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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4/14 02:18:33
Name 빵pro점쟁이
Subject [일반] 저희는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제목은 훼이크입니다
추리 매니아께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마시고 뒤로 가기 눌러주시면 됩니다





어릴 때는 어디나 그렇듯이
학교나 동네 놀이터에서 한번 도는 유행은
같이 노는 아이들 사이에선
쫓아가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그런 것이었죠

가령 드래곤볼이란 만화책이 퍼지면
모르는 사람은 얘기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거의 바보 취급 받는(그때는 왕따란 단어도 없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크게 유행하는 대세는
팽이였다가 공기였다가, 롤러 스케이트(블레이드),
구슬치기, 새로 나온 만화책, 명랑 소설, 새로 나온 게임 등
금방 금방 바뀌었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추리 소설 열풍도
저희 반을 한번 휩쓸고 지나갔었고요

그 시절 꼬마들이 읽는 추리 소설이야 다 그렇듯이
아동용으로 나온 뤼팽, 홈즈물이 전부였지만
당시엔 읽으면서 전율하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입니다

수학여행이었는지 극기 훈련이었는지, 수련회였는지
정확한 타이틀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수학여행이었다고 치죠


여행 중간쯤 날 점심 때
저는 식사를 마친 후 방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방에서는 여러명이 한명을 둘러싸고
뭔가를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방에 있던 다른 친구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A가 돈을 잃어버려서 친구들이 찾아주겠다고 나섰는데
B가 의심된다고 A가 얘기하자
찾아주겠다던 친구들이 C를 중심으로 뭉쳐서
B를 족치고 있던 겁니다


B는 억울하다고 나름 변명도 열심히 하며 울상을 지었지만
어린 아이들 세상에서는 어떠한 논리나 진실도 통하지 않죠

여럿이 우기면 사람 한명 순식간에 병sin 만드는 건
정말 우습지도 않은 일이거든요


제가 방에 돌아왔을 때는
수사?가 거의 끝날 때쯤이었습니다

C와 친구들은 꼬치꼬치 물고 늘어지며
범인 만들기에 열을 내었고
결국 B는 체념하고

"그래, 내가 훔쳤다. 됐어?"

자백을 하고 이불 뒤집어 썼습니다


자백을 받아낸 아이들은 신이 난 채
그제서야 점심을 먹으러 갔고요


식당 아주머니께서 너네는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묻자

"반 친구 돈을 누가 훔쳐갔는데 우리가 범인 잡았어요!"

라고 당당하게 무용담을 꺼내며
명탐정 나왔네 어쩌네 자랑했던 건 당연지사죠

저희는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사실 B는 제 친구였거든요
(물론 A도 C들도 다 같이 잘 어울리던 반 친구들이고요)

B는 저랑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늘 하교하는 10여분 동안 꼬박꼬박 얘기하면서
상가에 들러 불량식품도 같이 사 먹고, 허풍도 떨고, 장난도 치던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돈을 훔쳤다니..
참 속이 상했었습니다


네..
저는 C들의 명추리에 감탄해서 B를 범인이라 믿었던
못난 친구 중에 한명이었던 겁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은
사건 발생해서 추리;;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겠죠

어린 시절 제 성격을 고려했을 때
만약 밥을 먹고 있지 않았다면
B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는데 가장 앞장섰을 거란 생각에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화끈거리네요...


아무튼 B는 나중에 올라가면 돈 주기로 약속했고
우리는 남은 기간 동안 즐겁게 지내다가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수학여행 다음날은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노발대발하신 B의 학부모님께서 학교 찾아오셔서
dog박살을 내버렸죠


사건을 우리끼리 해결한지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담임 선생님은
당연히 안드로까지 편안하게 다녀오셨고
명탐정 C는 그날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습니다


A의 돈이 어디 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확실한 건
B가 범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B가 훔쳐갔다면 범행을 자백했을 때
왜 돈을 바로 안 돌려줬겠습니까

