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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3 10:54
사소한 지적을 하나 해보자면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털 동안 영국이 손 싸매고 있던건 아닙니다.
노르웨이에 원정갔다가 역관광당하고 그 때문에 결국 처칠이 수상이 되죠.
10/01/23 11:09
글 잘 보았습니다!
스페인에서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킬 때 소련이 공화파를 지원한 이유는 구식무기 판매 및 이로 인해 유도되는 소련군 장비 교체, 그리고 무기에 대한 성능 테스트가 주 목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소련이 스페인 공화파를 지원해준 걸 높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당시 미소영프독이일 모두 동일하게 톱밥을 굴리면서 자기 밥그릇 지키기, 혹은 남의 밥그릇 뺏기에 바빴죠. 제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움직임에 대의 따윈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0/01/23 11:24
참 신기한게 1차세계대전에 그렇게 개털렸던 독일인데
뭐 인구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그 작은 나라가 어떻게 몇십년도 채 안돼서 유럽을 개바를 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게 된건지.........
10/01/23 11:31
제 생각엔 전쟁 시작의 원인이 독일이란건 승자의 시각에서 나온 견해인듯 싶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것도 받아들이기 힘들구요.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이 훼손당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일에게 양보 한건 사실입니다만 "진짜 전쟁만은 피하고 싶다"이런 생각이었으면 폴란드를 설득해 독일의 구 영토를 돌려 주도록 했을 겁니다.
구영토 회복은 히틀러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약속이자 독일인의 숙원같은것 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폴란드의 손을 들어주며 독일과 전쟁 치킨 게임을 벌였죠. 그 원인은 폴란드를 연합국의 일원으로 삼아 독일에 대한 포위망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히틀러에게 전쟁외에는 구영토 회복의 길을 막아버린건 영국과 프랑스 입니다. 궁지에 몰린 쥐가 뭘 할까요? 물론 직접적 행동을 시작한 독일이 원인인가 아니면 그 행동을 유도한 영국과 프랑스가 원인인가 하는건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제각각 판단도 다를테니 내버려 두는게 최선일듯.
10/01/23 12:34
안드레아스 힐그루버의 견해에 따르면 영국이나 프랑스는, 특히 영국은 독일과의 전쟁을 최대한 피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뮌헨 협정에서 독일에 수테텐란트를 내주었고,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에 합병됨에도 손 놓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국은 그러잖아도 대영제국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가고 있던 상황이라, 독일과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더 이상 세계제국의 유지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 최대한 양보하였지만, 히틀러가 폴란드까지 침공하게 되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은 히틀러가 폴란드까지 차지하게 되면, 동유럽에서의 헤게모니를 완전히 독일이 장악하게 되므로 이 또한 대영제국의 세계전략- 유럽 대륙에서의 강자는 용인할 수 없는- 에 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임벌린은 히틀러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합니다. A. J. P. 테일러의 고전인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따르면 프랑스의 달라디에는 1939년 9월 초에 전쟁에 소극적이었으나, 체임벌린이 적극적으로 파리를 설득하여 런던, 파리가 함께 베를린에 선전포고를 하였다고 하지요. 히틀러는 히틀러대로 폴란드를 침공한 이유가 (영국의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절대로 대륙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힛통의 망상과는 달리 영국은 개전을 선포하였고, 히틀러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그답게 곧 정신승리를 이루어 영국 따위 쳐부수어 주겠다며 큰소리를 칩니다. 