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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6/09 01:42:20
Name elecviva
Subject [일반] 2005년 10월, 카트만두를 가다.
사진으로 보는 정말 정말 짧은 여행기입니다.
백업 미비로 자료가 90% 날아가서 남은 사진이 많지는 않지만 그때의 추억도 돌아볼 겸 해서 적어봤습니다.

#1

2005년 10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떠났다. 여행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가 형의 제안으로 떠난 발걸음이었다. DSLR과 SLR을 한대씩 어깨에 메고 온갖 필름을 구입해 떠난 여행이었다. 방콕에 도착해 10시간 가까운 대기시간을 지나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하루가 지나 릭샤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광장으로 향하며 쉽게 카메라를 꺼내 사람들을 찍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셔터를 누르기 까지 하루의 시간이 걸렸다. 낯선 이들의 시선, 그 시선의 의미를 알기 전까지 셔터를 누르는 것이 두려웠다. 사진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할 생각은 했었지만 스스로 겁을 먹어 셔터를 누르지 못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바라보고 교감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렸다. 뒤돌아 보면 나는 꽤 겁쟁이였다. 그들의 초상권을 지키지 않는 것, 그들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사진으로 자신을 뽐내는 사람이 되는 일 모두 경계해야 하는 일이었다. 허나 내 여행의 목표는 경계해야 하는 일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특별한 목적 없는 여행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릭샤에서 바라본 거리 풍경, Kathmandu 2005



우연히 눈이 마주친 노인, Kathmandu 2005



사원에서 만난 아이, Kathmandu 2005



#2

함께 여행한 형은 '쿠마리-네팔의 네아르족 풍습으로 초경 이전의 여자아이를 보호신으로 여기는 풍습-'를 촬영하는 것이었고 쿠마리가 아주 짧은 순간 등장하는 축제에 맞춰 온 여행이었다. 나는 카트만두에서 지내면서 일상적인 순간, 간간히 만나는 이들을 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큰 교감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찍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 여겼다. 곧 셔터를 누르는 일은 잦아졌고 촬영은 수월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촬영 스케쥴이 화장터로 옮겨진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3


화장터 풍경, Kathmandu 2005


사람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사람이 타는 모습을 보며 사진을 찍는 일은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먼 발치에 화장을 진행하는 가족에게는 매우 큰 실례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네팔의 화장터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이었기 때문에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찍되 결코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히 촬영하도록 노력했다. 허나 평상심을 찾는 일만은 쉽지는 않았다. 가까이에서 죽은 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 위로 불이 지나간다.
화장이 진행되는 시간에서 막연히 두려워하던 죽음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화장을 진행하는 와중에 공물을 훔쳐가려는 원숭이들은 고약하게도 화장을 진행하는 와중에 사람의 등을 발로 치며 도망가기도 했다. 화가 날만도 한데 그냥 한 사람의 역사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지는 현장에서 원숭이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일테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의 상류와 하류의 쓰임이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잘사는 이는 충분한 뗄감을 구입하여 화장을 하지만 돈이 없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신체 전부를 태울만한 뗄감을 살 수 없어 타다만 망자의 몸을 그대로 강에 흘려 보낸다. 죽음을 기르는 의식에도 계급과 자본의 헤게모니가 지배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화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 Kathmandu 2005



화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는 원숭이, Kathmandu 2005



#4

머무는 동안 가네샤 축제가 열렸다. 네팔은 그들의 모시는 신의 축제를 해마다 지낸다. 그리고 그러한 축제가 일년에 10개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네샤 축제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 축제를 준비하고 즐겼다. 괜찮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생각에 초조하던 때 침착하게 축제의 현장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 마을에서 가만히 축제를 바라보며 촬영의 기회를 노렸다. 기다림 가운데 한 네팔인이 다가와 한국인이냐 물었다. 한국인임을 밝히자 자신도 부산에서 대학교를 다녔다며 축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함께 즐기라고 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하는 가운데 유난히 어린 꼬마 아이가 보였다.


가네샤 축제에서 만난 아이, Kathmandu 2005


그리고 그 어린 아이에게 시선을 놓치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입은 옷의 허름함이 눈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커다란 눈망울이 축제를 바라보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이내 축제를 바라보던 아이가 슬슬 잠이 오는지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그 옆엔 아이와 대칭으로 잠드는 강아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라 생각했다. 이내 원하는 구도로 촬영하기 위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으며 이 사진 한장으로 네팔에 온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계정이라 추천수가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높은 추천수와 사진에 담긴 아이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축제의 풍경, Kathmandu 2005



#5

축제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지금은 많은 기억이 지워졌지만 당일 소를 잡아 목을 내리치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어찌보면 야만적인 행위일 수 있으나 모인 이들이 그 의식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생각을 이내 지웠다. 망자가 불에 타는 모습도 보았는데 소 한마리 내리치는 게 대수일까 싶었으나 결코 칼로 내리치는 그 순간을 담지는 못했다. 같은 시간, 함께 여행을 온 형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름 한 롤을 고스란히 연사에 쓴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의식이 끝난 뒤 사원 안은 온통 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의 색깔이라는 것이 그토록 빨간 것인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의식이 끝난 뒤, Kathmandu 2005