B가 훔치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돈이 없었거든요

명탐정 명탐정 거렸지만 너무나 당연한 건데도
꼬마 애들 머리로는 거기까지 생각 못 했었죠


국6이 만지기엔 액수가 큰 돈이라
B는 수학여행 끝나고 집에 가서 부모님께 돈 달라고 했다가
결국 사실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겠고요



뭐 쓰라린 기억이긴 하지만
지나고 나면 다 그렇듯이
지금 다시 떠올리면 한번 웃고 넘어갈 해프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겜게에 글 하나 올린 후
간단히 댓글 달고 자려고 누웠는데
참.. 잠도 안 오고, 선수들 걱정도 되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다
문득 이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그 날 이후 처음은 아니고
종종 생각나곤 했던 에피소드이지만
막상 떠오를 때마다 피식 웃으며
그땐 참 어렸었지..
별 일 아닌 듯 넘겼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선수들 평생 상처 운운하며
열심히 글 올린 후라 그런지
친구 B의 그 일이 밤새 저를 괴롭혔네요


그 때 우리는 수학여행 남은 기간을 재밌게 보냈지만










B는 수학여행 내내 우리들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거든요










저는 종종 생각날 때마다 피식 한번 웃지만

B는...


후....................





겜게에 올릴까 하다가 자게용으로 완전 수정한 지금도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습니다


아무리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렸다 쳐도
옆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 B를 믿고
"그럴 리 없다"고 간단한 변명조차 해주지 않았던 제 자신이

선수들 믿어보자고 그렇게 열심히 주장하는 글을 올렸으니
너무 부끄럽네요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무리이고;;

우연히라도 그 친구 B를 다시 한번 만난다면
꼭 사과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어리고, 추리 소설을 많이 읽었다지만
그날 일은 믿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이미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겠지만
더 이상은 아파하지 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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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14 02:24
수정 아이콘
아아, 멍청하고 어리석었던, 낡아 빠진 앨범의 첫 장에 실린 사진의 그때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신이시여, 가능하다면 제발.
그러나 내일 아침에는 또 해가 뜨겠지, 나는 그 해를 맞이하겠지. 그저 해가 뜨고 지는걸 기다리는건 너무 슬프지.
그러니까 우리는 꿈을 꾸지. 그러니까 우리는 추억을 하지. 이제는 멀어진 낡은 사진 한장을 품고 그저 새로운 하루를 견디지.


아직 사실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똑똑한 척 추론하고 확신하고 섣부르게 떠드는 가십쟁이들이 이제까지 죽인 유명인도 숫자가 몇몇이건만, 어째서 다들 차분히 조용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할까요? 정확한게 아니면 험담은 하는게 아닌데. 씁쓸합니다.
샤르미에티미
10/04/14 02:25
수정 아이콘
제가 요즘 느끼는 게 옛말이 틀린 거 없다. 이걸 절실히 느끼는데 또 최근에....'어설프게 아는 게 모르는 것만 못하다.' 이게 참 와닿더군요.
어설픈 행동도 안 하느니만 못하고....뭐 추리도 껴맞출 수 있겠죠.
근데 읽다보니까 왠지 B라는 친구분이 어릴 때부터 대인배의 기질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FlyyToyy
10/04/14 03:28
수정 아이콘
한 투자회사에 제 돈을 투자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믿었었죠.

그런데 어느날 그 회사 직원 일부가 고객의 돈을 횡령해왔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점점 정황상 확실해지고 혹시나싶어 회사에 문의를 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합니다.
그러다 결국 언론에서 비리가 있었다는것을 그리고 회사에사는 이미 비리를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돈을 횡령한 직원들을 해고하는 정도로 일을 은폐하려 시도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그 과정에서 A.B.C 라는 직원이 별다른 이유없이 사직서/병가등을 내거나 하고 퇴사했다는 것이 알려집니다.
개중에는 제가 정말 인간적으로 신뢰하던 이들도 포함되있구요.