칼 하인츠 프리저의 전격전의 전설에 따르면, 1939년은 물론 독소전역이 열리는 1940년 5월까지도 독일군의 전력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비해 객관적으로 전혀 우세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Phony War는 이미 전략적 우세- 병력이나 무기의 수는 물론 해양을 봉쇄할 수 있었던- 를 확보하고 있던 연합군이 최대한 피해없이 히틀러를 굴복시키기 위해, 또 이미 우세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안일한 대응을 한 탓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이 빨리 항복해버린 것은, 사실 불과 2주일만에 연합군이 독일군의 쾌속한 공격에 의해 격파당했기 때문에 (개전 4주 후에는 영국군이 덩게르크에서 대륙을 탈출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우리가 빨리 항복하면 영국도 곧 독일과 휴전하고 그러면 독일군도 프랑스 땅에서 물러갈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압니다. 동시에 독일을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이자 새로운 세계질서로 인정한 사람들이 발언권을 잡았고, 그들이 비시 프랑스를 수립하게 됩니다. gogooma님// 히틀러는 1939년 봄에는 단치히 회랑을 비롯한 히틀러가 훗날 폴란드한테 시비를 걸 명분으로 삼았던 땅을 폴란드의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드립을 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로서는 독소불가침 조약이 체결된 이상 폴란드를 전략적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폴란드 또한 독일에 대해 기세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쳐들어오면 오히려 독일이 망하는 날이 될거라며 독일을 자극하기도 했던 것이 폴란드였던지라, 덕분에 오늘날(작년 9월에 폴란드 그단스크(옛 단치히)에서 열린 전쟁 기념(?) 행사에서)도 폴란드가 카틴 숲의 학살 사건 등을 가지고 러시아를 까다가 러시아 대통령이 나서서 폴란드가 1939년에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외교문서를 폭로하겠다며 맞불을 놓은 적이 있습니다. 김평수님// 1차 대전기에 독일 본토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았습니다. 고스란히 인구와 기술을 보전할 수 있었고, 대공황기에 경제가 엉망이 되지만 H. 샤흐트라는 걸출한 양반이 화폐개혁을 주도하면서 어느정도 일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1930년대 초에 가면 제법 국내 경제가 안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면서 히틀러는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선언하고 나섭니다. 훗날 히틀러와 케인즈,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함께 비교하는 책이 나올 만큼, 히틀러 시기에는 국가적으로 경제를 통제하여 발전시키고자 했습니다. 히틀러의 경제정책이 성장률이라든가 과도한 국가통제와 재무장, 비효율적인 자원배분 등으로 인해 발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독일의 경제력을 회복시키는 정도는 충분하였다고 보여집니다. 덕분에 1939년 즈음에 이르면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소련과 더불어 세계 2, 3위를 다투는 수준이 됩니다. 20세기의 전쟁은 인구와 경제력, 산업생산력으로 전쟁을 하는 시기였지요. 히틀러가 공식적으로 재무장을 시작한 것은 1935년이었고, 불과 5년만에 독일군이 유럽에서 최강의 육군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론 독일군의 장교에서부터 부사관, 일반 병사에 이르기까지 인적 자원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스 폰 젝트를 비롯한 제2제국의 주요 인물들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초라한 독일군을 그래도 훗날을 대비해 잘 만들어 놓았고, 훗날 명성을 떨치게 되는 독일 장군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군의 확대에 대비해 여단장은 사단장의 능력을, 부사관은 장교의 능력을 예비하는 식으로 준비를 해두기도 했고요. 장교와 부사관의 능력치가 덕분에 아주 높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반 병사의 경우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39년의 독일군은 그 절반 가량이 정규 군사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만, 대전기 내내 보여준 독일군의 교환비를 생각하면 하위 유닛에도 자율성을 부여하는 규범의 힘도 컸겠지만, 그만큼 우수한 군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10/01/23 12:51
첨언을 좀더 하자면,
베르사유 조약으로 대거 감축된 독일군의 주력은 장교였습니다. 이를 키운 게 바로 한스 폰 젝트였죠. 빨리 훈련시킬 수 있는 사병보다는 장교가 훨씬 더 많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리고 제가 보았을 때는 프랑스가 그토록 빨리 항복해야 했던 이유는 전술의 부재에서 오는, 아니, 낡은 전술에서 온 치명적인 타격 때문에 생긴 심리적 공황과 이 틈을 타서 좌익을 쓸어야 한다는 우익계의 독일에 대한 협조가 더 크다고 봅니다. 물론 프랑스 병사들의 개개인의 상태도 심각했지만, 전쟁하기 싫다고 빨리 항복했다는 것은 프랑스의 그 높은 자존심을 생각해 보면 쉽게 수긍할 수 없네요.
