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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5/11 21:31:43
Name 50b
Subject [일반] 토끼 귀를 가진 그녀.
1.



밤이 낮고 어둡게 깔린 어제와 오늘의 경계면에서

저 멀리서  토끼 귀를 가진 여자를 봤다.



망사 스타킹을 신고, 핫팬츠를 입고, 호피 무늬 자켓을 걸치고

토끼귀를 가진 아주 여자였다.



토끼 귀를 가진건 아니고 토끼 귀처럼 생긴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말초 신경을 자극 하는 것들 보다 토끼 귀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 그녀를 저런 복장을 하게 만들었을까?


란 의문이 들었지만 부끄럼을 감수하고  그녀에게 성큼 성큼 다가가


물어 볼정도로  의문부호의 크기가 크지는 않았다.



여하튼 그녀는 100m 전방에서 나를 쳐다보곤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서 나에게 다가와





"실례지만 여자 친구 있나요?"


"없다면 번호를 갈켜 주실수 있나요?"




란 두개의 질문을 하는일은 평소대로 절대로 일어 나지 않았고
(기대도 안했지만)



묘한 여운을 남긴채 다른 사람들 틈에 휩쌓여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직선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나서야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껄 하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도 그저 그렇게

잊혀져 갈꺼란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은 그러하다는 것 을 배웠다.


물론  "토끼 귀를 가진 그녀"를 만날 확률은 아주 희박 하지만말이다.


2.


잊혀질꺼란 나의 생각과는 달린 며칠동안을  토끼 귀를 가진 그녀를 기억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 분해해가며 기다렸다.




손님 중에 우연찮게 토끼 귀를 가진 그녀가 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매번 품었었는데

전자렌지에서 돌아가는 냉동만두라던가


군대제대 날짜와 와 같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서 금새 포기해버렸다.






쉬는날이라고 해봤자 온종일 휴식으로만 그 시간을 채우기에

그녀를 보았던 곳으로 다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근처 커피숍을 찾아 들어가서 아무 생각없이 그녀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슬프지만 "반드시 오는 것" 이 아니라 수십년을 살면서

"한번 본 것" 이기 때문에 조금씩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낚시를 해보진 않았지만 낚시를 한다는 것의 괴로움에 관해 조금은

알것 같았다.



세시간이 블랙 홀에 빨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시간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커피를 마시고 멍하니 창 밖을 쳐다 보는일이 전부였다.


더이상 시간을 보내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것 같았다.


'이쯤 했으면 나도 최선을다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 날려고 할때 영화의 주인공처러 등장하는 그녀가 보였다.

물론 이번엔 토끼 귀를 하지는 않았지만, 단번에 알수 있었다.




커피숍을 뛰쳐 나가  무작정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고속 버스 터미널로 가서 표를 구매했다.


"아까 저 여자분과 똑같은 표 하나 주세요"


"네 부산 5시고 8900원 입니다"


내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나도 알수 없게 되버렸다.


그녀가 부산에 살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탄다면

어찌 해야 되는 것일까?


알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 간다면 끝까지 가보는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3.



버스에서 내려 빠른걸음으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떤 말들로 시작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그녀가 돌아 본다.



"저기 죄송한데요 혹시 저번에 토끼 머리띠 쓴적 있으시죠?"


"아...네.. 그런데요?"





"저 혹시 그거 어디서 구입하죠?

너무 이뻐서 여자친구 에게 사다줄려고 그러는데"

"그거. 인터넷에서 구입 하면 되는데

옥션에서 토끼 머리띠 검색 해보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네"







토기 머리띠를 했던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여자와 사귀다 헤어지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차인것이라면야..

친구나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동정은 받을수 있겠지만


"썸씽"이라고 부를수 없는 일이 전혀 없었고,


이렇게 그녀에게 마음을 뺏겨 버렸다고 누군가에게 말을 한다면


"정신이 나갔냐? " 말을 들을게 뻔하다.




더욱 슬픈 건 이러한 일로 생긴 슬픔을 공감할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동정 받을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를 떠올린다.