열받은 저는 당장 회사로 달려가죠. 그리고 분노하며 묻습니다.
'내 돈 해먹은게 누구야? A야? B야? 아님 딴 사람이야 ?
누구든간에 그냥 해고시키고 말면 안되는거 아냐? 제대로 처벌을 받게해야지 !! '

물론 그 회사 전체가 회사차원에서 돈을 떼먹은 것도 아니고
D,E,F,G .. 수많은 무고한 직원들과 임원과 사장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올바른 대응은 무었일까요?
내가 한거 아니니까 '내가 한거 아니구요, 바쁘니까 말걸지 말아줄래요?' 이러고 무시하는걸까요?

당연히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입장에서, 그리고 비리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을 - 중요합니다 - 우선 사과하고
비리를 저지른건 A가 맞다, 혹은 아니다 B는 결백하다,
혹시나 당장 입열기가 곤란하고 일을 조사하고 처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최소한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으나 반드시 비리에 관련된 일을 명백하게 밝혀내고 공개해서 합당하게 일을 처리하겠다.
정도의 발언은 당연히 나와야 합니다.
그게 피해자에 대한 당연한 도리죠.
그런데 지금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했던소리 또하고 했던소리 또하는것도 이젠 지겹네요.
'확실히 드러날 때까지 입다물자' 에 반대하는건
'그럴듯해 보이는 선수 실명으로 실컷 까대자.'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실을 알고있고,그걸 확인해 줄 수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할 의무가 있는 이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압박을 해서라도 입을 반드시 열게 하자는 거죠.
우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입다물고 있으면 얼씨구나 하고 잠잠해진 틈을타 흐지부지 넘어갈게 분명하니까요.
그걸 어찌 장담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미 그것을 시도했었기에 라고 답변하겠습니다.
설마 한번 그랬다고 또 그러란 법 있냐. 믿어보자. 라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저는 정말이지 기다리고 있으면 그들이 스스로 모든 진실을 알아서 토해낼 거라고 믿는 분들을 .. 이해할 수가 없네요 ..

글쓴분이 친구를 의심한것은 잘못한게 맞습니다.
절도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돈의 행방조차 밝혀내지 못하는 허술한 근거로 사람을 의심하고
그 친구가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믿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말이죠 .
하지만 만약 A라는 친구가 당장 눈에보이는 허술함이 없는 논리와 그럴듯한 증거를 제시했다면,
그리고 B란 친구가 한번 부인하는 일도 없이 묵묵히 듣고있다가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면,
'정말 니가 그랬어? 아니면 아니라고 해봐 ?' 라고 조용히 물어도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다면 저 역시 B를 의심하겠죠.
그러다 만에하나 B가 범인이 아니라는 반전이 나와도 전 제 자신의 경솔함을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니까요.
그리고 몇번을 말했듯 지금 논란이 되고있는 이들은 B와는 달리 사건을 해명할 책임이 있는 이들입니다.
parallelline
10/04/14 10:53
수정 아이콘
아는척해서 자신만 손해보면 시행착오인데 남까지 손해를 본다면 민폐죠;;
cutiekaras
10/04/14 12:39
수정 아이콘
어잌후 똑똑병이 어디 한두사람 인가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는데

막상 진실은 그게 아닐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과연 이번에도 궁금하네요
엘룬연금술사
10/04/14 13:21
수정 아이콘
솔직히 이번 사건을 통해 제가 느끼는 부분은,
너무 똑똑해서, 혹은 너무 이성적이어서 나서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었던 그들로부터 속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배신감에 분노하는 분들이 많은 듯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속으면 기분 나쁘고, 진실을 파헤쳐야 속이 풀리고 나를 속인 이들이 처벌받기를 원하게 마련이죠.
다만, 그 와중에 이성을 잃고 아무나 의심하고 아무에게나 화를 낸다면 훗날 스스로 굉장히 부끄러울 겁니다.

저는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는 주의의 보수적인 사람인지라, 지금은 그 누구도 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검찰과 협회, 스폰서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엄중한 수사와 사후 처벌을 기대할 뿐.
10/04/14 14:33
수정 아이콘
무죄추정의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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