10/01/23 13:55
제가 들은 바로는 히틀러에 도박을 건 유태인들의 돈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적자원도 자원이겠지만 순간 막대한 양의 돈이 어딘가에서 흘러왔다는 얘기죠
10/01/23 14:28
2차대전을 누가 일으켰던 간에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적은 서구열강이죠.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국,프랑스,스페인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너무 호의적임.
10/01/23 16:21
let8pla님// 왜냐면, 그 당시 서구열강과 전쟁을 한 일본이 우리의 적이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와 동남아, 아프리카는 각자 다른 국가에게 핍박받았으니 호의적,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대상도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10/01/23 16:25
코메디 II에 대해.
프랑스가 파리까지 밀리자 바로 항복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베강 라인이고 뭐고 다 헛것이 되버리죠. 프랑스는 비시 프랑스 이전까진 상당히 열심히 저항했고, 노르망디 이후 영국이 본토 방위에만 신경쓰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 해군을 초토화시킨 노르웨이 전역 등 '기묘한 전쟁' 이란 말이 먹히는 건 서부전역, 그것도 프랑스-독일 국경지대 뿐입니다. 이것도 1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체득한 전략, 즉 '공격을 계속 막으면서 조이면 굶겨죽일 수 있다' 는 데서 나온 것이지 전쟁을 피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10/01/23 16:30
그리고 1차대전이 2차대전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데도 부정적입니다.
물론 1차대전은 양측 세력을 한계까지 몰고갔고, 소련을 등장시키는 등 영향력이 크긴 하나 영, 프 등은 어쨌든 식민지를 계속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피를 많이 보고 많이 고생스럽지만 영국 해군은 여전히 바다를 지배했고 프랑스의 식민 통치는 여전히 굳건했지요. 러시아가 소련으로 전환된 건 상당히 큰 일이긴 하나 거기에 대응한 봉쇄는 쉽게 뚫기 어려운 것이였습니다. 이것이 끝장난 게 2차대전이죠. 프랑스의 기나긴 19세기를 끝내고, 영국을 끝내 파산시켰으며, 독일은 제국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프로이센과 완전히 분리되고, 소련은 자신에게 처진 봉쇄를 뛰어넘어 사상을 퍼트릴 수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은 무리였지요.
10/01/23 16:39
독일군의 강력함은 1차대전 직후 젝트가 지켜낸 명성높은 참모본부(스웨덴 카를 12세, 나폴레옹 참모부를 벤치마킹한 제2제국의 유산)와 하급부대에까지 자율성을 제공한 임무형 지휘(지금도 독일&이스라엘만 가능하다는 그것. 이건 무려 프리드리히 2세의 유산이던가...). 높디높은 독일의 과학 기술력에서 비롯한다 하겠습니다. 국력의 크기는 현저히 모자랐죠. 미/소와 비교하면 그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2차대전만큼 선악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전쟁도 찾기 어려운데 말이죠. 강철의 대원수 씨야 악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소전쟁은 독일의 책임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태평양 전쟁도 마찬가지. 중일전쟁과 남방지역 확장 등 일본이 옹호되어야 할 것은 찾기 어렵고. 이탈리아는... 버리죠. 악역도 못됩니다.
