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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30 05:00
퇴근하고 집에와서 습관적으로 Pgr을 들어왔는데 늦은 시간 너무나 좋은 글을 읽습니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와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 위원회가 과연 내년에도 존속이 될련지... 한숨부터 나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9/09/30 05:02
사실 19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친일을 한 것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철들었을 무렵에는 이미 나라가 망했으니까요. 하지만 저 을사오적만큼은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죠. 저는 종교가 없지만, 저사람들만큼은 정말로 영원히 지옥불에서 고통받았으면 합니다.
09/09/30 08:19
이완용의 경우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역적이나 조선왕조에는 충신으로 보는 견해도 있더라는...
이완용은 무조건 합방이 아닌 이상 왕조가 존속되기 힘들다고 보았다죠. 실제로 고종 암살의 배후나 칼을 들고 고종을 협박했다;(마치 삼국지의 화흠 같군요. 당대의 문장가의 말로;) 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이완용은 고종 승하 이전까지 늘 서간을 주고 받았고 종종 내왕했다죠. 이완용을 보면 평소엔 가후를 생각했었는데... 정리해주신 걸 보니 정말 처세의 달인이네요. 친미, 친러, 친일파로 변신;; 참정대신 한규설은 개인사로 따지면 탐관오리에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저 장면 하나로 만고의 충신으로 남았죠; 하긴 전봉준이 꼽은 대표적 탐관오리였지만 자결 하나로 위인전으로 남은 민영환도 있으니...(제 개인적으론 한국 군대 총대장이었던 민영환은 자결이 아니라 그의 부하들이 그랬던 것처럼 봉기를 했어야한다고 봅니다. 인생의 마무리까지 엉망으로 했을 뿐, 결코 존경할 위인이 아님) 본문에도 있지만 법무대신 이하영은 나중엔 을사오적보다 더 난리를 치는데 그냥 묻히고(박제순은 총칼을 들이대자 바로 태도가 변했고 이하영은 끌려간 후에 생각이 변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것도 참 역사의 아이러니. 이지용이 왕족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할아버지 보기 부끄럽지 않더냐(...) 어쨌거나 을사오적은 만고의 역적으로 남아야죠. 멀쩡(하지는 않았지만)한 나라를 통째로 넘긴 이름들이니까요. 아마 최소한 50년은 역적의 대명사로 남을 것 같습니다.
09/09/30 08:21
절대 친일을 두둔하는건 아닙니다만.. 전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단지 '권력' 욕심이 아니라 '신변의 위협' 때문이라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예전 독립 투사님들은 정말 대단하신거지요 제가 볼 때 지금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라면 거의 전부 친일(or친미)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왜일까요..
09/09/30 08:43
엷은바람님//
< 단지 '권력' 욕심이 아니라 '신변의 위협' 때문이라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 뭐 그건 그렇습니다. 저도 당장 일가족의 생명이 위험하다면 꼭 국가를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 그렇기에 저는 고관대작을 줘도 안합니다. 불타는 건물에 들어갈 수 없다면 소방수를 할 수 없듯이, 국가를 위해 산화할 수 없다면 저 자리에 올라가서는 안되는 것이겠죠.
09/09/30 09:42
질겅~ 질겅~ 질겅~
같이 씹었습니다. 나라 팔아먹은 댓가로 아직까지 배에 기름칠하고 있는것들을 생각하면 쉽게 분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09/09/30 10:04
저 역시 신번에 위협이 있는데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 5명은 국가를 팔아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한 인물이기에 그 논리로는 용납이 안 되겠죠. 여하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9/09/30 10:06
친일에 기대어 쌓아올린것으로 아직까지 호위호식하며 그것으로 사회전반에 권력을 잡고있는게 현재우리나라입니다.
에이구 생각만해도 짜증이.