신이 사람들에게 나눠준 "망각" 이란 능력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그능력이 퇴화 되버렸거나 애초에 받지 못한 부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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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11 21:34
수정 아이콘
...날선 글이 난무해서 눈이 찌푸려지고 있던 차에
모처럼의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추천 하나 드릴께요^^
10/05/11 21:36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계속 봐왔는데, 글 참 잘쓰시는것 같아요.
abrasax_:JW
10/05/11 21:40
수정 아이콘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잘 읽고 갑니다.
늘 느끼지만 50b님의 글은 한가한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요.
ElleNoeR
10/05/11 21:44
수정 아이콘
혹시나해서 마지막에 드래그를 해봤지만 아무것도 없네요^^;;
한편으론 부럽네요.
10/05/11 21:46
수정 아이콘
안생겨요.... 는 훼이크고..
읽으면서 같이 안타까워지는 좋은(?) 글입니다.허허..
아 왜 눈물이 나려고 하지..
릴리러쉬
10/05/11 21:58
수정 아이콘
예전부터 느낀거지만 필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굿데이 그만둬
10/05/11 22:00
수정 아이콘
부럽습니다. 기다림의 용기와 추적(?)의 용기가 너무 부럽고
한편으로는 이제는 길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보아도 심장의 리액션이 없는 저의 현실이 슬프군요ㅠ
인스네어리버
10/05/11 22:02
수정 아이콘
괜히 쪼끔 슬퍼지네요 ㅠㅠ
ps. 필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2)
BoSs_YiRuMa
10/05/11 22:03
수정 아이콘
읽을때마다 뭔가 의미가 담겨져있는 글들인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음 연재는 좀 빠르게..;;
10/05/11 22:13
수정 아이콘
홈에서 제목을 본 순간 왠지 50b님 글이 아닐까 싶었는데 맞췄네요 하하.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더 이상 글을 안적으시나 싶어 아쉬워했는데 오랜만에 50b님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경제학적 마인
10/05/11 22:21
수정 아이콘
올해 첫 글이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느낌이 느무 좋네요 ^^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 마시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겠군요~
OnlyJustForYou
10/05/11 22:25
수정 아이콘
음.. 뭔가 여운이 남네요.

잠시 제 얘기를 해보자면, 저는 2년의 기다림 끝에.. 생겼습니다. 흐흐
이제 시작이라 어색하고 서툴고.. 답답한 것이 있어도 얘기도 못하고 혼자 서운해 하는게 많지만, 좋더군요.
좋습니다. 정말.. 좋네요. 흐흐흐..
LunaticNight
10/05/11 22:28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올리신 글이죠?
간간히 언제쯤 글을 올리시려나 하다 이제 잊혀지는 즈음이었는데 담백한(?) 50b님 글을 다시 읽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실화인가요?)
국제공무원
10/05/11 22:33
수정 아이콘
오랜만입니다. 글잘읽고 갑니다.
당신은 시원한 사람입니까 이후 오랜만에 보는 글인듯해요.
수필작가로 대뷔하셔도 될듯해요 ^^
최후의BNF
10/05/11 22:35
수정 아이콘
뭔가 반전이 있을꺼라 생각했지만.아니었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50b님이 쓰신글을 좀 찾아봐야겠어요.
Benjamin Linus
10/05/11 22:46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50b님은 여자친구 많이 사귀어보셨나요?
이런 감수성에다 적극성이면 여자사귀기도 쉬울것 같은데..
술로예찬
10/05/11 23:08
수정 아이콘
그냥 무심코 사진을 기대하고 들어왔던 제가 죄인이네요
문앞의늑대
10/05/11 23:20
수정 아이콘
저번에 질게에서 다시 글 쓰신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올라오네요.
역시 재밌네요. 계속 올려주세요. 크크
Go_TheMarine
10/05/11 23:39
수정 아이콘
아 오랜만에 보니 반갑습니다.
50b님의 글은 뭔가 결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Paloalto
10/05/11 23:40
수정 아이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면 과거의 미련과 후회만 생기고 생각만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더라구요
그러한 감수성, 낭만주의적인 기질이 참으로 아름답다지만
전 세상과 더 타협해 가는건지, 감정의 컨트롤이 더 쉬워졌는지
아니면 내자신을 더 아끼게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 인연을 맺고 끊음에 있어서 가벼운 이런 인스턴트한 관계를 자주 만나다보니
이러한 마음이 실제 현실속에선 더 적합하다고 느끼게 되어버렸네요
제가 유독 많이 굳어진것 같긴하지만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읽다보니 녹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레반틴
10/05/12 00:11
수정 아이콘
우사미미도 좋지만 네코미미가 좋아요.

언젠가 저도 생긴다면 고양이귀를 꼭....
10/05/12 00:19
수정 아이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패러디라고 생각했건만.. 리얼이었나요;
10/05/12 00:41
수정 아이콘
글을 쓰다보니 너무 리얼로 갔네요.

사실 여자친구가 저 복장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념으로 글을 한편 쓰겠노라고 했고, 쓰다보니

이런 글이 되버렸네요. 여러분들을 기만 할려고 했던건 아니고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 가버렸습니다.


그럼 다들 ASKY


죄송합니다
꼬쟁투
10/06/05 02:55
수정 아이콘
헤헤 50b님 글 너무좋아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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