10/01/23 16:59
여러 댓글들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역시 제가 잘 몰랐거나 잘못 알았던 내용들도 꽤 있네요. 감사합니다~
Frantic 님//네 저도 인간백정 스탈린이 꺾여지는 꽃을 보고 눈물짓는 마음가짐(...)으로 스페인 공화파를 지원하지는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련의 스페인 지원은 영국과 프랑스의 무력함과 대비되어 많은 인민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당시 소련의 실체는...후새드) gogooma 님// 독일의 폴란드 영토 반환 요구가 비록 상당부분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걸 빌미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의 태도가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용납된다면, 지금 전세계에서 전쟁이 안 날 곳이 어디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유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히틀러 독일은 [궁지에 몰린 쥐]가 아니라 [살기등등한 굶주린 들개]였습니다. 그리고 특히 영국 입장에서 폴란드와 손을 잡은 것은 독일이라는 '들개'를 제어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반 파시즘 연합을 부르짖던 소련이 아무도 말을 안들어주자 배신때리고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버렸기 때문이죠. DivineStarlight 님 // 대단하시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나이트해머 님 // [으허허허. 오해입니다.] 본문을 제가 애매하게 적었군요. 1차대전이 2차대전보다 영향력이 큰 게 아니라 [충격량]이 크다는 의미였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대륙의 평온과 질서' (물론, 유럽 대륙 기준으로)가 한번에 무너진 1차 세계대전은, 그런 붕괴과 대살육을 한 번 겪은 후 다시 접한 2차 세계대전보다 더 큰 충격과 공포로 기억에 남게 됩니다. (물론 이건 이론의 여지가 있겠군요.)
10/01/23 17:03
나이트해머님//
>2차대전만큼 선악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전쟁도 찾기 어려운데 말이죠 ==> 동의합니다! >이탈리아는... 버리죠. 악역도 못됩니다 ==> 푸하하하. 2차대전에서 작렬한 이탈리아 군대의 개그본능은 대단했죠.
10/01/23 18:38
이탈리아는 어떠한 전쟁준비도 하지 않고 선전포고를 하는 희대의 막장짓부터 (덕분에 전 세계의 이탈리아의 선박, 부동산, 은행계좌등이 모조리 몰수됩니다. ...) 이미 이길 이유는 없었죠. 선전포고를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 히틀러가 잘나가네? 그럼 우리도!'... 일본은 최소한 진주만 침공까지만 해도 제대로 준비는 했는데 말이죠.
전쟁준비를 안했기 때문에 사병 징집 -> 훈련? 그거 먹는건가요? -> 전쟁터로 하다보니 아주 제대로 개그본능을 보여줬죠. 하지만 미리 준비된 부대들의 전투력은 대단했습니다. 다만 그 병력이 얼마 안되었다는게....
10/01/23 18:54
아, 그리고 이탈리아의 개그본능을 가지고 웃는 것도 좋지만
무솔리니와 그의 장군들이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 내지는 인도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던 것도 언급해야겠지요. 독일(90% 이상) 및 그 점령지역의 유태인 60~80%가 학살당한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전체의 20% 수준이며 (사료마다 차이가 있긴 합니다) 그들 대다수는 학살의 희생자라기보다는 투사로서 (특히 '대봉기' 기간에)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10/01/24 00:24
개인적으론 충격량의 비교는 2차 대전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네요.
1차 대전이 끝난 뒤엔 유럽 열강들을 필두로 한 세계 질서가 유럽 열강들이 대단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나름대로 유지됐지만, 2차 대전이 끝난 뒤엔 기존 열강들은 완전히 몰락하면서 탈식민지화가 진행되고 신진 세력인 미-소 2강 체제로 세계 질서가 냉전이란 이름 하에 '완전히' 재편되었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10/01/25 00:02
나이트해머님// 2차대전이 선악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전쟁이라는건 절대 공감하기 힘든데요. 일본과 독일이 전범국이라는 데에서 일단은 악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영국과 미국이 선이 되나요? 독일의 1차대전 패배 이후 무지막지하게 물려놓은 전쟁배상금과 거진 1/3의 영토 축소 등등이 이미 전쟁 없이 독일이 제대로 재건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런 1차대전 후 ~ 2차대전 전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그 전까지 식민지 약탈로 이루어 놓은 대영제국을 비롯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서구 열강들이 선이라고 할 수 있나요? 사실상 히틀러의 유태인말살정책이라는 막장요소를 제외하면 진영간 선악의 우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다들 자국 혹은 자국진영의 이익을 위해서 싸웠을 뿐입니다. '그나마' 민주주의 병기창이라는 의미로 미국은 적어도 '악은 아니다'라고 할 수는 있겠군요. 2차대전에서 선은 없습니다.