09/09/30 10:38
삼국지나 신장의야망같은 게임을 좋아하는데, 항복권고를 할때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병력도 형편없고, 인물도 없고, 금과 병량도 없으면서 왜 항복을 안할까...더구나 만약 그런 국가의 국민이라면, 오히려 큰 나라 안에서 사는게 편안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삼국지나 신장의 야망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한일합방과 같은 외세의 침략이 아닌 내란이기 때문에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저 또한 실제로 을사오적과 같은 입장에 서있었다면 어떻게 판단하고 생각했을지 확신하지 못하기도 하구요.. 또한 아무리 글이나 말로 의협심 강하게 떠든다고 해도, 막상 집에 칼든 강도가 들어왔다고 하면 가족과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협상'을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게 규모가 커져 국가라고 한다면...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얼마든지 헐뜯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당사자로써는 자신과 가족, 국가를 지키기 위한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할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고 자국민을 핍박하고, 호위호식을 하며 벌은 재산이라면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에는 친일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재산을 환원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에게 보상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던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09/09/30 10:48
시대상황상 친일이 개인적으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수도 있다는 점에는 약간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조국을 팔아먹고, 그 조국을 되찾으려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힌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죠. 대부분 악질 친일파들이 그점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구요.
09/09/30 10:59
설탕가루인형형님// 원래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가 갈라진 거라면야 말씀하신 부분이 타당합니다만 아예 다른 국가였다면 그렇지도 않죠. 당장의 영위보다는 그 이상의 무형의 가치가 있는 문화라는 것도 있고 역사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만약 그런 게 없다면 아마 전세계는 미국으로 통합되지 않았을까요? ^^;
더구나 설령 큰 나라에 흡수된다고 쳐도 국가라는 조직이 흡수되는 것과는 별개로 개개인들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를 동등한 일본 국민으로 대하지는 않았잖아요. 말 그대로 식민지일 뿐이지 온전히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게 아니죠. 그러면서 갈등도 많이 생기구요. 솔직히 저도 막상 일제시대에 태어났다면 강하게 반발하며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점은 회의적이긴 합니다만... 기본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죠. 더구나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와 국민들은 수탈당하기만 했죠. 그렇다 보니 매국 행위에는 도저히 역지사지를 적용하기가 힘드네요.
09/09/30 11:11
1900년 초에 현재 장관급 이상인 저 정도의 대신자리에 오를 정도의 인물이었으면,
당시 일본이 가진 침략마인드나 당시 우리나라를 두고 벌어지는 갖가지 일본 행위에 대해 그야말로 시대적 배경이나 급변하는 상황을 꿰뚫고 있다고 보는게 맞죠. 저 때 왜 이토가 일본군으로 겹겹이 회의장을 둘러쌓고 협박으로 서명에 찬성을 강요하는지 그 전부터 이 조약의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몇몇 대신들의 사주로 저 자리까지 만들어 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찬성을 한다면 정말 이 나라를 일본에 넘길 수 있으며 자기들은 순간 나라팔아먹은 놈이 되는 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찬성을 했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찬성을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됐어야 합니다. 더구나 일반 백성도 아닌 황제 바로 아래에서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대신이라는 작자들이 말입니다. 일말의 여지없이 목숨을 내놓고 반대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찬성하기 전부터 이미 일제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고, 오히려 서명 후 역적죄에 대한 뼈를 삭히는 반성과 개과천선은 커녕 독립투사들을 핍박하고, 일본에 의한 공직과 귀족자리, 하사금까지 넙죽받는 것을 보면 평생 까여도 무방하다고 봅니다. 일반 백성의 위치에서 진정 강한 반일항전을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으나, 나라의 대신의 자리에서 목숨이 위태로워 친일을 했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은 죄를 추궁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거론되고 있는 일반적인 친일파 수는 3500명내외가 됩니다. 적어도 이 3500명 정도는 우리가 청산해야 할 몫인 것입니다.
09/09/30 11:13
릴리러쉬님// 오오, 수정했습니다....;;
오월님// 완산이 아니라 익산이란 얘기인가요. 완산이 현재의 익산인가요? 수정은 하겠습니다..