의식이 끝난 후에 홀로 사원을 나와 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한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장난감이 잔뜩 걸린 거치대를 메고 있었고 별다른 움직임 없이 사원 앞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노인에게 다가가 당신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을 했고 노인은 제의를 수락했다. 기념사진처럼 그의 얼굴을 한장 담고 끝낼 생각이 아니었는데 그걸 표현할 수 없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고 다소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망원렌즈를 통해 그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찍고 싶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인의 얼굴에는 힘없는 표정과 흐릿한 웃음이 반복되어 나타났다. 놓치지 않고 오랜시간 촬영 한 후에 카트만두의 광장에서 사진촬영의 댓가로 1달러를 요구하던 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에게 지폐 몇 장을 쥐어주려 했다. 처음부터 그는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았고 장난감을 팔아야 하는 이에게 내가 찍는 사진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주려한 돈이었지만 왜 자신이 그 돈을 받아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감사해서 드리는 의미임을 비추기 위해 고개를 깊게 숙이며 환히 웃었다. 작은 목소리와 좁은 표정의 노인에게서 타인의 과거를 소설처럼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서글퍼 보이는 그의 눈을 떠올리며 미묘한 감정들이 가지를 뻗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보람과 의미를 네팔에서 조금씩 찾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사원 앞에서 만난 노인, Kathmandu 2005



촬영이 모두 끝나고 숙소로 향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으나 그 흔한 택시도 축제의 사람들 때문인지 잡히질 않아 꽤 긴시간을 걷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촬영, 한국에 있는 이별한 연인,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아무 말 없이 몇 시간을 아주 까만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긴 길을 걸었다.


Patan에서의 밤, Kathmandu 2005


그리고 그 날 밤 헤어진 연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고 용서를 구하고 눈물을 흘렸고, 긴 밤 피로에도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사진을 찍는 행위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까만밤 깊게 고민하며 밤을 지새웠다. 네팔에 온 것은 단순히 회피와 스스로를 위한 위로의 여정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삶' 그 자체가 강렬하게 묻어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사진과 사라진 기억과 귀찮음으로 인한 짧은 여행기에는 담지 못한 기억과 추억들은 여전히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순식간에 지나간 네팔에서의 촬영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귀국했고 사진이 저장된 하드를 친형이 포맷해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몇 장 남지 않은 사진들이지만 그때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들과 20여장 가까이 남은 디지털 파일들을 들춰보면 네팔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삶을 기억해보게 된다.

너무나 부족한 것을 알지만 조금이나마 공유하고픈 마음에 처음으로 여행기라는 것을 써보며 마무리합니다.
원래 컬러로 보정했던 사진들인데 흑백으로 다시 손을 보고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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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크로우
10/06/09 01:52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2007년 저도 카트만두 다녀와서 그런지 elecviva의 글에서 네팔의 향기를 느낄수 있어 좋네요.
10/06/09 01:52
수정 아이콘
좋은 사진 잘봤습니다. 새벽 2시. 마법의 시간이라 그런지 마지막에서 두번째있는 사진이 유난히 마음을 적시네요.
좋은 밤 보내시기를...^^
10/06/09 01:55
수정 아이콘
아니 세상에!
팍팍하게 밥벌이만 하며 사는 저로서는 너무 부럽군요..
멋집니다... 혹시 프로이신가요?(아니라면 부러움X100)
10/06/09 01:57
수정 아이콘
좋은사진 더불어 코멘트까지 잘 읽고갑니다.
네이버 카툰 낢과 더불어 네팔에 가고싶게 만드네요.
블랙독
10/06/09 02:00
수정 아이콘
화장을 바라보는 원숭이에서;;; 조금 웃었어요 ^^
10/06/09 02:02
수정 아이콘
멋지다..
적울린 네마리
10/06/09 02:06
수정 아이콘
역시.. 카메라 이야기의 후속은 ~
그저 감사할 뿐....
글과 더해지니 너무 새롭게 다가오네요.
MoreThanAir
10/06/09 02:37
수정 아이콘
와우- 전에 인상적으로 봤던 사진들도 있는데 지금 봐도 역시 좋군요-

흑백톤 처리가 참 좋습니다.

90% 사라지고 남은 10%가 이정도라면 나머지 90%는 어쨌다는 말인가요...덜덜 ㅠ.ㅠ
10/06/09 06:17
수정 아이콘
제가 흑백사진에 관심이 많은데..
이건 필름카메라를 스캔하신건가요?? 아니면 디카에 있는 흑백사진인건가요..??
아훔 사진이 너무 멋지셔서 궁금합니다 ㅠㅠ
ringring
10/06/09 09:38
수정 아이콘
순간의 기억을 담아내는 사진이란 장르를 정말 잘 표현하시는 분이신것 같습니다^^
마음의 감정을 담는 최고의 테크닉까지..

정말 멋진 사진들이네요^^
10/06/09 12:47
수정 아이콘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exif 정보는 일부러 지우셨나봐요...궁금한데 말이죠...
간간히 멋진 사진 올려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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