10/01/25 00:10
그리고 1차대전은 말이 세계대전이지 사실은 유럽전쟁 수준밖에 안되죠.. 대규모 전쟁의 참혹함을 처음 알게 되고 놀라게 된 전쟁이죠. 본격적인 식민지 체제 해체 + 냉전을 불러온 실질적인 최초의 세계대전인 2차대전의 임팩트에 비교가 안 됩니다. 개별적인 전쟁이라고 보는게 맞겠지만 일단은 일본이 벌인 태평양 방면 전쟁 + 독일이 벌인 동서부 전선 범위만으로도 1차대전 때의 전선에 비교가 안 되죠.
10/01/25 00:31
아야여오요우유으님// 근데 나치 집권 이전 이미 회복중이었는뎁쇼.(...)
그리고 무슨 1/3의 영토 축소입니까. 제국시절과 비교하면 기껏해야 단치히 회랑과 알자스-로렌 정도 잃은 게 전부. 중심지역 영토는 그대로 유지됐고 인구도 거의 그대로 건졌습니다. 프랑스 우익들이 '저거 인구가 지금도 6천만이나 되는데 그냥 냅두다니, 클레망소 댁 미첬수?' 해댄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공업시설도 알자스-로렌 일대에 있던 걸 빼면 그대로고. 배상금. 그 배상금중 대부분은 나중에 영국 주도로 탕감됩니다. 제대로 갚은 건 별로 안돼요. 제대로 재건되기 힘든 상황, 이란 가정 자체가 틀렸습니다. 독일은 회복중,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회복중이였습니다. 나치 독일의 군사력 중심의 중공업 몰핀 놓기 전에도 말이죠. 오히려 나치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전쟁 직전 다시 경제 위기가 닥치고, 그걸 회복하겠다고 주변 신생국들 삥뜯기에 시작하지요.
10/01/25 00:44
아야여오요우유으님// 그리고 식민지 약탈로 이룬 기득권이라... 식민지 체제는 이미 1차대전 직전에 부담이 되기 시작, 1차대전 이후엔 기득권이 아니라 짐이 되버린지 오래입니다. 아니, 식민지 수탈로 얻어낸 이득이란 것 자체가 유럽 각국 입장에선 은근히 보잘것 없다는 건 상식이지요. 비스마르크가 해외 식민지를 '제국을 꾸미는 색종이' 라고 했다던가요. 피지배층 입장에선 가혹하지만 지배층 입장에선 그건 이권이랄 것도 없습니다. 국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작아요. 1차대전 직전 독일은 식민지는 그야말로 체면치례 정도로만 가지고도 프랑스보다 국력상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건 넘어가고, 선과 악이라. 2차대전의 기준으로 따지면 서구 열강은 선이 맞는데요. 소련은 애매하군요. 스탈린이 좀 심해서. 그러나 서구 열강은? 유럽 정국에서 영국은 해군력 유지만으로도 피똥싸느라 '제발 평화만' 을 빌었고(배상금 탕감도 '이러면 저놈들이 날뛰지 않겠지' 하는 식) 프랑스는 대전으로 인해 너무 많은 피를 봐서 영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미 독자적으로 뭘 어떻게 할 힘이 없었고. 거기서 날뛰다 선을 넘어가 2차대전을 일으킨 건 독일입니다. 거기가 국내통치를 봐도 반대파는 모조리 숙청해댄(유대인만 학살해댄 것 같죠? 피해자가 어디 유대인만 있덥니까.) 나치와 그래도 어느정도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던 서구 열강을 비교합니까. 나치는 뭘로보나 악이고, 나치와 비교하면 서구 열강은 선이 됩니다. 최소한 나치보단 훨씬 낫거든요. 반대세력을 마구잡이로 짓밟지도 않고.
