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시절이 나를 생각해보면 지금처럼 조급하지 않았다.
세상은 두렵고 무섭기도 하였지만 즐겁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차있던 세계였다. 조급하다기 보다는 세상을 보고 그시간에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그시간, 그것에 충실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무언가 조급하다. 혼자 집에서 있을때면, tv를 틀거나 인터넷을 '반드시' 틀어놓는다. 적막함을 버틸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내가 즐기고자 하는바가 아닌 틀수밖에 없는, 자의가 결여된 상태의 행위이다.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 적막함의 순간을 견뎌낼 수 없는 것이다.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무엇인가 끊임없이 자극되지 않는다면 불안한 상태가 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것, 난 여유를 잃어버렸다. 대체 난 무엇에 쫓기고 있는가?
종종 이태원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나는 외국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데 그들과의 만남은 대부분즐겁다.
뭐랄까? 한국사람들과는 달리 여유가있고 즐긴다는 느낌이랄까? 그들의 신체에 습속되어 있는 여유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만들어준다.
그런 여유가 없다. 여유는 커녕 한국사람은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 한국인은 도대체 무엇에 쫓기는가?
나의 개인적인 측면에서 해답을 내려보기로 했다. 내가 하루하루를 여유있게 살아가지 못하는 근시안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나를 급하게 만드는 것은 결혼이다. 사랑에서의 완성으로 보아지는 결혼이 내게는 넘어야될 벽과 같이 느껴진다.
단순히 외국과 같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간소한 결혼식과 작은집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면, 난아마도 이리 조급한 마음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결혼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되어진다.
일단 제일 나를 부담스럽게하는 것은 전세자금이다. 최소 8000만원 가량을 모아야하는 전세자금은 내나이가 31살이라는 것과 학생이라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아주 먼시점에나 모을수 있다. 이러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억대연봉자가 되거나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의 완성이 아닌 경제적인 요소로 치환되는 현실이 개탄스럽지만,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 사회의 룰에 따를때나 가능한 일이다
왜 남자는 전세자금을 모아야 하는가? 흔히 이런 문제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대한 원망이나 또나 군대까지 끌어들여 성의 역차별을 언급한다. 왜 한국은 남자에게 더욱많은 것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하지만 이런 언급은 일차적으로는 남자들의 감성에 동조될지 모르지만,이것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남자가 주류라는 이야기의 반증일뿐이다. oecd국중 여자의 사회적 위치가 가장 낮고, 취업에서의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다.
한쪽의 성이 불평등화 된 사회에서 우위에 있는 집단이 가져야 되는 부담은 당연하다. 이것의 문제는 여자가 아닌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부담은 무엇을해도 그 시간을 그대로 즐길수 없다. 마치 중요한 시험을 앞에두고는 무엇을 해도 즐길수없는 수험생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찌어찌 기적같이 결혼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도 우리에게는 많은 벽들이 기다리고 있다.
집을 사는것이 지상명제인 대한민국에서 자기집을 가져야하는 것은 당연하며, 서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서울을 벗어나는 것은 곧 주변부로의 좌천이다. 여기서 끝나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 아이들을 낳는다면 맞벌이인 부부은 아이들을 맡겨야 할테고, 사교육도 시켜야 한다. 오래일한다고 생각했을때, 55세일테니 그후의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할테고 아이가 결혼할때는 아이의 결혼자금도 마련해야 할터이다.
결혼만이 문제가아니다. 내게 남아있는 높은 벽들은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러한 삶의 메뉴얼이 공동체적으로 조직화 되어 사람들의 머리속에 정형화되어 있고, 이러한 메뉴얼은 개인이 모두 감내해야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언뜻 생각해보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어진다. 세계의 어떤 나라에서도 결혼은 이뤄지고 자기집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은퇴를 하고 노후자금을 준비하니까.
하지만 만약 내가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어떨까? 서구와 같이 개인주의가 강하지 않고 우리와 같이 공동체의식이 강하며, 삶이 정형화되어 있는 일본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결혼을 할때는 결혼식외에는 그리 많은 돈이 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처럼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하지 않으니 집을 월세로 대체될테니 한국과 같이 많은 돈을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집이 정갖고 싶다면, 년 이울 1%로 안되는 장기 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할 수 잇을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은 공교육의 영역에서 해결가능할 것이며, 노후에는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해결될 것이다.
나를 조급하게 만든 것은 한국사회의 시스템의 문제이다. 세계무역 10위와 20000불의 gnp, 그리고 급격하게 발전된 한강의 기적은 우리에게서 여유를 뺏어갔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난 잘못없음!! 다 국가탓이라는 이야기를 하려하는 것이아니다.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불리는 혼돈속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네 삶을 되돌아볼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러한 인식은 뒷세대에 이어진다. 우리는 삶의 척박함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척박함을 알수 있어야 한다
척박함에 끌려가면 우리의 삶은 그대로 유지될뿐이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는다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니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무척이나 특이하다. 조선말기부터 사회의 지도자층을 통해 사회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멍청한 주류 지도층의 아래에서 미친듯이 일을하고 희생해온 개인의 힘을 통해 여기까지 올라왔다. 지금까지는 경제적인 성장을 위해 우리는 살아왔다. 어느정도의수준에 오른 지금은 이제 우리를 돌아봐야한다.
우리가 느끼는 사회안전망의 결여, 고용불안, 지나친경쟁등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변화를 꿈꿔야한다.
지나치게 바쁘고 할것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여유를 찾는 것은 힘들다. 나역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하지만 80년대 영화제목처럼 우리도 가끔 하늘을 보자.
이렇게 바쁘고 쫓기듯이만 살기에는 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우리네 삶이 너무 소중하지 않은가?
제가 얼마전에 올린 글이 생각나네요.
통계상 나타난 한국이란 나라의 현상황은
노동시간 oecd국가 중 1위
자살률 1위.
국가의 복지 투자비용 꼴찌
삶의질 꼴지에서 두번 째
였습니다.
아무래도 노동시간이 많으면 삶의 여유는 줄어들 수 밖에요.
우리 주변만 봐도 많은 이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죠.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이 아닌 이상 월화수목금금금인데도 있고요.
그리고 국가의 안전구제책은 거의 없다고 봐도됩니다.
노인 자살률이 oecd평균의 8배라고 합니다.
노인들이 살아가기에 이만큼 혹독한 나라도 없다는 것이죠.
제가 쓰는 이 말들이 구조만 탓하는 비겁한 댓글로 보일진 모르겠지만
구조가 바뀌지않으면 가진것 없이 삶을 여유롭게 즐기긴 힘듭니다.
일에 쫓기고
행여나 찾아올지 모르는 실패를 두려워해야하고
노년까지 걱정해야하는데
삶을 즐길 여유가 있을까요.
그래도 뭐 불평만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죠.
투표잘하고 자기 하는일 열심히 하고
즐길떈 즐기며 사는게 이 상황에서 가장 잘 살수있는 방향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