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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3 12:43
지금 한창 잘 나가고 있는 FC바르셀로나의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죠.
(선수로도 잘나갔지만) 감독이 되어서 정립해놓은 것이 지금 바르셀로나의 축구철학, 유스때부터 가르치는 볼키핑과 패스 등 테크닉 위주의 축구입니다. (저게 안되는 선수는 필요가 없어요. 심지어는 센터백이 아무리 수비능력이 좋아도 패스 안되는 선수는 안쓰죠) 현재 감독인 과르디올라는 (레이카르트보다 좀 더) 거의 완전한 크루이프형 축구를 표현하고 있고, 그 결과로 지난 시즌 대성공을 거뒀고요. 에투가 나가면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가 공격수부터 시작되는 최전방에서부터의 압박.
10/01/23 13:26
간략하게 나마 축구 전술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부터 시작된 브라질의 극단적인 공격 전술 앞에 유럽 제 국가들은 그야말로 혼쭐이 납니다.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이탈리아에서 카테나치오라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헬레니오 헤레라'라는 인테르의 명장이 카테나치오를 통해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리자 이 전술은 당시 유럽에서는 하나의 주류가 됩니다. 여기에 대한 제 국가의 반응이 독특했는데요, 서독은 카테나치오 전술에서 후방의 스위퍼에게 프리롤 기능을 부여하여 '리베로' 시스템을 완성해 냈고 네덜란드는 카테나치오를 격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극단적인 공격 전술인 '토탈 풋볼'을 선 보이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리누스 미헬스가 선보인 '토탈 풋볼'을 가장 완성시킨 사람은 요한 크루이프도 아닌 80년대 AC 밀란의 황금기를 열었던 이탈리아인 아리고 사키였습니다. 물론 그의 지도하에 굴리트, 레이카르트, 반바스텐이라는 오렌지 3총사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하지만 아리고 사키는 이탈리아 내에서는 오랫동안 비주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는 리누스 미헬스라는 이름을 아는 축구인도 드물었고 토탈 사커라는 개념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만큼 세계의 주류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2000년 대 히딩크가 월드컵 감독을 맡으면서부터 토탈 사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지요.
10/01/23 13:34
'장군' 리누스 미헬스와 한국과의 인연은 의외로 깊습니다.
레버쿠젠의 감독을 맡았을때 당시 은퇴를 앞두었던 차범근 감독과 함께 있었지요. 차 감독은 지금도 자신의 스승으로 리누스 미헬스를 꼽습니다.(감독님 근데 수원은 왜 '토탈 사커'가 안 되나요.) 오히려 K리그에서 '토탈 사커' 시스템을 최초로 구현해 낸 팀은 니폼니쉬의 95-99년 부천 SK였습니다. 다음으로 리누스 미헬스가 감독으로서 유로 88에서 우승했을 당시 코치가 딕 아드보카트입니다. 자타공인하는 리누스 미헬스의 수제자로서 2006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지요. 그리고 2006년 월드컵이 끝난 후, 새 대표팀 감독으로서 외국인 감독을 물색할 때 협회에서 접축한 인물이 바로 아리고 사키 감독이었습니다만 아리고 사키 감독이 정중하게 거절했던 걸로 압니다.
10/01/23 14:52
다른 글도 쭉 읽다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가네요. 와.. 이렇게 축구랑 관련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데 글도 재미있게 잘 쓰시는 분도 드무신듯..
이래야 진짜 기자죠... 브라질이랑 아프리카 가나 관해서 쓴 글 읽고서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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