10/01/25 08:40
나이트해머님// 그 악으로 불리우는 추축국 세력이 어떠한 배경하에 득세하게 되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공황 이후 전 세계 경제체제가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패전국 독일의 사회질서는 막장으로 치닫게 됩니다. 1차대전 이후 패전국들의 식민지를 흡수하고 자신들의 식민지는 고스란히 유지했던 승전국들이 넓은 식민지와 자국을 중심으로 한 블럭경제체제를 구축하여 안정적인 수출 시장을 확보하고, 패전국들에게 뜯어낸 배상금으로 어느정도 경제 위기를 넘길 수 있던 것과는 다르게, 독일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제공황을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업주도형 국가였던 독일의 수출시장이 승전국들에 의해서 막혀버렸기 때문이며, 과도한 배상금에 대한 압박은 이 시기까지 여전히 유효했었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이로인한 독일 국민들의 동요로 인하여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가 사실상 붕괴되었고, '앉아서 굶어 죽으나 총들고 다시한번 깽판을 일으키고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배경 속에 등장한 것이 히틀러와 나치 독일입니다. 승전국들도 물론 자기 밥그릇 지키는 것이 어려웠고, 또 중요했겠지만, 그들이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에서는 2차대전의 연합국이 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한 시각에서는 악인 추축국을 탄생시킨 대부분의 주요한 책임은 선이 지어야할 것입니다.
10/01/25 09:53
Frantic님//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경제정책은 몰핀 과다투여에 가깝다니깐요.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붕괴되었네 뭐네 해도 나치의 집권 이전까지 버티고 있었는데 뭘요. 승전국은 자기 밥그릇 유지라기보단 자기 덩치도 유지 못해서 비틀거리고 있는데 거기서 인구 6천만짜리 초대형 국가를 추가로 지탱하라는 건 무리입니다. 경제력에서 그때 세계 1위에 인구도 억대가 넘어가는 미국이나 가능하죠. 그건. 독일이 보유한 거대한 인구, 즉 독일 자체가 어느 다른 국가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국가입니다. 독일 인구가 저것의 절반수준이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죠. 프랑스는 대전과 공황으로 한계가 넘은지 오래고(2차대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해도 프랑스는 아마 식민지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여유가 좀 남아있던 영국은 거대한 해군이라는 또하나의 짐을 짊어지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상금을 대부분 탕감하고 프랑스가 루르 공업지대를 점거하는데 반대해 물러나게 하는 등 영국은 독일을 그럭저럭 신경써준 편입니다. 프랑스는 그냥 살아남으려 필사적이었고.
10/01/25 10:23
그렇다면 자체적으로 살아남아야 하지만, 독일, 일본 등은(이탈리아는 무관심) 군수경제체제로 경제적 자충수를 두어버린 꼴입니다. 일시적으로는 경제가 회복되었으나 군수경제라는 건 결국 전쟁 외엔 소모수단이 없지요. 일본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독일은 전쟁 이전 외교적 도박수를 통해 계속 주변국을 먹어대는 것으로 해결하지만, 그게 올바른 수단입니까. 결국 몰핀주사만 열심히 놓아대 일시적으로 괜찮아 보인 것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독일의 경우 실질임금 25%까지 하강, 노동조합 비허용, 직과 이직의 권리 자유가 없어졌고, 개인의 재정 안정 비율은 1938년까지 10%로 다운. 이미 전쟁 이전부터 물자공급 부족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이게 유일한 방법이라뇨.
