐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누락은 거의 없습니다.
조선일보 1면에 전해진 소식이 오늘 경향신문 스포츠 섹션과 여론 섹션 사이에 쳐박혀 있고 엊그제 경향신문 1면에 보도된 소식은 어제 조선일보 문화 섹션과 스포츠 섹션 사이에 비난 일조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쯤되면 사실상 원하는 것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연한 말입니다만, 이것은 어찌 보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걸 쓴 것은 쓴 사람 잘못이지만, 그걸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생각하는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구석에 있어서 못 봤다고 하면 못 본 사람 잘못이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이상의 지적 능력이 수반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 편집과 글쓰는 방법으로 편향된 기사에 대해서 필터링은 본인의 몫입니다. 간단히 말해, 문제는 뉴스거리의 취사선택과 편집방향이 아니라는 겁니다.
진짜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오히려 취사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어느 정도 뉴스거리가 되는 일들을 다 써봤자 두껍지도 않은 신문이 다 안 찬다는 겁니다.
언론의 꽃이자 핵심이자 사실상 진정한 기능은 탐사보도라는 것인데 TV에서 PD수첩 정도가 그것입니다. 신문에서 그 탐사보도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면 기획, 특집 따위의 꼭지가 달려서 나오는데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진보신문, 보수신문할 것 없이 탐사보도가 콘텐츠의 수준으로 전락했습니다. 시청률이 나와서 만들 수 밖에 없는 막장드라마와 같은 꼴이 된 셈입니다.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은 김정일 욕하는 기사를 보려고 한겨레를 보는 사람들은 이명박 욕하는 기사를 보려고 읽기 때문에 그런 취향에 맞춰서 탐사보도를 콘텐츠화시킵니다. 그 결과, 보수신문이나 진보신문이나 읽다보면 별 내용은 없습니다만, 내가 어느 편이냐에 따라 화가 치밀고 속이 시원하고 정도의 차이만 낳게 될 뿐입니다. 4대강 특집 기획을 하면 중앙일보는 4대강이 죽어가서 살려야 된다고 쓰고 경향신문은 4대강을 죽이고 있다고 쓰는데 양쪽 모두 정치적 논조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전하려는 태도를 취한다기 보다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여러분 말고 4대강을 죽으느니 살리느니 열을 올리는 분이 계신가요? 즉, 신문 펼쳐보면 아무리 정반대로 얘기를 해도 그 얘기가 그 얘기가 되버립니다.
보편적 상식에 비추어 MB정부에 찬성하는 것이 어렵다는 견해(?)가 있는 걸로 아는데, 조선일보가 최근에 한 촛불시위를 돌아보다인지 하는 거의 광우병소 먹은 정도로 정신 나간 기획을 보면 이것이 정말 한 언론이 탐사보도라는 명목으로 쓴 것인가 같은 한국어를 쓰는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런데 왠지 "어머어머 그럼 그렇지 시위하는 것들이 다 똑같지"라는 말을 조선일보가 하게 만든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서 조선일보가 그 기획을 쓴 것인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신문의 추세가 결과적으로 조중동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왜냐면 그런 식의 콘텐츠 경쟁에서 특히 조선일보와 경쟁할 수 있는 신문은 없습니다. 조선일보의 부록으로 딸려나오는 경제, 문화 섹션의 콘텐츠는 차별화된 수준입니다. 한겨레, 경향은 경제 문화에까지 논조의 영향이 따라오는데 조선일보의 부록은 사실상 논조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조선일보 말고 나머지 신문은 볼 게 없다"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신문은 잡지가 아니니 탐사보도의 책임을 좀 더 제대로 해내야 하는데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기사를 제공하는데 집중할 뿐인 보수신문과 진보신문 모두의 고질적인 문제가 오른쪽으로 곪았냐 왼쪽으로 곪았냐의 차이가 있는 정도입니다.
#. 정치 섹션에 대해
이러다 보니 탐사보도에서 마치 서로 입맛에만 맞는 뉴스만 전달하는 편향된 언론이라는 시각을 만들어서 "우리 다 똑같은 놈"이라는 나쁜 놈한테 유리한 시각이 조성되어 있고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되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탐사보도가 아니라 정치 섹션이 우리나라 신문의 꽃이 되어버렸는데 이부분에 대해서는 제 생각이 조중동을 옹호하는 꼴이 되어버리겠습니다. 조중동의 그 정도면 정치 섹션은 의외로 객관적입니다. 민주당과 북한 소식을 제대로 알려면 오히려 조중동을 봐야합니다. 왜냐면 한겨레, 경향은 MB 욕하느라 민주당과 북한 욕을 제대로 할 공간이 정치섹션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 평소의 조중동은 북한을 사랑합니다. 한겨레와 경향도 MB 없으면 어떻게 기사쓸까 싶습니다.