09/09/30 11:38
시대 상황상 친일을 공감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서 놀랍군요.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것을 모두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분명 무리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국정을 움직이는 관리였다면, 이것을 시행할 경우에 나라가 뻔히 어떻게 되는지를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것은 시대적 정상 참작의 여지고 나발이고 없는 짓입니다. 싸우고, 자결하고, 싸우는 이들을 지원하는 행위는 분명 노블리스 오블리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그런것은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국가가 그런 지경까지 가게 만든 책임이 있다면 그냥 관직이고 뭐고 깨끗하게 버리고 나오는 행위 정도는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그들을 막을 힘이 없어서 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 흐름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던 것과 그 흐름에 편승하여 영화를 누렸던 것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09/09/30 12:14
Arata님// 아마 오월님께서 말씀하신건 Arata님께서 이완용이 묻혔다고 기재하신 '전남 익산' 을 말씀하시는거 같네요. '전북 익산'이 맞습니다.
그리고 완산은 그 옆의 전주 근처의 '완산'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완산은 현재의 익산은 아니고 전주시 완산구 일겁니다. 익산은 오래전에 '솜리'라는 지명이었고 일제시대때는 '이리'로 불렸습니다. 이완용은 전북 익산군 (현 익산시) 낭산면 내산동 - 내장부락에 묻힌 것이 맞고 이지용의 출생지는 전북 완산이 맞습니다.
09/09/30 13:05
시대적 상황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감수 하고 저런 일들을 했다면
스스로 역사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책임이 생기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09/09/30 18:28
저들의 후손이 선대의 유산을 되돌려 받고자 하는것은 어찌 생각해야 합니까??선대의 잘못은 선대의 잘못이고 우리는 잘못이 없으니
재산을 내놓으라는 생각인것 같은데요...정말로 울분이 터집니다!!!
09/09/30 18:31
신우신권님// 후손은 아무 잘못 없다 하더라도 그 전에 재산을 형성한 과정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고 반민족적인 행위였기 때문에 몰수해 마땅하죠. 그 재산을 만들기 위해 잘못한건 없지만 잘 한것도 없으니까요.
09/09/30 19:43
친일파 들 중에는 처음에는 계몽주의자 개화주의자 민족주의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중에 일본의 문물과 그 당시 미국이나 서방을 방문하고 그들의 제국주의 적인 면모를 보고 차라리 양놈보다는 같은 동양인이 낮지 않겠냐며 이상하게 친일의 길로 들어선 이들도 많습니다 -_-;;; 이거 얘기하다보면 끝이 없어지는거죠....
09/10/01 01:39
신우신권님// 명색이 자본주의 사회인데 지 할애비, 애비가 강도질 한 장물 그대로 갖겠다고 우기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죠. 자본주의 사화에서 살기 싫어하는 거 같은데 그냥 맨몸으로 북한으로 꺼져줬으면 좋겠습니다.
09/10/01 18:25
OrBef2님//
동감하고 갑니다. 제가 여지껏 읽은 댓글중에 가장 인상적입니다. SCVgoodtogosir님// 굉장히 위험한 발언인데요...-_-; 연좌죄를 인정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재산지키는것도 쉬운건 아닌디.....
09/10/03 11:13
예전에 이완용에 대한 역사 스페셜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친일파가 되려고 작정했다기 보다는 글쓴 분이 적었듯이, 권력의 그늘에서 좌천당한 나머지 재기의 수단으로 삼은 일본 세력에서 중추적인 역활을 담당하게 되면서 친일파가 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쉬운 점이 그 시대의 어느 유명한 사람이 이완용에 대해서 평가하길 "이완용이 재물욕을 버렸다면 그는 세상을 바꿀 정치가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의 정치수완은 대단했나 봅니다.
그리고 한번에 총을 3번이나 맞고도 살아남은 인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얘기하는게 있습니다. "악인은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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