극단적인 이분법적 시각으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추축국의 경제적 자충수로 인해 그들은 주변국들을 점령하고 빼앗는 약탈자가 되었고, 그건 결국 지속적인 전쟁을 뜻하죠. 여기에 피지배국을 빼앗고 자국민도 괴롭히는 군요. 지속적인 전쟁만으로도 악인데 거기에 '서방 연합국이 하는 것 이상의' 탄압과 수탈을 벌이니 이거야말로 악이죠.(서구 연합국은 자국민을 그렇게 괴롭히진 않았죠.)
10/01/25 11:18
나이트해머님//
'그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제가 댓글에서 언급한 바가 없는데, 맥락상 추축국의 중공업 중심의 군수경제체제(이런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를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몰핀 과다투여'라는 비유(이게 또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도 같은 맥락으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그 비유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1차대전으로 그로기 상태가 되고 대공황으로 크리티컬 히트를 맞은 추축국에게 누가 몰핀 주사를 넣었느냐, 연합국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위에 적은 댓글에 말씀드렸구요. 인구 6천만의 큰 국가인 독일을 경제적으로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은 드린적이 없구요, 제 의견은 연합국이 근시안적으로 처신하고 행동했기에 추축국이 탄생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 밥그릇 싹 다 챙긴 상태에서, 이미 나치 독일이 성립된 이후에 전쟁회피를 위한 미봉책들로 값싸게 평화를 사려했던 연합국들이 면죄부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전쟁을 피하려 했었죠. 님과 저의 관점 차이의 핵심은 연합국이 '할만큼 해줬다'와 '그렇지 못했다'인 것 같습니다. 님의 댓글을 쭉 읽어보고 생각해보아도 제 생각엔 변함이 없군요. ^^; 제 관점에선 연합국, 추축국. 둘 다 미련하고 나쁜 놈들입니다. 2차대전은 이분법으로 간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건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제넘게 한 말씀드리자면, 원래 글의 스타일이 그러신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어투가 좀 공격적이고 흥분되어 있는 것 같네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하는 자리인 만큼 조금만 순화해서 의견을 개진하시는 게 어떨까합니다. ^^
10/01/25 13:06
Frantic님// 다른 길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나치의 집권은 기업가를 포함한 우파들의 정치적 타협에 의한 것이었고, 집권 직전까지 재정적 문제도 심각했고 지지율도 그닥 높지 않았지요. 거기서 나치를 택한 건 독일 자신입니다. 연합국이 나치 집권을 만들어 준 게 아닙니다.
그로기상태라 해도 전후 일시적인 기간을 제하면 프랑스보다 상태가 좋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바입니다. 독일의 나치 집권이 필연적이였다면 프랑스는 왜 그런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요. 프랑스는 기나긴 19세기네 뭐네 하면서 내부 정치적 갈등은 독일보다 더했고(독일공산당은, 솔직히 프랑스 좌파에 비하면 그 과격함이나 영향력이 덜합니다.) 경제상황 역시 마찬가지였건만 프랑스는 그래도 독일처럼 극단적인 체제를 선택하진 않았습니다. 연합국의 근시안적 선택, 이란 건 그냥 막연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독일 자신의 선택에 의해 나치가 등장한 거지 연합국이 독일에게 나치의 집권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10/01/25 13:18
과도한배상금, 은 대공황 시기엔 탕감되었고(로잔회의. 1932년) 대규모 해군과 식민지 유지비 등 막대한 기본적인 경제적 부담이 있던 영, 프와는 달리 독일은 그런 것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군국주의가 들어선 건 독일이죠.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이 선택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이라 부를만한 것이였고.
정말, 보면 볼수록 2차대전처럼 선악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전쟁은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그 어떤 전쟁이 이처럼 명확하게 갈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 스스로 선택한 군국주의 체제에 의해 그들이 스스로 전쟁을 도발했고, 망해버린 이러한 전쟁에서. 굳이 세부적으로 보면 소련이 애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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