어떤 누락이나 편향, 왜곡된 글쓰기가 없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병자적인 히스테리는 민감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얘네 왜 이러냐 싶을 정도로 발휘됩니다. 이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조중동만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도저히 비판을 못 들을 수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 방어기작이 작동한 것인데 사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종류의 비판에 한겨레, 경향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결국 정치 섹션의 문제는 "특정한 사건이 발발했을 때,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로 환원되고 탐사보도의 문제점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대안에 대해
(애초에 한국 언론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미국 언론에서는 거의 아는바가 없습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일단 써봅니다.) 좌우란 언제나 상대적인 개념이니 유럽의 몇몇 언론과 비교하자면 미국의 언론은 모두 우경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미국의 언론끼리 비교하면 보수신문이냐 진보신문이냐의 차이가 확 드러나는데 월스트리트저널, USA 투데이, 워싱턴 포스트 등이 보수신문이며 뉴욕타임즈가 진보신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위 10개 정도의 신문을 놓고 보면 대부분 보수신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각 주마다 지역지가 존재합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너무 넓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위 10개 정도의 신문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중앙정치와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서 다루고 지역지는 중앙정부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지니며 지역뉴스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모양입니다. 또한, 신문과는 반대로 TV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Fox TV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채널이 중립적이거나 진보적이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줍니다.
미국의 언론이 상당히 발전되었고 우리나라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현재의 신문을 차별화시켜주는 논조의 기능을 컬럼니스트들에게 넘겨야 합니다. 기사에서는 해석하지 않으려면 해석할 여지를 주면 안됩니다. 또한, 견해는 담겨야 하나 뉴스가 아닌 주장을 전달하는 것을 피해합니다. 그렇지만 주장을 전달하고 색채를 띄는 것 또한 필요한데 미국 신문은 컬럼니스트들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 정도의 브랜드가 한겨레에 없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제가 딴지일보를 무척 싫어하는데 김어준 씨를 데려다가 비꼬는 식의 칼럼을 쓰는 것은 진보신문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타임즈가 폴 크루그먼과 토머스 프리드먼을 컬럼니스트로 쓰듯이 한겨레도 논조성을 버리고 이준구 교수나 홍세화 씨 정도 되는 인물에게 지속적으로 컬럼을 쓰게 해서 미국식 컬럼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은 좌우가 있지만, 그들의 식견과 글을 좌우가 없이 설득력 있기 때문입니다. 조중동도 여론면은 상당히 조악하기 때문에 이런 전략으로 나간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점은 1면에 더 많은 기사를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제목과 부제목의 현체제에서 기존의 제목의 해당하는 것을 없애고 현재 부제목 형태로 작게 문장 형식으로 제목을 뽑고 빽빽하게 더 많이 써야합니다. 신문들이 편향성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겨레랑 경향 구독해서 보세요. 많이 읽다보면 그네들은 달라지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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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신문을 찾아서 읽기 보다는..
어떻게 신문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먼저 알고 나서 신문을 찾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생각이나 행동, 말에도 무의식적으로 신문의 영향력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저는 요즘 손석춘님이 쓰신 <신문 읽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까 신문을 읽을 때 단순히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뛰어넘어야
진정한 신문 읽기가 가능해진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신문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죠.
활자는 존재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것을 읽고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참고로 MBC 파업의 원인이 된 일종의 특종(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특종)도 신동아에서 나왔죠. 한겨레가 이제 외울 정도로 뻔한 MB 정부의패턴에 대해서 욕하는 것을 탐사보도라고 생각하지 말고 권력 간의 유착을 파헤치는데 목숨을 걸 때가 왔습니다. 제 목숨 아니라고 함부로 걸라고 하는 것 같지만요 ;;
작년까지 2년 넘도록 매일경제 구독하다가 절독했습니다.
2,3면에 주로 게재되는 경제현상에 대한 전문적 해석을 제외하고는 온통 기업 홍보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여겨졌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읽었죠. 그 얼마 안되는 선호 컨텐츠만이라도 얻기 위해.
현실적으로 경제지의 전체적인 논조는 친기업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터 하던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 경제 일간지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관해서 인데요..
(혹시 해외에 진보 경제 일간지가 존재하나요? 해외 방면으로는 아는 것이 일천해서..)
예전 한겨레의 이코노미21처럼 한겨레에서 INSIGHT라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더군요.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경제시평>을 구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신문이 아닌지라.
예로 들면, 복지정책에 대한 구체적 실현 방안과 현실적 증세 방안이랄까.
수출에 의존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속에서 FTA없이 살아남는 법이랄까.
정말 진보가 보수의 대안이 되기 위해선 저런 논의와 대중 사이에서의 전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신문의 정치면이나 사설,칼럼등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네요.. 뭐 나름대로 꼼꼼하게 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10명 중에 한 두 명 정도가[사설이나 논술,칼럼]등을 챙겨보지 않나 싶네요.. 대부분 단편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신문을 보는게 아닌가
싶은데.. 인터넷의 발달로 신문의 구독률이 현저히 떨어져 가는데 아직까지도 신문이 사람을 세뇌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